예비명단은 비밀 ‘희망고문’ 봉쇄
▲ 홍명보 감독은 예비엔트리 명단은 발표하지 않았다. 탈락한 선수들에게 섣부른 기대감을 심어주지 않기 위한 배려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그중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선수들이 선발된 경우도 있었고, 유력한(혹은 유력하게 보였던) 후보들이 탈락의 고배를 든 상황도 있었다. 심지어 명단 발표 당일 오전에는 한 매체가 전혀 다른 와일드카드 후보군을 선정하는 오보를 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만큼 와일드카드 주인공들을 찾기 위한 각 언론사들의 경쟁이 상당했다는 반증이었다.
마지막까지 긴박했던 최종 엔트리 발표 뒷이야기를 정리했다.# 깜짝 와일드카드 김창수
올림픽에는 대회 출전이 허용되는 연령(23세 이하)대 선수들 외에 3명의 와일드카드를 데려갈 수 있다. 물론 출전 엔트리는 18명까지로, 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AD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이들만이 경기 당일 벤치 착석이 허용된다. 물론 부상 등 돌발 상황에 따라 선수 교체가 가능한 4명의 예비명단(공식 명칭 대체 선수) 선수를 동행시킬 수 있다.
이번에 선발된 와일드카드는 당초 예상과 조금 엇갈렸다. 이미 홍명보 감독이 모나코 10년 영주권을 취득하면서 병역 논란에 휩싸인 박주영(아스널)의 해명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바람에 와일드카드 한 장은 세상에 일찌감치 알려졌지만 나머지 2장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골키퍼 정성룡(수원 삼성)까지는 유력했다. 런던올림픽 축구 종목에 나설 출전국들 상당수도 수비진 안정을 위해 경험 많은 골키퍼를 와일드카드로 넣었다. 아직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성인대표팀 수문장 정성룡의 발탁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남은 한 장의 카드가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거론된 유력 후보들은 모두 2명. 국가대표팀 주축 센터백으로 활약 중인 이정수(알 사드)와 국내 K리그 유력 구단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 중인 A였다.
아직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A도 비교적 심각하게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좌우 측면 수비수로 활용이 가능한 데다 필요에 따라 중앙 수비수로 포진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 요소였다.
그간 올림픽대표팀 주축 멤버로 활약한 홍정호(제주 유나이티드)가 K리그 경기 중 부상을 입고 전력을 이탈하면서 홍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중앙 수비수 찾기였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코칭스태프는 A 대신, 이정수를 쓰기로 내부 결정을 했고, 명단 발표 전날인 6월 28일 밤까지 알 사드 측의 결정을 기다렸다. 하지만 알 사드의 최종 통보는 ‘출전 불가’였다.
결국 홍 감독으로서는 ‘플랜B’를 찾아야 했다. 후보로 염두에 뒀던 김창수(부산 아이파크) 카드를 낙점했다. 부산 사령탑 안익수 감독과는 이미 협조를 구해둔 상태였기에 차출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센터백을 많이 뽑아 포지션별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나치게 많은 풀백 자원들을 데려가는 건 쉽지 않다. 김창수는 중앙과 측면을 두루 소화할 수 있어 선발했다”는 게 홍 감독의 설명이었다.
▲ 박주영과 김창수. 임준선 기자, 사진제공=부산 아이파크 |
그만큼 탈락자와 출전자를 가리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눈물은 피할 수 없는 과정. 결국 누군가는 울어야 했다. 홍명보호가 본격 출범했던 2009 이집트 U-20 월드컵은 물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 항상 함께해왔던 선수가 이번 최종 명단에서 제외된 경우도 있었다. 조영철(오미야 아르디자)과 윤정환 감독의 지도를 받고 있는 김민우(사간도스)가 대표적인 케이스.
K리그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주FC에서 활약 중인 김동섭도 같은 아픔을 피할 수 없었다. 김동섭은 올해 초 홍명보호의 캠프에 소집되지 못했을 때 남몰래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스승, 그리고 올림픽팀에 대한 애착이 컸다. 정성룡의 뒤를 받쳐야 할 세컨드(2) 골키퍼를 뽑을 때에도 이범영(부산 아이파크)은 웃었지만 김승규(울산 현대)는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다. 대구FC 중앙 수비수 김기희도 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6월 초 열린 시리아와 평가전 때 맹활약을 펼쳐 마지막까지 희망의 불꽃을 태웠던 주인공이었으나 끝내 동료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됐다. 김기희 자리는 황석호(산프레체 히로시마), 김동섭 자리는 경쟁자 김현성(FC서울)이 차지했다.
홍 감독이 코치들과 선수들을 추리는 과정에서 선행돼야 할 선수 소집 협조공문을 J리그와 K리그에 먼저 보내지 않았다. 홍 감독은 ‘일본통’ 황보관 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상의 끝에 대표팀 발탁이 상대적으로 껄끄러운 유럽과 중동 클럽들에게 먼저 협조를 구한 뒤 K리그와 J리그는 추후 협조를 받기로 했다.
그렇다고 모든 보안이 유지된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유럽 구단들에는 사전 협조 공문이 발송되기 때문에 일부 선수들은 먼저 엔트리 발탁이 노출됐다.
독일 분데스리거 손흥민(함부르크SV)이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소속 팀에 전념하기 위해서 올림픽 출전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인터뷰했다는 독일 유력 축구전문지 <키커>의 오보로 손흥민이 본의 아니게 없는 일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하는 불상사도 벌어졌다. 상처가 배가됐음은 물론이다. 국내 모 구단 역시 자체 정보를 통해 소속 선수가 탈락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먼저 해당 팀 감독이 당사자를 불러 마음을 다독였다는 후문도 있다.
“(명단 발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탈락) 선수들에게 미리 언질을 줘야 하지 않겠나 싶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너무 가혹하다는 판단이 섰다. 예전부터 함께해왔던 선수들과 그의 가족들, 그들의 팬분들께 미안한 마음이다.”
홍 감독의 진솔한 한마디였다. 대체 선수들도 분명 홍 감독은 염두에 뒀지만 그는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은 제자들을 향해 또 한 번 소금을 뿌릴 수 있다는 판단에 아예 (대체 명단) 발표도, 훈련 동참도 시키지 않을 계획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 최종 엔트리
FW 박주영(W) 김현성 MF 지동원 구자철 기성용 김보경 남태희 백성동 박종우 한국영 DF 김창수(W) 김영권 장현수 황석호 오재석 윤석영 GK 정성룡(W) 이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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