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고?” LG ‘한여름밤의 악몽’ 스멀스멀
▲ LG가 최근 주춤하고 있다. 노장 선수들이 많아 더운 여름을 극복하는 데 난관이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사진제공=LG트윈스 |
▲ 현대 감독 시절 ‘DTD’를 최초로 언급한 김재박 감독. |
시즌 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최한 ‘2012 미디어데이’에서 삼성 류중일 감독은 올 시즌을 어떻게 예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8강 8약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절대 강팀도 없고, 절대 약팀도 없이 8개 구단이 엎치락뒤치락 접전을 펼칠 것이라는 뜻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저런 말은 나도 하겠다”며 조소했다. 한 야구 해설가는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더니, 류 감독이 완전히 도인이 됐다”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결국 류 감독의 말이 맞았다.
많은 야구 전문가는 “올 시즌처럼 물고 물리는 순위싸움은 처음”이라며 “8월은 넘어야 포스트 시즌 진출팀의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나 4강 싸움이 안개정국이다. 7월 6일 기준으로 3위인 두산과 공동 4위인 SK, 넥센의 승차는 0.5경기다. 6위 KIA와는 1경기, 7위 LG도 3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야구인은 “7월 초부터 어차피 떨어질 팀은 떨어지고, 오를 팀은 오르는 이른바 ‘DTD(Down Team is Down) 이론’이 적용되기 시작했다”며 “결국 DTD에 따라 떨어질 팀은 떨어지고 말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서 잠시 DTD가 무슨 용어인지 알 필요가 있다. 애초 DTD는 전 LG 감독이던 김재박 KBO 경기위원으로부터 나왔다. 김 위원은 현대 감독 시절이던 2005년 당시 기자들과 대화 중 초반 상승세를 타던 롯데를 두고 “내려갈 팀은 내려가지 않겠느냐”라는 묘한 말을 했다.
결국 잘나가던 롯데는 김 위원의 말대로 그해 5위로 마감하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로도 김 위원은 “시즌 초반 순위는 믿을 수 없다”며 “팀 전력이 약한 팀은 결국 내려가게 돼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김 위원의 예상은 적중했다.
하도 적중률이 높다보니 야구팬들은 김 위원의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말을 빗대 ‘DTD(Down Team is Down)’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때부터 DTD는 한국 프로야구를 이끄는 핵심 예상으로 등장했다. 그렇다면 올 시즌 많은 전문가가 꼽는 ‘내려갈 팀’은 어디일까
# DTD에 우는 LG와 넥센
바로 LG와 넥센이다. 시즌 전 LG는 갖가지 악재로 ‘꼴찌 영순위’ 후보로 꼽혔다. 선발투수 두 명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가 영구제명됐고, 주전 포수와 외야수, 불펜투수는 FA(자유계약선수)를 통해 다른 팀 유니폼을 입었다. 가뜩이나 흔들리는 ‘LG호’의 사령탑은 초보감독이었다. 많은 야구전문가는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아쉽지만, LG의 상위권 진출은 올 시즌에도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은 빗나갔다.
시즌 개막전부터 LG는 순항을 거듭했다. 예상보다 투수진은 강했고, 타선은 탄탄했다. 마무리 레다메스 리즈가 흔들리며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때마침 봉중근이 리즈의 뒤를 이어 뒷문을 맡으며 다시 강팀이 됐다. LG는 6월 17일까지 리그 2위를 유지했다. 특히나 슬럼프가 찾아와도 신기할 정도로 승률 5할 이상을 유지했다.
하지만, 외야수 이진영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1군 전력에서 이탈하고, 마무리 봉중근이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서 오른손 자해로 수술을 받은 뒤 5연패를 기록했다. 힘겹게 지키던 ‘승률 5할’도 4할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LG가 다시 승률 5할로 진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7월 5일 LG 김기태 감독은 “2군에 있던 이진영, 이대형, 이승우를 1군으로 불렀다”며 “7월 21일 올스타전까지 5할 승률 복귀를 위해 온힘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KBS 이용철 해설위원은 “이진영, 이대형의 가세로 테이블세터진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게 됐다”며 “좌완 이승우의 가세도 선발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위원은 “LG엔 원체 노장 선수들이 많아, 이 선수들이 과연 더운 여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LG가 매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암울하긴 넥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넥센은 5월 23일 파죽의 8연승을 달리며 팀 최다연승 기록을 경신했다. 당시 넥센은 SK를 1게임 차로 제치고 단독 1위로 올라섰다. 넥센이 단독 1위로 나선 것은 2009년 4월 19일 이후 1133일 만이었다. 하지만, 6월 들어 다소 주춤하더니 7월엔 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넥센도 LG처럼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6월 23일 넥센의 주포 강정호는 왼 정강이 부상(봉와직염)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강정호가 부상으로 빠진 뒤 치른 7경기에서 넥센은 3승4패에 그쳤다. 강정호가 복귀하기 전 치른 4경기에선 경기당 득점이 2.5점에 불과했다. 여기다 4번 타자 박병호가 허리 통증에 시달리고, 이택근 역시 컨디션 난조로 흔들리며 넥센의 강력했던 중심타선은 휴식기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넥센은 LG보단 상황이 좋은 편이다. 선발 브랜든 나이트와 앤디 밴 헤켄이 건재하고, 김병현과 최근 선발로 돌아선 한현희가 호투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펜에서도 이보근과 장효훈이 최근 10경기 동안 각각 평균자책 2.08과 1.86을 기록하며 절정의 컨디션을 과시하고 있다. 붙박이 마무리 손승락은 최근 10경기 평균자책이 아예 0이다.
MBC SPORTS+ 손혁 해설위원은 “넥센은 생각보다 쉽게 떨어질 전력은 아니다”라고 말한 뒤 “체력소모가 심한 주전선수들의 공백을 백업선수들이 어떻게 메우느냐에 팀의 명운이 엇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 UTU 여신이 미소 짓는 삼성과 KIA
DTD가 있다면 UTU도 있다. UTU는 ‘Up Team is Up(올라갈 팀은 오른다)’의 약자다. 야구전문가들이 꼽는 UTU의 최대수혜자는 삼성과 KIA다. 두 팀은 시즌 전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었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이 “삼성의 한국시리즈 2연패 독주를 막을 팀은 KIA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삼성은 시즌 초반만 해도 이변의 주인공이었다. 개막 이후 11경기에서 3승7패에 머물며 7위까지 주저앉았다. 6월 19일까진 6위에 그쳤다. 주력투수들은 연방 부상으로 2군을 전전했고, 최형우, 채태인 등 중심타자들은 타율이 2할대 초반에 머물렀다. 하지만, 삼성은 6월 21일부터 연승을 거듭하더니 7월 1일 드디어 1위로 올라섰다.
삼성은 최근 11경기에서 유일하게 팀 평균자책 2점대(2.45)를 기록했다. 2경기에 선발로 등판한 배영수의 평균자책은 1.38, 장원삼은 0이었다. 탈보트, 차우찬도 3점대 평균자책을 자랑했다. 불펜은 말할 것도 없다. 안지만과 오승환, 권혁 역시 평균자책이 0이다.
타선에선 박한이와 이지영이 4할 타율을 기록하며 팀 상승을 이끌었다. 삼성이 최근 11경기에서 9승2패를 기록한 게 우연은 아니라는 뜻이다.
삼성의 1위 등극에 야구전문가는 당연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허 위원은 “8개 구단 최고의 마운드와 탄탄한 타선, 짜임새 있는 수비를 갖춘 삼성이라면 앞으로도 줄곧 1위를 달릴 가능성이 크다”며 “특별한 부상선수도 없는 만큼 현실적으로 다른 팀이 삼성을 견제하는 건 무척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KIA 역시 시즌 초반 부진을 털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KIA는 6월 22일까지 24승1무31패로 승률 4할3푼6리를 기록했다. 순위는 7위. 구단 내부에서 “올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은 진작에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체념이 새어나올 정도였다.
KIA 선동열 감독 역시 “부상선수가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팀을 재건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뜻밖의 트레이드가 반전의 호재로 작용했다. 선 감독은 타선 강화 차원에서 트레이드를 모색했다. 상대는 삼성이었다. 선 감독은 삼성 사령탑 시절부터 주목했던 좌타자 조영훈을 원했다. 삼성은 불펜강화 차원에서 우완 투수 김희걸을 바랐다.
평소 선 감독은 “김희걸이 좋은 공을 던질 줄 알면서도 마운드에 오르면 자신 없이 투구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터였다. 반면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이승엽, 채태인 등 1루수 자원이 풍부한 삼성에서 조영훈이 자릴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게 안쓰러웠다. 가뜩이나 불펜진에 부상선수가 속출하며 우완 불펜투수 영입을 꾀했던 류 감독은 두말없이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선 감독은 조영훈을 영입하자마자 주전으로 발탁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조영훈이 가세한 6월 23일부터 KIA는 7연승을 내달렸다. 조영훈은 이 기간 팀에서 가장 많은 10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연승을 이끌었다.
7월 6일 기준 KIA는 32승4무32패로 드디어 승률 5할에 올라섰다. 선 감독은 “올스타전까지 최대한 상위권팀을 추격해 4위권에 들겠다”며 “김상현을 비롯한 나머지 부상선수들이 복귀하는 데로 본격적인 추격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 DTD 악령을 극복하려면?
야구계의 DTD, UTU 이론은 향후에도 위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이유가 있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한 시즌 133경기를 치르는 정규 시즌은 각종 변수가 순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주전선수와 백업선수의 기량 차이가 적고, 선발자원이 풍부하며, 재활시스템이 잘 갖춰진 팀들이 결국 상위권에 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허 위원은 “삼성처럼 팜 시스템이 잘 운영되는 팀들은 베테랑이 부진해도 신진 선수들이 그 공백을 잘 메운다”며 “지속적인 상위권 유지를 위해선 무엇보다 신인선수 스카우트와 유망주 육성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 홈런을 친 김태균이 코칭스태프의 환영을 받고 있다. |
감독 팔다리 자르고 뭔 야구를…
한화 이글스는 7월 6일 송진우 육성군 투수코치를 1군 투수코치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기존 1군 투수코치던 정민철 코치는 육성군으로 내려갔다.
한화 코치진의 보직이 바뀐 것은 올 시즌에만 벌써 세 번째다. 한화는 지난 5월 12일 이종두 수석코치와 강석천 타격코치, 강성우 배터리 코치, 후쿠하라 미네오 수비코치를 전격적으로 2군으로 내리는 대대적인 코치진 개편을 단행했다. 이어 외부에서 김용달 타격코치를 급히 영입했고, 한용덕 투수코치를 수석코치로 승격시켰다. 6월 21일에는 최만호 주루코치가 작전코치, 이영우 타격코치가 주루코치로 이동하고 김민재 작전·수비코치는 수비코치만 전담하게 했다.
야구계는 한화의 잦은 코치진 변경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시즌 중 코치진 이동이 잦으면 결국 선수들이 피해를 본다는 게 이유다. 실제로 코치들이 바뀔 때마다 타자의 타격폼과 투수들의 투구폼이 조금씩 수정되는 게 한국 프로야구의 특징이다.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코치와 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짜증을 내기도 한다. 모 야구인은 “한창 전투 중일 때 소대장을 바꾸는 걸 봤느냐”며 “시즌 중 코치 교체는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화의 코치진 변경이 감독이 아닌 구단 뜻이 반영됐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종두 수석코치와 강석천 타격코치가 2군으로 내려갈 때도 야구계 안팎에서 말이 많았다. “수석코치와 타격코치는 감독의 복심인데, 그 코치들을 한꺼번에 2군으로 내려보낸다는 건 감독의 양팔을 자르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런데 이번엔 감독의 발과 같은 투수코치가 육성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모 관계자는 “7월 초부터 구단이 감독에게 ‘정민철 투수코치를 육성군으로 내려보내고, 송진우 코치를 1군으로 부르라’는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안다”며 “구단이 올 시즌 한 감독의 계약 마지막 기간임을 악용해 함부로 현장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걱정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