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렸던 그녀 회사도 ‘다시 점프’
▲ 김연아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통해 2014소치동계올림픽까지 현역생활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피겨 선수가 아니라 CF 모델이 된 것 같다.”
올 초 김연아가 활발하게 광고를 찍었을 때다. 한 스포츠 관련학과 교수는 목안에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집어 삼킨 것처럼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김연아가) 피겨 선수로 계속 뛸지, 연예인으로 전향할지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며 “광고출연을 위해 대회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현역선수인 것처럼 위장하는 건 매우 잘못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그 교수의 생각은 개인적인 의견만은 아니었다. 그즈음 많은 누리꾼이 김연아 기사가 뜨면 그 교수와 같은 생각을 댓글로 남겼다. 댓글 중엔 김연아를 ‘돈연아’로 폄훼하며 “현역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김연아 측은 일체의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만간 현역지속 여부와 관련한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피겨계 인사들은 되레 “국외 유명 피겨스케이터 가운데 상당수가 별다른 은퇴 의사 없이 조용히 현역생활을 마감하거나 다시 재기에 성공한다”며 “어느 피겨 선수가 1년 정도 쉬었다고 ‘은퇴여부를 결정하라’는 압력에 시달렸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릴 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김연아의 은퇴여부는 국민적 관심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교생실습 논란을 비롯해 술 광고 등 대외활동 논쟁이 이어지면서 김연아의 선수생활 지속 여부가 단숨에 국민적 이슈가 됐다.
김연아 측은 논란이 거듭되자 “여름께 은퇴와 관련한 중대 발표를 하겠다”고 말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실제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하는 7월, 중대발표를 했다. 결론은 현역 지속이었다.
모 피겨인은 “김연아의 기자회견장이 태릉선수촌 스케이트장이라는 소식을 듣고 ‘아, 현역에서 계속 뛰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며 “만약 은퇴를 결정했더라면 기자회견 장소가 호텔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피겨 선수의 생각도 같았다. “다른 종목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피겨스케이터에게 빙판은 매우 신성한 곳이다. 어렸을 때 신발을 신고 빙판에 들어갔다가 (김)연아 언니에게 혼난 적이 있다. 그때 언니가 ‘항상 스케이트화를 신고 들어와야 한다’며 ‘신발 신고 빙판을 밟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 언니이기에 은퇴를 발표했다면 스케이트장에서 했을 리 없다. 나도 기자회견을 스케이트장에서 한다기에 ‘언니가 현역으로 계속 뛸 것’으로 예상했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도 이를 인정했다. 올댓스포츠의 관계자는 “태릉선수촌 스케이트장을 기자회견장으로 삼은 건 김연아 선수가 다시 국가대표로 뛰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김연아를 잘 아는 모 전직 피겨 선수는 “5월 초 진선여고에 교생실습을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연아가 은퇴를 하겠구나’생각했다”고 밝혔다.
“사석에서 만난 연아 표정이 무척 밝았다. 대학 생활도 재밌어 하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지원을 하면서 스포츠외교에 눈을 뜬 듯했다. 본인도 ‘이제 다른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은연 중에 내비쳤다. 올림픽 금메달 이후 목표를 상실했으리라 판단했는데,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있어 ‘역시 연아답다’고 생각했다. 이제 연아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는가 싶었다.”
여러 지인의 말을 종합해 봐도 김연아는 5월 초까진 은퇴에 비중을 둔 듯했다. 그러나 교생실습과 술 광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모든 게 급변했다.
어느 순간 김연아는 ‘스타 교생’에서 ‘무자격 교생’이 됐고, ‘광고의 여왕’에서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광고계의 민폐’로 둔갑했다. 그를 지지하던 이들도 고개를 갸웃할 만큼 김연아의 이미지 추락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모 피겨인은 “거듭된 악재가 올댓스포츠의 위기감을 조성하고, 김연아의 정면 돌파를 이끌어냈다”고 귀띔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김연아의 맥주광고 출연이 청소년의 음주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의 이른바 ‘교생실습 쇼’ 논란이 겹치며 김연아는 궁지에 몰렸다. 김연아가 일개 선수였으면 항복을 외쳤겠지만, 그는 실질적인 올댓스포츠의 주인이었다. 그대로 은퇴를 선언한다면 실추된 자신의 이미지를 되돌릴 수 없고, 회사에도 악영향을 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김연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논란이 거듭되면서 김연아는 더 강해졌다. 결국 현역 지속 선언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실제로 현역 연장 발표 이후, 김연아를 둘러싼 논란은 급격하게 수그러들었다.”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따라서 올댓스포츠가 김연아의 현역 연장으로 2014년까지 안정적으로 회사 운영을 하려한다는 이야기다.
김연아는 기자회견장에서 “후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후배들의 꿈을 돕고 싶었다”는 말로 현역 연장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김연아는 틈틈이 태릉선수촌을 찾아 후배들과 함께 뛰며 매우 행복해했다는 후문이다.
여기다 현역 피겨스케이터 가운데 아직 자신을 능가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은 것도 복귀의 한 배경으로 보인다.
한 피겨 코치는 “김연아의 몸이 건강하다는 소릴 들었다. 현역 여성 피겨선수 중 눈에 띄는 선수가 없어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김연아의 금메달 획득이 유력하다”며 “이러한 자신감이 김연아를 다시 빙판으로 부른 게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최강민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