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등 ‘기본소득 원칙’ 막 내려, 예술인 잠재력에 ‘투자’ 중증장애인 ‘사회적 비용 감소’ 개념으로 접근
기본소득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 한계인 보편성, 정기성, 무조건성은 지난 대선을 통해 국민의 판단을 받았다. 모두에게 줘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작은 액수, 계속 주기엔 한계가 분명한 곳간, 부자들에게까지 푼돈 왜 주느냐는 문제는 결국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제369회 정례회 제3차 본회의 도정 질문을 통해 경기도에 남아있던 기본소득의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비효율,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공격받던 기본소득에서 기회소득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셈이다.
경기도는 청년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농촌기본소득 3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기본소득은 만 24세 되는 청년에게 지급한다. 연 100만 원의 지역화폐를 주는데 1회에 불과해 정기성이 없다. 보편성도 없지만 청년 ‘기본소득’이라고 부른다. 김동연 지사는 “어떻게 생각하면 축하금 같은 것”이라고 했다. “기본소득 취지에 맞는 것도 아니다”라고 평했다.
농민기본소득은 경기도 내 20개 시군에서 농사짓는 도민에게 지급한다. 31개 시군 중 11개 시군에서는 지급하지 않는다. 선별, 선택 지급으로 인한 역차별이 논란이다. 선별 지급에 따른 행정 비용 과다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올해 농민기본소득 선별을 위해 발생한 행정 비용만 46억 원에 달한다.
농촌기본소득은 시범사업으로 연천군 청산면 주민에 매월 15만 원씩 5년간 지급하는 사업이다. 청산면을 한정하긴 했지만 다른 조건이 없다. 청산면 주민이면 다 지급한다. 김동연 지사는 “엄격한 의미로 유일하게 하고 있는 기본소득”이라고 표현했다.
김동연 지사는 “기본소득 개념은 산업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와 같은 세상에 일 안 하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줄 수 있는 소득이 기본소득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어떻게 보면 먼 미래의 일이기도 하지만 검토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기회소득은 기본소득과 전혀 다른 철학과 원칙을 갖고 있다. 기회소득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에게 지급한다. 조건이 붙는다. 기본소득의 원칙인 보편성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재원 문제에 대한 고민도 드러냈다. “지원 대상을 넓힐수록 재원 문제와 부딪히고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일정한 범위에서 이걸 오므릴까 하는 것이 지금 단계의 기회소득의 취지”라면서 “일정한 가치를 창출하지만 그 가치가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로 한정했다”고 밝혔다.
기회소득의 첫 주자로 예술인을 꼽은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예술인들이 예술, 창작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에 비교적 동의한다. 그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 그 산업 자체에 무궁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K-컬쳐를 생각해보자. 만약 기회소득을 주는 예술인 중에 어떤 사람이 나올지 모른다. 예술에는 그런 잠재력이 있다”고 했다. 예술인 기회소득을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장애인 기회소득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중증장애인들이 스마트워치를 착용해서 일주일에 최소 2회 이상 1시간 이상 신체 활동을 하셔야 한다. 중증장애인들이 활동을 안 하면서 몸이 더 불편해지거나 할 때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것을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답변 말미에 김동연 지사는 “청년기본소득 등은 예술인 기본소득, 장애인 기본소득의 10배 또는 100배의 돈이 들어가고 있다. 단번에 어떻게 하기는 어렵지만 중기적으로 사회적 가치 또는 청년에 대한 기회 제공 이런 식으로의 전환을 검토해 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경기도는 기회소득으로의 전환을 통해 기본소득의 약점이던 보편성, 정기성, 무조건성에서 탈피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지역화폐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순기능은 고스란히 이어갈 계획이다. 이에 더해 시혜적 지원의 대상이던 중증장애인에 대한 발상의 전환, K-컬쳐 산업의 주역인 예술인에 대한 투자 개념까지 덧붙이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약점에서 벗어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장점을 선보이는 것. 김동연의 방식이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