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등 베테랑 은퇴 공백 여태 못 메워…세사르 감독 향한 비판론도
2020 도쿄 올림픽 이후 김수지, 김연경, 양효진 등 베테랑들이 은퇴를 선언하며 대표팀의 전력 약화는 예상된 일이었다. 올림픽 4강이라는 성공을 거뒀지만 핵심 전력 3명의 이탈은 컸다. 대표팀을 이끌던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과 재계약도 못 했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수석코치를 맡던 세사르 에르난데스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전력 공백 속에 지난해 대표팀은 VNL에서 12전 전패를 기록했다. 12연패 과정에서 1-3 패배를 3회 기록하며 세트득실 -33을 기록했다. 대표팀은 김연경을 비롯한 베테랑 공백을 뼈저리게 느꼈다.
2023년 국가대표 시즌을 앞두고 대표팀은 절치부심했다. 중계석에 앉았던 한유미 해설위원을 대표팀 코치로 불러들였다. 한유미는 선수 시절 김연경 등과 함께 2012 런던 올림픽 4강에 힘을 보탰다. 은퇴 직후부터 V리그와 국가대표 경기 해설위원으로 활동해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이 부각됐다. 김연경도 국가대표팀으로 돌아왔다. 선수가 아닌 '어드바이저' 역할이다. 외부에서 조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팀의 진천선수촌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연경 없는 2년 차는 결과적으로 1년 차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VNL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연패를 이어가고 있다. 8경기를 치러 전패를 기록 중이다. 8경기에서 따낸 세트는 단 1세트뿐이다. 0-3 패배를 이어오다 지난 18일 독일을 상대로 유일한 세트를 따냈다. 지난해부터 같은 대회에서 20연패다. 대표팀은 현재 VNL의 유일한 '무승' 국가로 16개 참가팀 중 최하위다.
지난해에는 VNL 이후 세계선수권이 이어졌다. 이 대회에서도 대표팀은 도미니카공화국, 튀르키예, 폴란드, 태국에 4연패를 당한 뒤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1승을 거뒀다. 김연경 은퇴 이후 세사르 감독 체제에서 대표팀은 1승 24패를 기록 중이다.
저조한 성적이 이어지자 현 대표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세사르 감독은 튀르키예의 바키프방크 코치와 한국 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고 있다. VNL 개막 이전 진천선수촌에서 진행된 국내 훈련도 국내 코치진이 지휘했다. 이에 대한 비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앞서 선수단 관리를 놓고 구설에 올라 경질됐던 차해원 감독 시절(2018년)엔 VNL 15경기에서 5승 10패를 기록해 12위에 오른 바 있다.
세계랭킹도 급락했다. 1승 24패를 기록하면서 깎여나간 랭킹 포인트만 100점이 넘는다. 한때 10위권에 있던 세계랭킹은 현재 33위까지 추락했다.
연패를 거듭하는 대표팀의 아킬레스건으로는 클러치 상황에서 득점이 꼽힌다. 대회 기간 강호들과 맞대결에서도 대등한 내용을 보인 시점도 있었다. 때로는 점수를 앞서기도 했으나 연속 실점으로 무너지며 세트를 내줬다. 세계랭킹 1위 미국과 경기에서도 2세트는 듀스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다. 결국 가장 필요할 때 득점을 올려주던 김연경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것이다.
김수지, 양효진이 빠진 미들블로커에서도 공백이 느껴진다. 대표팀은 리시브, 범실 등 일부 지표에서 상대를 앞서기도 하지만 블로킹에서 격차를 보인 경기가 많았다. 아시아 국가인 일본, 태국을 상대로도 블로킹에서 앞서지 못했다.
블로킹 부진을 피지컬 차이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현재 대회 7위와 13위에 올라 있는 일본과 태국은 VNL 홈페이지에 공개된 미들 블로커의 평균 신장이 181cm대에 불과하다. 한국은 약 184cm로 더 높지만 맞대결에서도 블로킹에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자연스레 선수들의 기본기 부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패를 거듭한 대표팀은 전 대회 4강 진출국임에도 2024 파리 올림픽 출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대륙별 예선이 사라진 이번 대회부터 올림픽 본선행은 더욱 험난해졌다.
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걸려 있는 예선 토너먼트는 오는 9월 열린다. 대표팀은 폴란드, 이탈리아, 미국, 독일, 태국, 콜롬비아, 슬로베니아와 함께 C조에 편성됐다. 각조 1, 2위에만 올림픽 티켓이 주어지기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여정이 될 전망이다. 예선 토너먼트를 거쳐 올림픽 참가 6팀이 확정된다. 개최국 프랑스는 자동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나머지 다섯 자리는 세계랭킹에 따라 출전권이 부여된다. 현재 33위에 올라 있는 대표팀으로선 올림픽 본선 진출 전망이 어둡다.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세계무대 경쟁력을 잃은 남자 대표팀의 처지가 남 일이 아닐 수 있다. 세계랭킹 34위의 남자 대표팀은 여자 대표팀이 나서는 올림픽 예선, VNL에 참가조차 못 하고 있다. 다만 여자 대표팀은 2024년까지 VNL 참가 자격은 유지한다. 2018년 대회 창설 당시 '코어 국가' 자격을 얻어 강등 없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