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싣고 청와대로 핸들 돌리나
▲ 지난달 28일 정몽구 회장이 영장실질심사 뒤 검찰 차에 탑승하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그러나 ‘옥중 경영’보다는 ‘조사실 경영’이란 말이 더 어울릴 법하다. 정 회장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지만 매일같이 검찰청사에 불려나가 7~8시간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이런 탓에 경영진 접견은 구치소 면회실이 아닌 검찰청 조사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정 회장이 하루 7~8시간가량의 검찰조사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구속수사란 원래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집행하는 것으로 구속기간 동안 기소 사유를 만들기 위해 강도 높은 조사를 펼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 회장의 경우는 다르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검찰은 이미 정 회장 소환 직전에 현대차 주요 경영진에 대한 조사를 상당 부분 진행해 정황을 확보한 상태라고 공언한 바 있다. 현대차 내부 제보자에 의해 검찰 수사가 이뤄진 점을 보면 정 회장 기소 사유를 만드는데 검찰이 굳이 애먹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정 회장 구속 직전 검찰 내부에서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각 경제단체에서 선처를 호소했던 것을 보면 검찰이 기소에 필요한 요건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정 회장을 구속했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정 회장을 가둬놓은 상태에서 검찰이 집중적으로 추궁하는 부분은 ‘비자금 용처’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내부 제보자에 의해 어느 정도 목록은 만들어 놓았겠지만 정 회장을 입을 통한 돈 받은 사람 이름 공개 여부는 곧 검찰 수사발표 무게의 경중으로 연결된다.
특히 검찰은 이번 기회에 대선자금과 당선 축하금에 대한 결정적 자료를 정 회장으로부터 얻어 내려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여러 정·재계 인사들은 “이미 한나라당은 검찰수사로 인해 ‘차떼기당’이란 수치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정 회장 구속수사로 사법당국이 얻으려는 것은 현 정권에 대한 부분일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지난 2004년에 행해진 대선자금 수사과정에서 현 정권보다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 대한 자금 규모가 더욱 적나라하게 밝혀진 바 있다. 따라서 현 정권에 대한 당선 축하금 규모를 캐기 위해 검찰이 정 회장과 매일같이 8시간씩 입씨름을 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대두되는 것이다.
몇몇 정·재계 인사들은 정 회장의 구속 직전 상황에서 현 정권에 대한 대선축하금을 캐내려는 검찰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정 회장 구속 직전 검찰 수뇌부는 장고를 거듭했다고 알려진다. 정 회장 측에 모종의 제안을 했지만 정 회장 측이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고 맞받아쳐 구치소행이 결정됐다는 소문도 일각에 나돌고 있다. 검찰청사 주변에선 검찰이 정 회장 측에게 비자금 용처 리스트, 특히 지난 2004년 수사과정에서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인사들의 이름을 요구했으나 정 회장 측이 이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는 상황이다.
검찰과 현대차 양측은 사전 조율설에 대해 극구 부인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에 검찰청사 주변을 맴도는 인사들 사이에선 그럴듯한 이유까지 등장한 상태다. 우선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거론된다. 일단 현대차 수사로 인해 대검 중수부가 위상을 높이면서 경찰과의 여론몰이 경쟁에서도 크게 앞서 나갔다는 평을 듣는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의 발화지가 여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 정권에 대한 당선 축하금 수사가 검찰 입장에서 절실할 것이란 평이 나온다.
한켠에선 현 정권 말기 차기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검찰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보험용’으로 당선 축하금 수사에 전력을 다할 것이란 관측도 대두된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청와대와 국정원 권력의 기세가 꺾이면서 검찰은 ‘마지막 권력기관’이란 평을 들어왔다. 지난해 안기부 도청문건 파동 이후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어느 정권 때보다 막강한 권력기관으로 우뚝 선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검찰의 힘이 황소 같은 뚝심을 지닌 정 회장의 입을 얼마나 열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