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선 ‘법’마저도 ‘남자는 하늘’
▲ 최근 러시아에서는 고학력 고소득 직장 여성들을 중심으로 골드미스가 증가하고 있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로이터/뉴시스 |
요즘 러시아 여성들 사이에서 흔히 들리는 말이다. 최근 <데일리비스트>는 ‘러시아의 싱글 여성들이 형편없는 러시아 남성들을 멀리하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러시아에 골드미스가 급증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대부분 고학력 및 고소득 직종을 가진 여성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골드미스가 증가하는 사회적 현상은 사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인 것이 사실. 하지만 러시아 여성들이 특히 자국의 남성들을 혐오하는 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과연 러시아 여성들은 어떤 이유에서 결혼을 포기하고 있는 걸까.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안나 슈파코바는 30대 중반을 넘긴 이른바 ‘골드미스’ 여성이다. 금발의 미녀인 슈파코바의 직업은 전문 무용수 겸 사진작가. 현재 ‘라이카 아카데미’의 예술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로드첸코 포토스쿨’에서 강의를 하면서 간간히 사진전도 열고 있다. 현재 그녀는 모스크바의 부촌이자 값비싼 명품 부티크가 즐비한 올드아르바트 거리에서 살고 있다.
이처럼 미모, 재력, 그리고 능력까지 모든 것을 갖춘 그녀의 인생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독립적이며 야망이 있는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남자’다. 당분간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그녀가 결혼을 멀리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마땅한 남자’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 아니, 그런 희망조차 아예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그녀는 “지금까지 러시아 남성들 가운데 단 한번도 신사를 만난 적이 없다”고 푸념했다.
슈파코바처럼 요즘 러시아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러시아 남성을 기피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러시아 남성들에게 너무 실망한 나머지 “모자란 남자와 같이 살 바엔 혼자 사는 게 속편하다”며 일부러 싱글을 선택하고 있는 여성들도 많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어떤 이유에서 러시아 남성들을 꺼리는 걸까. 러시아 여성들이 자국 남성들에게 갖고 있는 불만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술을 너무 좋아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현재 시리아 남성과 결혼을 해서 시리아에 정착한 러시아 여성들의 수는 무려 2만 명. 이 가운데 대다수는 시리아 남성들이 러시아 남성들과 달리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국제결혼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담배를 좋아하는 골초라는 점, 또는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거나 거리낌 없이 욕을 내뱉는 거친 성격도 러시아 여성들이 러시아 남성들을 꺼리는 이유다. 가부장적인 태도 역시 문제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자신들을 위해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해주는 것을 당연시 여기거나 항상 모델처럼 보이길 원한다는 점도 러시아 여성들로 하여금 불만을 갖게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폭력을 휘두르는 러시아 남성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는 특히 독립적이고 고소득 직종의 여성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까닭에 현재 러시아에는 미혼 여성들 수가 늘고 있으며, 모스크바의 경우 25~50세의 싱글 여성은 3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모스크바 전체 인구 1110만 명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며, 같은 연령대 남성에 비해 세 배 이상 된다.
러시아 전체 인구의 성비율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골드미스의 증가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러시아의 여성 인구는 남성 인구보다 1100만 명이 더 많으며, 평균 기대 수명 역시 여성들이 73세인 데 반해 남성들은 59세로 매우 낮은 편이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남녀 평균 기대수명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스크바를 포함해 러시아 전체로 보면 아직까지는 싱글 남성과 싱글 여성의 수는 각각 1720만 명과 1760만 명으로 엇비슷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자신 역시 싱글인 이리나 츠라블레바 러시아 연방통계청장은 “이는 러시아 여성들이 러시아 남성들과 결혼하길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나 역시 술에 절어있는 남자와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중에 이혼의 아픔을 겪거나 재산 분할 문제로 고통 받을 바에는 혼자 사는 게 낫다”고 말했다.
▲ 러시아의 무용수 겸 사진작가 슈파코바는 자신이 결혼하지 않는 까닭에 대해 ‘마땅한 남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직장에서의 대우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러시아 여성들은 아직도 직장에서 남성들에게 복종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으며, 중요한 업무 회의는 퇴근 후 남성 전용 사우나실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성차별은 러시아의 법제도를 들여다봤을 때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슈파코바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러시아의 법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적대적인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 헤어진 남친으로부터 오는 협박 및 모욕적인 문자 메시지에 시달려야 했던 그녀는 이를 법적으로 저지하고자 변호사와 상담을 했다. 하지만 변호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인간의 존엄을 지켜줄 법조항은 러시아에 없다. 나라가 개개인의 안전을 일일이 보장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녀가 법으로 전 남친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실제 러시아에서는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처벌하거나 금지하는 법조항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까닭에 러시아의 이혼율은 벨라루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으며, 결혼한 부부의 65%가 결국에는 이혼으로 끝을 맺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러시아 여성들이 자국의 남성들을 기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 이런 이유에서 아직까지 ‘천생연분’을 꿈꾸고 있는 러시아 여성들 가운데 일부는 외국인 남성만 골라 사귀겠다고 다짐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러시아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런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서 여러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시작 단계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