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민심 규합해 이재명 대표와 경쟁 가능성…총선 앞두고 정부·여당에 함께 맞설 수도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뒤 미국으로 떠났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돌아왔다. 이낙연 전 대표는 6월 2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귀국 연설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나라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내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며 “이제부터는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이 전 대표가 정계 복귀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그가 누구를 만날지, 어디를 방문할지, 어떤 메시지를 낼지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렸다.
이 전 대표는 귀국 나흘 후 첫 대외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DJ) 묘역을 찾았다. 이 자리에는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설훈 윤영찬 의원 등이 동행했다. 이 전 대표는 묘역을 참배하고 “1년 전 출국할 때도 여기 와서 출국 인사를 드렸던 것처럼 귀국 인사를 드리게 됐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정치의 원점”이라고 강조했다.
야권 안팎에서는 이 전 대표의 DJ 묘역 참배 첫 공식일정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 전 대표 스스로도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인물로 김 전 대통령을 꼽기도 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 중 가장 연장자인 만큼 예우상 가장 먼저 찾았다는 것이다. 다음 행선지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와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예방이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가 ‘호남의 상징’과도 같은 DJ를 통해 현재 공석인 호남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뒤이은 주말 일정으로 곧바로 호남을 찾는 것도 분석에 무게를 더한다. 이 전 대표 측은 29일 “비공개 개인 일정”이라며 “이 전 대표가 30일과 주말 광주·전남에서 일정을 소화한다”고 전했다. 전남 영광의 선친 묘소와 5·18 묘역 참배 등을 할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이 전 대표가 정치활동 재개를 위해서는 본인의 본거지인 호남 민심 규합이 필수적이다. 이 전 대표는 전남에서 국회의원 4선을 지냈고, 전남도지사까지 역임했다. 하지만 2021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호남은 이낙연 당시 후보를 밀어주지 않았다. 광주·전남에서만 박빙 우위를 거뒀을 뿐, 전북에서는 이재명 당시 후보에게 과반 득표율을 내줬다. 결국 돌아온 이 전 대표가 차기 대권 등 도전에 나섰으며 그 시작으로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표심 다지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현재 당권을 쥐고 있는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 설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조만간 전격 ‘명낙회동’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표가 이 전 대표에게 안부인사차 전화를 걸어 만남을 제안, 날짜를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표와 이 대표 측 모두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대응하고 내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위해 순탄하게 뜻을 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양측이 지난 대선 경선 이후 여전히 껄끄러운 감정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
지난 2021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는 50.29%라는 아슬아슬한 과반 득표율로 이낙연 전 대표를 꺾고 결선투표 없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모든 당내 선거가 그러하듯 결과가 나오면 패배한 후보는 승복하고 승리한 후보는 포용해, 본 선거 승리를 위해 단결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는 경선 이후 완벽한 봉합에 실패한 모양새를 보였다. 경선 결과 발표 직후 이낙연 캠프 일부 관계자들이 중도사퇴 후보 득표처리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며 ‘경선 불복’ 모습을 보인 것.
이후 대선 과정에서는 이낙연 캠프에 몸담았던 일부 인사들이 이재명 선대위 요직을 맡고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오히려 사보타주(의도적으로 일을 게을리 해 손해를 주는 행위)를 했다는 친명계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앙금은 ‘이재명 대표의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전당대회 당대표 출마→이재명 지도부 출범’ 등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분출됐다. 친이낙연계 등 비명계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을 이유로 이재명 대표 체제를 흔들자, 이른바 ‘개딸’을 중심으로 강성 지지자들은 비명계를 두고 ‘수박’이라고 표현하며 비판의 수위를 올렸다.
실제 민주당 일각에서는 개딸들의 행동이 두 사람의 회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낙계인 윤영찬 의원은 6월 30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우선 두 분 사이에 신뢰가 복원돼야 한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악마화가 급격히 퍼지고 있다”며 “만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해달라”고 이 대표의 행동을 촉구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대표는 차기 대선 도전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이 전 대표 역시 여전히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두 사람의 재경쟁은 불가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당내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당내 대선 레이스가 벌써 불붙고, 논란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야권발 ‘호남 신당’ 시나리오에 이낙연 전 대표가 주연을 맡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다. 이재명 체제 아래서 민주당 공천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비명계 인사들이 호남 신당을 창당하고, 그 구심점 역할을 이 전 대표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은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친문계 친낙계는 이미 당권을 쥐어본 사람들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표-대통령 체제를 겪으면서 규모나 재산이 엄청나게 확대됐다. 이를 두고 나가서 창당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호남 민심이 언제나 개혁에 대한 열망이 높지만, 최근 지역 민심이 민주당을 떠난 신당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도 신당 창당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두 사람이 당 외부적 요인 때문에 손을 잡게 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야권 탄압이 수위를 높여가고 있고, 당장 차기 총선이 9개월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
이낙연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총연맹 연설에 대해 “대통령이 속히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 전 대표는 30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대통령이 전임 정부를 향해 ‘반국가세력’이라고 공언했다”며 “참으로 위태로운 폭력적 언동이다. 나라를 어쩌려고 그렇게까지 폭주하는가. 집권세력 생각이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 위기”라고 우려했다.
이어 “폭언 다음 날 대통령실은 문제의 발언이 전임 정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며 “대통령의 잘못된 발언을 뒤늦게 주워 담는 일만도 도대체 몇 번째인가. 아무리 준비 없는 집권이었다고 해도, 이제는 나아질 때도 되지 않았는가”라고 꼬집었다.
이낙연 전 대표가 귀국해 정치활동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구심도 존재한다. 지난 몇 년간 민주당 당대표와 대선 경선후보를 거치면서 본인이 가진 역량을 모두 보여줬다는 것이다.
야권의 또 다른 관계자의 말이다. “친낙계라고 계파를 분류했지만 사실 친문계에 가까웠다. 이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했기 때문에 친문계가 힘을 실어준 것이다. 최근 보면 스스로 친낙계라고 밝히는 의원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인천공항에 마중 나간 정치권 인사나, DJ 묘역 참배에 함께한 인사도 몇 명 안 되지 않았느냐.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낙계를 10명 안팎으로 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대선주자 지지율을 봐도 이 전 대표는 한 자릿수다. 정치권에 큰 파장은 없으리라 본다”고 전망했다.
실제 한국갤럽이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사흘간 자체 조사한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전 대표는 2%를 기록했다. 22%의 선호도를 보인 이재명 대표와 차이가 현격하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