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이벤트 앞두고 게이트 또 열리나
<일요신문>은 이미 지난 4월 725호 ‘검찰, 김재록 닮은꼴 브로커 K 씨 내사 확인’과 729호 ‘사법처리 임박 부동산 브로커 김 씨와 얽힌 사람들’을 통해 김 씨 관련 검찰 수사 사실을 보도해왔다.
김 씨의 주 혐의는 헐값에 땅을 사들인 뒤 개발정보를 부풀려 비싼 값에 되팔아온 이른바 ‘기획부동산 사기’다. 김 씨는 지난 2003년 충북 제천의 관광지 일대 땅을 매입한 뒤 “개인용 펜션을 지을 수 있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100억 원 이상의 부당이익을 챙기는 등의 수법으로 부를 축적해왔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회삿돈 245억 원을 횡령하고 세금 89억 원을 탈루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245억 원 중 용처가 파악되지 않은 30억 원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 씨가 호남 출신 정치인들과의 친분이 두터운 점 때문에 김 씨 돈이 정치권에 유입됐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김 씨의 검은 돈 규모가 과연 30억 원 뿐일까. 김 씨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보여준 검찰의 ‘정성’에서 김 씨 사건의 여파가 일파만파 퍼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김 씨에 대한 사법당국의 내사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김 씨에 대한 특별경제가중처벌법에 의한 사기 혐의가 총 6건 인지됐는데 그 중 두 건은 무혐의 처리되고 나머지 네 건은 혐의가 모두 인정돼 이번에 기소됐다. 검찰은 김 씨에 대해 1년 가까이 비보도 원칙으로 수사를 벌여왔다는 후문이다.
지난 3월 22일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조세범처벌법 a위반으로 김 씨에 대한 고발이 접수되자 내사에 박차를 가했고 한 달 후인 4월 22일 김 씨를 구속했다. 서울구치소 수감 이후 김 씨에겐 또다른 혐의가 추가됐다. 5월 2일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조세범처벌법 위반 고발 건이 추가로 접수됐으며 5월 4일엔 검찰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에 따른 사기혐의를 인지했다.
김 씨를 두고 검찰청사 주변에선 “이번엔 제대로 걸렸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김 씨의 사법당국 출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사법당국은 김 씨에 대해 지난 DJ 정권 시절부터 최근까지 총 40차례의 입건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대부분 사기 혐의로 인한 고소 고발이었다. 지난해 말 김 씨의 삼흥그룹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154명이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방의 온천 일대 분양과 관련한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법당국의 조사를 무수히 받았음에도 김 씨가 구속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김 씨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정치인들의 비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부동산 업계에 삼흥그룹의 대표 계열사로 알려진 곳은 삼흥컨설팅과 삼흥종합개발이라고 한다. 이 업체들은 그동안 전국을 누비며 수백~수천억 원대 부동산 투자를 해왔는데 정작 삼흥컨설팅은 자본금 5억 원, 삼흥종합개발은 자본금 15억 원의 소규모 법인이다. 삼흥컨설팅은 지난 연말에 ‘해산간주’된 것으로 등기부상 기재돼 있다. 이와 동시에 삼흥그룹의 인터넷 홈페이지 역시 올 초부터 폐쇄된 상태다.
▲ 김현재 씨 SBS-TV 캡처 | ||
검찰은 현재 김 씨와 연관된 10명 정도의 정치권 인맥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정치자금이 유입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김현재 리스트’의 정확한 면면이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김 씨 건을 두고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비보도’를 요청해왔을 만큼 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이들 정치인들에 대한 계좌추적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주목할 점은 김 씨 인맥이 전·현직 여권 인사들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광주 전남 지역사회에서 제법 알려진 인물이다. 호남매일신문의 소유주이며 김상현 전 의원의 호를 딴 후농청소년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해왔다. 김 전 의원은 이 재단의 고문직을 맡고 있다. 동교동계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김 씨에 대해 “민주당 구파에 붙어서 그들 이름을 팔고 다니던 인물로 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지난 2000년 새천년민주당 경기도지부 국정자문위원을 지냈으며 지난해에는 열린우리당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법무부가 주최한 ‘국토순례 대장정’ 해단식에 천정배 장관, 김상현 전 의원과 나란히 참석해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남 부의장을 맡았던 김 씨는 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전력도 있다. 그밖에 박영선 문학진 염동연 이계안 김한길 의원 등 현 여권 핵심인사들이 김 씨로부터 최근 1~2년간 후원금을 받아 그 인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측과 민주당 측은 김 씨와의 연관성에 대해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한나라당 측은 ‘진상조사단 구성’ 의사까지 밝히고 있다.
김 씨 관련 수사범위에 대해 검찰 수뇌부도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현직 여권 인사들에 대한 정치자금 조사는 곧 정치적 논란을 낳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라는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이 어떤 행보를 취할지에 정·관·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