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 조성 땐 500여 세대 날아가 보상 진통 불가피…건물 높이·용적률 완화해 종묘 경관 해칠 우려도
#보상 때문에 진통 잘 넘길 수 있을까
문제는 세운상가군 일대에 워낙 거주민이 많고 사업계획이 복잡해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안석탑 세운상가 시장협의회 회장은 “4구역 보상하고 철거하는 데만 17년이 걸렸다. 상가 양옆 구역 주민들한테 보상하고 철거하고 건물까지 다 올린 후에 얻을 이득으로 상인들이랑 다시 협상하려면 지금 시장 임기에는 죽었다 깨나도 할 수가 없다”며 “세운상가만 해도 지주들이 300명이 넘고 세입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상식적으로 쉽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인 청계-대림 상가 주변 3-2구역은 보상 문제로 시끄럽다. 3-2구역은 당초 계획과 달리 절반밖에 철거를 못한 채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안석탑 회장은 “결국 보상 협의가 제대로 안 된 까닭”이라며 “그 문제 때문에 최근 중구청에서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세운상가 5~8층에 위치한 세운아파트 자치위원회 관계자는 “세운아파트만 해도 100세대고 세입자는 400명이 더 있다. 철거하려면 상가들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있는 아파트와 PJ호텔 쪽까지 보상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퇴계로에 위치한 진양·인현상가의 한 관계자는 “인현이 187세대고 진양이 287세대고 보양아파트도 70세대 정도 되는데 서울시 계획대로면 약 500세대가 머무는 상가가 녹지로 바뀌면서 다 날아가는 거다”라며 “오랫동안 영업을 해 온 만큼 자릿세라는 게 있다. 소유주뿐만 아니라 세입자들도 철거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줘야 하고 그걸 챙겨주지 않으면 절대 나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역 시민단체인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의 한 관계자는 “오랫동안 모여서 도심에서 일하셨는데 개발로 밀려나면서 일터를 뺏기는 부분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대체공간을 조성해준다고 하지만 대규모로 조성된 상권 전체를 옮길 수는 없는 만큼 적잖은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종묘 경관 해칠 우려 제기
세운상가군을 전부 철거하고 녹지 공간을 조성하려면 사업시행자들이 상가 양쪽 구역에 올린 건축물들에서 최대한 이윤을 내야 한다. 이윤을 낸 사업시행자들이 세입자 등의 원만한 보상과 이주를 통해 상가 매입을 마무리지어야 세운상가군 일대를 시에 기부채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재건축 구역의 높이와 용적률 규제를 한껏 푼 까닭이다.
서울시는 지난 6월 세운 3구역과 5구역, 그리고 6구역을 기존 계획 높이인 90m대에서 2배가 넘는 200m대로 올리는 계획을 내놓았다. 용적률은 1500%까지 높아진다. 3구역과 5구역은 세운상가 바로 뒤쪽으로 이어진 청계상가와 대림상가의 양옆 구역이다. 종묘에서는 한 블록 떨어진 위치지만 문제는 건축물 높이 규제를 지나치게 푼 까닭에 종묘 경관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의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관계자는 “200m짜리 건물을 세워버리면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120m 정도가 노출돼 경관을 크게 해친다”며 “영국 리버풀처럼 재개발로 도심 경관이 바뀌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박탈된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지 40년간 개발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는 종묘의 역사경관 훼손 우려로 인한 문화재 심의가 장기간 진행된 점이 꼽힌다. 오세훈 시장이 2006년에도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하며 최고 높이 122.3m, 36층 건물 8동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지만 문화재청의 반대로 4구역의 건물 높이 계획을 52.6m로 낮춰야 했다. 박원순 전 시장이 부임하던 2015년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종묘와 약 400m 거리에 있는 3·5구역은 건물 높이가 71.9m를 초과하는 경우, 그보다 먼 6-3구역은 91.2m를 초과하는 경우에 문화재청과 협의하도록 했다.
그러나 현재 세운지구에서 문화재청 협의 대상지역은 종묘와 인접한 2, 4구역만으로 축소된 상태다. 3, 5, 6구역 등 청계천 이남 지역의 경우 문화재청의 심의 대상 구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울시 조례상 문화재 주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범위가 애초에 100m 이내다. 원래 4구역도 엄밀히 따지자면 심의 대상이 아닌데 서울시 측에서 따로 협의를 요청한 것”이라며 “서울시가 3, 5, 6구역에 대한 협의를 요청하지 않으면 문화재청 심의가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굉장히 치명적인 높이이긴 하다. 종묘 경관에 고층 건물이 잡힐 경우 조망성이 저어될 우려가 있다”며 “문화재청 입장에서도 보호구역 바깥의 문제라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 같지만 제2금강교 때처럼 유네스코에서 유산영향평가를 통한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권고가 내려올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유산영향평가란 세계유산의 유산구역이나 완충구역 혹은 그 주변 지역에서 발생하는 건설 및 개발계획이 세계유산의 탁월한 가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평가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8월 세계유산인 충남 공주 공산성 인근에 제2금강교를 건립하면서 최초로 ‘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한 후 건립을 허가받은 사례가 있다.
세운지구 개발과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높이를 200m대로 올리는) 3, 5구역 관련된 계획은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이 아니고 관련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확정할 계획”이라며 “3, 5구역은 문화재청 협의 대상이 되는 구역은 아니므로 심의를 따로 요청하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