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표본조사’ 후행성 탓 밑바닥 시장 반영 한계…통계에 너무 의존 말고 실용주의 관점서 접근해야
문제는 대체로 평론가나 학자들은 일정한 경향성을 띤다는 것이다. 이들이 세상을 보는 창은 당위론이라는 렌즈다. 집값이 내릴 때나 오를 때나 부동산시장은 투기적 거품이 가득한 비합리적 존재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젊은 층은 집도 못 사는데, 언제나 집값은 정상이 아니라는 논조를 편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시장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한쪽의 이야기만을 꺼낸다. 부정적인 담론을 꺼낼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덩달아 명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은 담론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집값은 평론가가 아니라 구매력을 갖춘 유효수요가 결정한다. 당신이 만약 부동산학자나 부동산 평론가가 될 것이라면 그 담론에 충실해도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담론에 지나치게 함몰되지 말라.
물론 시장의 큰 흐름은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책상에서 앉아서 떠드는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지기 쉽다. 주로 거론하는 근거는 표본조사 통계다. 통계는 시장에서 거래된 것을 집계하므로 기본적으로 후행적인 특성을 갖는다.
가령 한국부동산원에서 발표하는 서울 기준 아파트 표본조사 통계(월간)는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보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8개월 늦다. 가령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는 2023년 1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표본조사 통계는 4개월 뒤인 5월 들어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우리 동네 아파트는 싼 게 다 팔리고 가격이 올랐는데도 여전히 전문가들이 집값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표본조사 통계를 쓰기 때문이다. 이 통계에는 사전에 정해둔 3만 6000개(아파트 기준)의 표본이 있다. 표본조사 통계는 우리나라 국가 공식 통계로 활용된다.
하지만 표본조사 통계를 보고 집을 사고팔면 이미 늦다. 그럴듯한 분석으로 명성을 얻고 싶지 않은, 그냥 평범한 내 집 마련 실수요자는 아파트 실거래가를 보는 게 낫다.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는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R-ONE)’이나 모바일 앱 ‘부동산정보’를 다운로드하면 누구나 볼 수 있다. 거래되는 아파트를 모두 전수 조사해 만들어 바닥지수에 더 가깝다. 실거래가격지수는 거래량이 적거나 특정 단지 위주로 거래량이 많을 때 전체시장과 따로 노는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표본조사 통계보다는 밑바닥 시장 흐름을 정확하게 반영해 개인 입장에서는 유용한 지표다.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를 보기 힘들다면 인근 2000가구 이상 대단지 랜드마크를 보는 것도 좋다. 랜드마크 아파트는 시장 흐름의 풍향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KB선도아파트 50지수 역시 실수요자가 활용하기 좋은 지표다. 시가총액 상위 50곳을 모아놓은 지수로 비교적 빠르게 흐름을 포착할 수 있는 바닥 지표다.
개인 관점에서 부동산의 답은 통계가 아니라 현장에 있다. 특히 단기적 흐름은 통계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 오죽하면 “3대 거짓말은 단순 거짓말, 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일부 평론가는 주택시장 회복 시점과 내 집 마련 시기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 같다. 주택시장 회복 시점이 되면 현장에선 싼 매물이 다 팔려 되레 비싼 값에 내 집 마련을 해야 할 수 있다. 요컨대 실수요자라면 통계 중심의 평론가적 시각보다는 현장 중심의 실용주의적 접근이 좋다. 자, 이제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라. 그리고 스탠스를 분명히 하라. 나는 부동산 평론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실수요자가 될 것인가?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