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학계 표본 요구 왜? 혼란 줄이는 검증법…주류 이론과 다른 원리로 작동? 그럴 가능성 낮게 봐”
학계에서는 상온 초전도체 LK-99 발견 소식에 다소 냉담한 반응이다. 일요신문은 ‘상온 초전도체’ 광풍의 끝은? 학계 “학술 논의 단기간에 끝날 일 아니다” 기사를 통해 현재 교차 검증을 하는 초전도 분야 국내 대표적인 학술단체 한국초전도저온학회 상황을 전한 바 있다. 다만 이 같은 학회 활동에도 여전히 LK-99를 둘러싼 오해가 쏟아지고 있다.
일요신문은 ‘색연필 과학만화’ 등으로 석·박사 과정 시절부터 일종의 ‘과학 커뮤니케이터’ 활동도 병행해 온 김석현 박사(경희대학교 연구교수)에게 현재 쌓여 있는 오해에 관해 들어봤다. 김 박사는 최근 상온 초전도체 관련 논란을 두고 유튜브를 개설했고, 개설하자마자 초전도체 관련 동영상 조회수가 1만 회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물리학과 박사를 졸업했고, 스탠퍼드대학교 등에서 그래핀, 반도체, 초전도체 등 다양한 신소재 물질의 성질을 연구한 바 있다.
―최근 상온 초전도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먼저 과거 초전도체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 장치를 개발하고 실험을 한 적은 있지만, 초전도체 한 우물을 판 연구자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다만 현재 초전도체 관련 논란이 매우 뜨거워, 일정 부분 대신 설명할 수 있는 부분에서 오해나 궁금증을 풀어드릴까 한다. 상온 초전도체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고 죽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타났다. 흔히 2004년 발견된 ‘그래핀’과 비교하는데, 그래핀을 스카치테이프로 분리해 낸 발견자도 노벨상을 받았다. 만약 상온 초전도체 발견이 사실이라면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허언이 아니다.”
―국내외에서 검증에 나섰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국내는 해외처럼 직접 안 만들고 퀀텀에너지연구소에 표본만 달라고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표적인 오해다. 국내 학자가 팔짱 끼고 간섭만 하는 것처럼 묘사하거나, 기성학자라 새로운 이론이나 발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논문을 세밀히 검토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한국 연구자들은 이미 실험도 하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는 한국까지 와서 표본을 가져갈 수 없으니 직접 만들어 본 거고, 한국에서는 바로 옆에 있으니 수월하게 협조 요청을 추가로 할 수 있는 거다. 예를 들어 요리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만들어도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직접 만들어 둔 요리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만에 하나 LK-99 논문이 잘못됐다고 가정해 보자. ‘논문을 통해 만들어 봤는데 안 된다’고 해도 연구진 측은 ‘합성 방법이 잘못됐다. 우리는 분명히 제대로 된 방법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혼란을 줄일 수 있는 게 표본 확인이다. 논문을 통해 표본을 만들어서 해봐도 밝힌 LK-99가 표본과 같은지 다시 한번 확인해 검증하는 차원도 있다.”
―LK-99를 두고 한국초전도저온학회가 검증에 나서는 게 이상하다는 반응도 있다. 왜 초전도‘저온’학회가 나서냐는 질문이다.
“초전도체 관련해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가 한국초전도저온학회다. 보통의 초전도체는 특수 냉각재인 액체 헬륨으로 냉각시켜야만 작동하는데, 일부 초전도체는 조금 덜 차가운 액체 질소로도 작동이 가능하다. 액체 질소는 손으로 만지면 동상을 입는 저온 물질이지만, 물리학적으로 봤을 때는 꽤 높은 온도이기도 하다. 액체 헬륨의 입장에서는 액체 질소건 상온이건 매우 높은 온도다. 액체 질소 초전도체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이 학회가 상온 초전도체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상온 초전도체를 한국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더 공격받는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불이익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최근 한국도 꽤 알아주는 과학 국가가 됐기 때문에 한국이기 때문으로 단정하긴 어렵다. 새로운 발견 이후 검증과 비판은 당연하다. 최근 미국 로체스터대학 교수가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도 엄청난 공격과 비판으로 네이처가 논문을 철회한 바 있다. 똑같은 발표를 미국이나 영국에서 했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상온 초전도체 발견을 두고 학계가 부정적인 이유가 있나.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BCS 이론’이라는 게 있다(이 이론을 발견한 바딘·Bardeen, 쿠퍼·Cooper, 슈리퍼·Schrieffer 세 사람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 아주 쉽게 설명하면 구리나 은처럼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이라도 전자는 빽빽한 숲을 지나가는 사람처럼 나뭇가지에 탁탁 부딪히는 저항력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일정 온도 이하 초전도체 속을 지나는 전자는 잘 훈련된 군사들처럼 나무 사이를 쓱쓱 지나다닌다. BCS 이론을 쉽게 설명하면 초전도체 속에서는 전자가 2인 1조로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데, 이때 혼자 다니는 것보다 나무에 안 부딪힌다고 본 것이다. 1972년 BCS 이론 발표자 3인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앞서 말한 대로 일부 물질은 액체 질소에서도 초전도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고온이면 2인 1조의 손을 잡는 결합력이 버티지 못하고 결합이 깨져야 하는데, 그런데도 초전도 상태가 유지되는 이유는 아직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채 수십 년째 장기 미제 사건처럼 남아있다. 대략적인 몽타주는 나왔는데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로 보면 된다. 이번 상온 초전도체 발표자는 주류 이론인 BCS 이론을 부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LK-99를 만든 연구자들은 이 물질이 BCS 이론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만에 하나 LK-99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현대 물리학의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는 발견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럴 가능성은 낮게 본다.”
―이번 연구가 또 다른 첨단 신소재인 그래핀과 많이 비교된다. 그래핀에 관해 설명해 달라.
“물리학자들은 그래핀이나 상온 초전도체 모두 실험적으로 구현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2차원 탄소 결정체인 그래핀은 3차원 세상에서 2차원 평면인 물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주목받았다. 2004년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인 그래핀을 만드는 방법도 ‘스카치테이프’를 흑연에 붙였다 뗐다 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어 냈다. 그래핀이 있으면 그동안 이론으로만 예측되었던 2차원의 물리 현상들을 실험으로 검증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연구자들에게는 물질세계에서 미지의 대륙이 발견된 것과 마찬가지로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래핀의 발명자들은 노벨물리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래핀 발견 이후 실제 생활에 적용된 예도 있나.
“그래핀이 발견된 뒤 그래핀을 소재로 한 반도체가 현재 주류인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것이란 얘기도 나왔고, 각종 분야에 도입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도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그래핀이 실용화된 예는 많지 않고,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단계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든 이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여객기가 나왔다. 앞으로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아직 명확한 사례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온 초전도체가 설령 실제로 발견되더라도 실생활에 적용할 때는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견될 수 있다. LK-99를 두고 벌써 주가가 움직이는 건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다.”
―끝으로 이 기사를 보는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이번 이슈에 대해 많은 분이 보여 주신 뜨거운 반응에 대해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러니 만큼 새로운 발견에 대해서 철저한 검증을 하는 것을 답답해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어쩔 수 없다. 과학자는 원래 의심하고 보는 것이 직업이며, 뼛속까지 박힌 습관이다. 의심하지 않고 검증 없이 쌓아 올려진 과학 연구는 마치 꼭 필요한 철근을 빼고 부실 공사로 쌓은 건물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 이슈에 관심 있는 모든 분이 조금만 숨을 고르고 기다려 주셨으면 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