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위 김창영 교수 “현 상태론 LK-99 저널 게재 가능성 없어”…연구진 지나친 관심에 불안감 호소 경찰 출동도
퀀텀에너지연구소와 함께 세계 최초로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만들었다고 주장한 권영완 고려대 연구교수는 8월 3일 이메일로 이같이 밝혔다. 권 교수는 일요신문에 LK-99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학계 검증을)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가십성 기사에 저는 별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퀀텀에너지연구소 관계자는 8월 2일 기자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공식적인 발표를 준비 중"이라고만 밝혔다. 일요신문은 8월 3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퀀텀에너지연구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빌라 지하에 위치한 연구소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경찰이었다. 경찰은 "연구원들이 불안감을 호소해서 저희가 출동했다. 연구에 집중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초전도 분야에서 국내 대표적인 학술단체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현 단계에서 해당 물질(LK-99)이 상온 초전도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8월 2일 공식입장을 냈다. '현 단계'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초전도체를 둘러싼 지나친 기대감에 일침을 가한 격이다.
애초 학회는 공식입장을 내지 않으려 했다. 자칫 동료 연구자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서였다. LK-99 연구팀 논문은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올라왔다. 과학저널에 실린 논문은 게재 과정에서 검증을 거친다. 이와 달리 아카이브에는 누구나 논문을 올릴 수 있다. 논문 공개 이후 검증 과정이 진행된다. LK-99 연구팀 논문은 7월 22일 공개됐다. 일주일 만에 검증이 이뤄질 수는 없다.
학회가 공식입장을 내기로 한 건 초전도체 테마주 광풍을 지켜만 볼 수는 없어서였다. 학회장인 최경달 한국공학대 교수는 "논문 검증은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린다. 그런데 주식이 요동을 치고 난리가 났다. 검증 단계를 기다리지 못한 세력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학회 입장이 나온 뒤에도 초전도체 테마주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초전도 소재 전문기업인 코스닥 상장사 '서남' 주가는 8월 3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사흘 연속 상한가였다. 초전도체 관련주로 엮인 '덕성' 역시 사흘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덕성은 초전도체 연구를 과거에 추진한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련주가 됐다. 이외에도 고려제강, 모비스, 서원, 대창, 신성델타테크 등 초전도체 관련주에 개미투자자들이 불나방처럼 모여들었다(관련기사 ‘꿈의 물질’ 그게 돈이 됩니까? 증시 뒤흔든 상온 초전도체 테마주 톺아보기).
서남 주가는 7월 24일 2950원에서 8월 3일 1만 980원으로 8거래일 만에 2.7배 급등했다. 서남 주식 하루 거래대금은 약 5억 원 수준에서 8월 3일 약 2640억 원으로 527배 폭증했다. 이는 서남의 8월 3일 시가총액 2450억 원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른바 '단타' 거래가 많았다는 의미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가 꾸린 LK-99 검증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창영 서울대 교수는 "주가가 올라도 서남에 계신 분들한테 좋은 일은 아니다. LK-99가 상온 초전도체가 아닌 걸로 나중에 밝혀지면 초전도체에 속았다고 하면서 관심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8월 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려했다. 최경달 교수 역시 "기대가 크게 올라갔다가 꺾이면 더 곤두박질친다"며 "초전도체가 다 사기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0인 물체를 말한다. 보통 도체에 전기가 흐르면 저항이 생긴다. 움직이는 전자가 원자에 충돌하면서다. 전기저항으로 인해 전류가 흐르는 과정에서 전력 일부는 손실된다. 이 때문에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 중 상당량은 가정이나 공장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사라진다.
초전도체를 쓴다면 전력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초전도체가 꿈의 물질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문제는 이제까지 만들어진 초전도체는 매우 낮은 온도(영하 수백℃) 혹은 높은 압력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상당하다. 그래서 초전도체는 상용화에 한계가 있다.
상온 초전도체 개발 시도는 1911년 초전도체가 최초로 발견된 이래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온도를 올리는 데는 성공해도 반대급부로 압력이 아주 강해야 해서 이 또한 상용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는 과학계 난제 중 하나로 불렸다.
그런데 학계에서 유명하지도 않은 LK-99 연구팀이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며 논문을 공개했다. 심지어 권영완 교수가 작성한 논문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 논문에서 이처럼 단정적인 문구는 드물다. 대개는 '가능성이 높다'는 첨언과 '특정 환경에서 가능하다'는 단서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논문에 서술된 LK-99 제조 방법은 크게 특별한 것도 없었다. 거칠게 요약하면 구리, 납, 인을 섞은 뒤 가열하는 과정이 전부다. 재료와 과정 모두 새로울 게 없다. 진위가 의심스러우면서도 제조 방법이 많이 어렵지는 않다 보니 LK-99를 재현해보겠다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 연구실에서 이어졌다.
한 편의 영화 같은 LK-99 연구팀의 내력도 LK-99를 향한 세계적인 관심에 한몫했다. 고 최동식 고려대 교수는 LK-99의 근간이 된 초전도체 이론을 1990년대 이미 주장했다. LK-99의 '99'는 초전도체 후보 물질을 발견한 연도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 교수의 초전도체 연구는 주류 학계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석배 대표 등 퀀텀에너지연구소 구성원 다수는 최 교수 연구실 출신으로 알려졌다. 2017년 작고한 최 교수는 이 대표 등에게 상온상압 초전도체 연구를 계속해달라고 유훈을 남겼다고 한다. 제자들이 대를 이어 변방에서 연구를 이어가면서 30여 년 만에 결과물을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주류 학계 반응은 냉담하다. 김창영 교수는 "일반 대중이어도 과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LK-99 논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지금 상태로는 LK-99 논문이 저널 게재 승인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초전도체는 저항이 0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논문을 보면 저항이 확 줄어들어도 구리보다 저항이 크다. 구리보다 10배 이상 크다. 좋은 도체도 아닌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김 교수는 LK-99에서 초전도체 특성인 마이스너 효과(자석에 반발하는 반자성)가 나타났다며 연구팀이 공개한 영상과 관련해 "일반적인 초전도체가 보여주는 마이스너 효과와 행동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LK-99 검증위원회는 우선 LK-99 재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 해외 연구소에서 재현에 실패한 바 있다. 연구팀이 공개한 제조 방법만으로는 초전도체 양산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검증위원회는 퀀텀에너지연구소로부터 LK-99 샘플을 전달받으면 초전도체가 맞는지도 곧바로 확인할 계획이다. 샘플을 받기만 한다면 확인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저항값이 0이 되는지만 측정하면 된다. 이와 별개로 LK-99 연구팀 논문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 검증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LK-99가 초전도체는 아니라고 판정 내려진다고 해도 연구팀이 사기를 쳤다는 뜻은 아니다. LK-99가 초전도체는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가치 있는 다른 물질일 수도 있다. 혹은 초전도체 연구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김창영 교수는 "과학자로서 여러 시도를 해보는 건 당연하다. 우연히 발견되는 것도 워낙 많다. 엉뚱한 생각을 해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경달 교수는 "자기 주식이 관련돼 있든 단순한 애국심이든 상온 초전도체가 사실이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한편으로는 상온 초전도체인지 아닌지 판정을 내려줬으면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학술적인 논의는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