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원인은 수출이 위축된 것이다. 그리스 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확산되면서 유럽연합은 물론 전 세계경제가 불안에 휩싸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수출의 숨통이 막혔다. 올 들어 비틀거리기 시작한 수출은 지난 7월 전년 동기 대비 8.8% 감소했다. 연간 수출증가율이 20%를 넘던 우리 경제로서는 결정적인 타격이다. 설상가상으로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서 민간소비가 얼어붙었다. 이렇게 되자 수출시장과 내수시장이 맞물려 무너지는 동반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 주재로 끝장토론까지 벌이며 대책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경제는 총체적인 위기에 처했는데 총부채상환비율(DTI) 일부 완화, 골프장 개별소비세 인하 등 효과가 불확실한 지엽적인 조치만을 내놓자 오히려 정부가 정권말기에 속수무책의 무능을 드러냈다는 실망감만 커지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위기는 몰려오는데 정부정책이 신뢰를 상실하여 경제의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 경제의 주축인 수출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기업들로 하여금 수출시장을 신흥국들로 다변화하고 동시에 신제품 개발이나 기술혁신 등을 통해 선진국 기업들이 차지했던 시장을 우리 영토로 만드는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펴야 한다. 또 정부는 경제를 지키는 보루인 내수산업 발전을 위해 감세, 규제완화, 고환율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번 재벌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를 살리는 투자에 앞장서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물론 경제내부에 ‘내수산업 발전→고용창출→소비증가→다시 내수산업’의 발전의 선순환구조가 형성되게 해야 한다.
올바른 재정정책과 금융정책도 절실하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은 선심성 공약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의 약속대로 공약을 추진할 경우 재정파탄은 불가피하다. 정부는 정치권의 요구에 의연하게 맞서 예산의 낭비를 막고 정부 지출의 효율성을 높여 재정정책의 경제 활성화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한편 금융정책의 개혁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독과점의 힘을 이용하여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에게 높은 이자를 물려 배를 불리는 반경제 행위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은행이 서민경제를 희생이 아니라 회생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들에게 적극 지원해 경제회복을 이끄는 본연의 모습을 찾도록 해야 한다.
경제는 채찍으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차기 정부에 넘겨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은 정부 정책과 경제회복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