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군’ 게임에서 ‘잭팟’ 펑펑
▲ 지난 4월 22일 국6군 경주 삼복승식에서 1만 134.3배의 배당이 기록되는 등 ‘하위군 경주’에서 초고배당 경주가 나오는 경향이 강하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올 초부터 여름 휴장기 직전인 지난 7월 29일까지 과천경마장에서 치러진 경주는 모두 602개 경주. 이 가운데서 경마팬들에게 꿈의 배당인 999배를 넘어선 초고배당 경주는 총 21개(3.4%)로 집계됐다. 30개 경주 중 한 번꼴로 1000배가 넘는 배당이 터진 셈이다. 반면 초저배당을 낳은 경주는 모두 14개 경주(2.3%)로, 오히려 초고배당 경주보다 빈도가 낮았다.
초고·초저 배당은 과연 어떤 경주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단순히 보자면 고배당은 인기마들이 입상을 하지 못할 때, 저배당은 인기마들이 입상할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혹시 이들 초고배당 경주나 초저배당 경주에 각각 어떤 공통점이나 유사점이 있지는 않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초고배당이나 초저배당 경주에서 저마다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주에는 마필과 기수 컨디션, 주로 상황, 편성 등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주별로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초고배당의 경우를 보자.
21개의 초고배당 경주를 분석한 결과 1/3인 7개 경주가 국6군 경주인 것으로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국5군 경주가 5개였다. 하위군 경주마의 경우 걸음이 완성되지 않은 마필들이 적지 않아 경주마다 기복을 나타내곤 하는데, 이러한 점들이 경주 결과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상위군으로 갈수록 초고배당이 나온 경주는 드물었고, 국1군과 혼1, 혼2군 경주에서는 단 한 번도 초고배당 경주가 나오지 않았다.
또한 국6군 초고배당 경주의 경우 전력이 드러나지 않은 마필이 기습선행으로 입상에 성공하면서 이변을 연출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4월 22일 국6 1200m 경주에서 당시 인기 최하위마였던 온리넘버원(로이어론(랑퍼 자마) 자마)이 기습선행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쌍승식 2877.9배, 삼복승식 1만 134.3배의 엄청난 배당을 기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3월 31일 국6 1000m 경주에선 인기 최하위권이던 천상의대마(컨셉트윈 자마)가 기습선행에 나선 끝에 인기 1위마인 과천돌풍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하위권인 쎈순이가 3위로 도착하면서 1806.3배의 삼복승식 고배당이 터지기도 했다. ‘기습선행’에 성공하며 초고배당을 선사한 이들 마필들은 사실 과거 주행조교심사에서 자질을 엿보였거나 혈통이 우수한 말들이었다.
초고배당 경주들 중 상당수가 1400m 경주였다는 사실도 눈에 띄는 점이다. 21개 초고배당 경주 중 1/3인 7개 경주가 1400m 경주였다. 일반적으로 1400m는 앞선에서 뛰는 선행·선입형 마필뿐 아니라 무빙 능력이 있거나 스피드를 지닌 추입형 마필들도 입상이 가능한 거리로 꼽힌다. 결국 승패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주 편성과 전개라는 의미다.
실제로 초고배당이 터진 1400m 경주들을 보면 인기를 끌던 선행형 마필들이 여러 두 포진한 경주가 적지 않았다. 이들 선두권 마필들이 레이스를 빠르게 이끌며 초반에 무리를 했다가 제 페이스를 유지하며 뛴 선입이나 추입형 마필들에게 결승선 직선주로에서 일격을 당했던 것이다. 7월 28일 국2 1400m 경주가 가장 비근한 사례. 당시 인기 하위권 마필로 선입권에서 경주를 전개한 한얼검과 최하위권이던 인터라켄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하고, 추입 마필로 인기 4위권이던 야호필승이 3위로 들어오면서 쌍승식 1381.3배, 삼복승식 1701.9배의 초고배당이 나왔다. 이 경주 역시 인기 상위권 마필들이 초반에 너무 빠르게 레이스를 이끌며(S-1F 기록 13.1~13.2) 경합성 전개를 펴다가 결국 직선주로에서 걸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경주를 통해 하나 더 들여다볼 고배당의 숨은 요인은 다름 아닌 마필 특성과 ‘적정 거리’다. 선행마로만 인식되던 한얼검은 사실 1400m 거리에서는 지난해에 더 무거운 53㎏ 부중을 달고도 중위권 선입전개로 입상한 바 있는 마필이었고, 인터라켄의 경우 국2군 승군 뒤에 장거리 경주에서 부진한 상태였으나 과거 1400m 경주 등 중단거리에서 강점을 보였던 마필이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불량주로에서 초고배당이 많이 터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21개 초고배당 경주 중 불량 및 포화 주로 경주는 5개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건조주로에서 터진 초고배당 경주가 절반이 넘는 12개(52%)에 이르렀다. 물론 건조주로에서 펼쳐지는 경주 수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출주마들의 심한 경합이 예상될 경우 주로가 무거울수록 오히려 고배당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셈이다.
끝으로 초저배당 경주에 대해 들여다보자. 아이러니하게도 초저배당(속칭 점배당) 경주 역시 국6군 혹은 혼4군 경주에서 훨씬 많았다. 14개의 초저배당 경주 중 국6군 및 혼4군 단거리 경주가 무려 10개(71%)나 됐다. 국4군 이상의 국내산마 경주에서는 한 번도 초저배당이 나오지 않았고, 혼2군 이상 경주에서는 단 한 차례 초저배당이 기록됐을 뿐이다(1월 28일 혼1군 2000m 경주 스마티문학과 동반의강자 입상, 복승식 1.9배).
하위군 경주에서 의외로 초저배당이 많이 나온 이유는 출주마들의 전력 차이가 그만큼 큰 경주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초저배당을 형성했던 경주들을 살펴보면 입상한 2두의 마필이 압도적으로 인기를 끈 데다 스피드와 마필 능력에서도 월등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5월 5일 혼4 1000m 경주에서도 서로 인기 1위를 다투던 제삼비술과 리드핸즈톰이 1, 2위를 차지하면서 복승식 1.4배의 초저배당을 기록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초저배당 경주가 대부분 건조주로에서 이뤄진 점도 눈길을 끈다. 14개 초저배당 경주 중 건조주로에서 펼쳐진 경주 수는 무려 10개(71%)였다. 초고배당과 초저배당 모두 건조주로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는 사실은 경마가 얼마나 어려운 추리게임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이장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