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재무구조에 실적 전망도 나빠 포기 가능성…‘헐값 매각 불사’ 산은 자금 투입하며 하나금융 간접 압박
양재혁 하나금융지주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지난 7월 27일 2분기 실적발표 후 이뤄진 컨퍼런스콜에서 KDB생명 인수와 관련한 질문에 “논바인딩(Non-binding·비구속적) 형태의 투자의향서를 낸 상태로 KDB생명의 자체 경쟁력은 물론 그룹 내 시너지 창출 여부까지 고려해야 (인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KDB생명 인수에 대해 ‘투자의향서를 냈을 뿐’이라며 확답을 피한 것이다.
산은 내부에서는 불편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금융지주가 KDB생명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긋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6월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KDB생명 매각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KDB생명 매각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나금융지주의 인수 포기설이 나오는 원인 중 하나는 KDB생명의 열악한 재무구조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KDB생명의 부채비율은 지난 6월 말 기준 2367.23%에 달한다. KDB생명의 지급여력비율은 지난 3월 말 기준 101.6%에 불과하다. 이는 보험업계 최저 수준이다. 3대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의 지급여력비율은 219.5%,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은 각각 232.3%, 181.5%를 기록했다.
지급여력비율이란 보험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에 지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현행법상 보험사는 지급여력비율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하고, 금융당국은 150% 이상을 권고한다. 하지만 KDB생명은 100%를 간신히 넘기는 데 그친 것이다.
KDB생명의 실적 전망도 좋지 않다. KDB생명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764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679억 원으로 11.13% 감소했다. 이혁준 NICE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KDB생명은 장기간에 걸친 매각 추진과 무산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며 “생명보험업계 중위권의 시장지위를 보유 중이지만 지배구조에 대한 불확실성 하에서 판매채널 규모가 축소되는 등 영업기반이 위축되고 있어 경쟁지위의 추가 저하 우려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김선영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도 “(KDB생명은) 대주주 변경과 관련된 불확실성으로 인해 전속설계사 이탈이 발생하고, 초회보험료(고객의 보험 가입 후 처음 납입하는 보험료)가 감소하는 등 신규 영업이 위축되고 있다”며 “영업 위축, 부채구조 및 열위한 수익구조 등을 고려할 때 높은 자본관리부담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랜 경영난으로 KDB생명에 대한 평가가 악화된 점도 향후 실적 악화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KDB생명의 민원환산건수(보험 청구 10만 건 당 민원 건수)는 2017년부터 매년 40건 이상을 기록하며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KDB생명의 지난해 민원환산건수는 241건에 달했다. 2위인 BNP파리바카디프생명의 지난해 민원환산건수가 79건임을 감안하면 KDB생명의 민원환산건수는 압도적이다. KDB생명은 금융감독원의 ‘2022년도 금융소비자 보호 실태평가’에서 평가 대상 보험사 12곳 중 유일하게 ‘미흡’ 등급을 받기도 했다. 언제 KDB생명의 매각과 구조조정이 이뤄질지 모르니 직원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성과보다는 당장의 실적과 자리보전이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은 입장에서 KDB생명을 더 이상 안고 가기에는 부담이 크다. 산은은 헐값 매각 논란이 있더라도 KDB생명을 매각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은은 최근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들었다. KDB생명은 지난 8월 3일 1425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상증자는 오는 10월 최종 완료될 예정이다. 이번 유상증자를 포함하면 산은이 KDB생명에 그간 투입한 금액은 총 1조 3000억 원에 달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산은이 KDB생명의 자본확충을 도우면서 하나금융지주에게 간접적인 압박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산은은 국책은행이고 하나금융지주도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라며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입장에서도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데 산은이 이토록 매각에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인다면 발을 빼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금융지주 입장에서 KDB생명을 선뜻 인수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높다. KDB생명의 매각가는 20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KDB생명의 지급여력비율을 15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약 5000억 원의 추가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 하나금융지주가 KDB생명 인수를 위해 실제로 지출할 자금은 7000억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하나금융지주가 전략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풀이한다. KDB생명 매각가를 인하하거나 산은의 추가적인 자금투입을 종용해 부담을 줄이려 한다는 분석이다.
보험업계에 매력적인 인수합병(M&A) 매물이 많다는 점도 산은으로서는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현재 ABL생명 매각이 진행 중이고, 내년에는 동양생명도 M&A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동양생명의 보유계약은 지난해 말 기준 402만 2972건에 달하지만 KDB생명의 보유계약은 172만 7317건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하나금융지주가 8월부터 KDB생명을 실사하고 있는데 ‘꼬투리’가 나온다면 언제든 발을 빼고, KDB생명 실사를 추후 있을 동양생명 인수전의 예행연습으로 삼을 수 있다”면서도 “하나금융지주 입장에서 KDB생명이 그다지 매력적인 매물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산은과 정부는 한 몸인 만큼 정권 차원의 압박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나금융지주는 이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