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항공사 지상에서도 ‘날개 싸움’
최근 건설교통부가 항공노선 배분기준을 7년 만에 개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간 운수권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대립해 왔던 국내 양대 항공사가 벌써부터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999년 국제항공정책방향 개정 이후 유지해오던 선발항공사와 후발항공사 간의 운항비율 6 대 4를 변경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주요 골자로 알려진다. 운항비율 개정을 줄곧 요구해왔던 대한항공은 이번 개정안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의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6 대 4라는 기준을 완화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미 6 대 4라는 기준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운항비율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이 사고항공사로 지정된 1999년 이후 1년 6개월간 노선면허제재를 받았을 때 아시아나항공이 새로운 노선을 모두 독차지해 현재 운항비율이 5.5 대 4.5로 6 대 4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현재 운항비율은 7 대 3으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두 배가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운항 비율이 서로 다른 이유는 뭘까. 대한항공은 117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국내 14개 도시, 해외 30개국 78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은 59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국내 12개 도시, 해외 17개 국가 59개 도시를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매출뿐 아니라 운항 중인 도시와 승객 수, 운항 횟수 등을 고려하면 운항비율이 5.5대 4.5가 맞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측은 매출 기준으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1분기 대한항공은 매출액 1조 8348억 원 당기순이익 1273억 원, 아시아나항공은 매출액 7961억 원, 당기순이익 413억 원을 기록했다.
건교부의 노선배분 기준에는 ‘운항규모 비율이 최소한 6 대 4’라고 되어 있으나 ‘운항규모’를 규정할 수 있는 세부 기준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이 때문에 건교부가 논란의 빌미를 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건교부는 이에 대해 “어디까지나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지, 실제 운수권 배분은 양사와 건교부의 협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건교부는 운항 비율을 5.75 대 4.25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기업의 경영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위적인 노선 배분은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고 이미 항공산업이 성숙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후발사업자를 배려하는 정책은 맞지 않다”며 개정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일반적인 제조업과 달리 항공산업은 운수권을 국가에서 배정받아야 하기 때문에 노선과 관련해 자유경쟁체제가 될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과 비슷한 시기에 제2민항(ANA)이 설립된 일본도 현재 6 대 4를 유지하고 있고 대만도 5.5 대 4.5다. 6 대 4라는 것은 후발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비율을 맞추고 있다. 현재 국내 항공사 간의 격차가 큰 상황에서 이 비율을 완화할 경우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
한편 대한항공은 사고항공사라는 이유로 운항권을 받지 못한 1년 6개월 간 아시아나항공에 신규 노선이 대거 분배된 것을 두고 일종의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 시기가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1~2년이 지난 시점이고 아시아나항공이 광주 기반의 기업임을 감안하면 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나는 “1999년 대한항공의 잦은 항공 사고로 국민의 여론이 좋지 않았고 이 때문에 노선 배분이 중단된 것일 뿐이다. 오히려 제조업이었다면 품질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된 대한항공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특혜 의혹을 일축했다.
장거리 노선은 대한항공에, 중단거리 노선은 아시아나항공 위주로 배분된 것에 대해서도 대한항공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장거리 노선은 실제 들어간 비용에 비해 항공료를 많이 올리지 못하지만 중단거리 노선의 경우 비용에 비해 항공료를 비싸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대한항공이 중단거리 노선의 수익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항공산업이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운송 규모가 중요하다.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파리 노선 취항에서 실패한 것을 보듯이 아직도 많은 장거리 노선을 대한항공이 독식하고 있는 구조다”라며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항변하고 있다.
벌써부터 양대 항공사가 개정안을 둘러싸고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건교부는 개정안 요구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아직 노선배분 기준 변경에 대해 어떠한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는 것이 건교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개선을 위한 토론이 예전부터 진행 중이기는 하다”며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항공산업이 정부의 운수권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산업이다. 건교부 내에서도 가장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 항공 관련 부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벌써부터 이전투구 식의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 같다”라며 최근 논란이 분분해진 이유를 해석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