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가면 그들도 ‘면제’ 될까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현대차가 선발한 독일 월드컵 응원단 출정식 모습. | ||
그러나 월드컵 특수를 바라보며 달려온 3대 재벌그룹의 표정이 막상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만은 않다. 월드컵을 둘러싼 이들 3대 재벌의 상황이 그다지 마음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닌 까닭이다.
월드컵 개막을 전후로 가장 속이 쓰린 곳은 아마도 현대차그룹일 것이다. 현대차는 전 세계적으로 15개 기업에 불과한 독일 월드컵 공식 파트너 중 하나다. 자동차 기업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한 공식 후원사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 32개국 선수단과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귀빈들 모두 현대차가 제공한 차량만을 사용하게 된다. 다른 공식 스폰서들이 월드컵 구장에 걸린 광고판으로 홍보를 하는데 비해 현대차는 월드컵 출전 국가 선수단의 이동차량을 제공해 가장 잘 눈에 띄고,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스폰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의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는 월드컵 개막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 귀빈 자격으로 초청받은 상태지만 참석할 수가 없다. 월드컵 엠블럼과 현대차 로고가 결합된 대형 스티커가 붙은 현대차의 자동차들이 독일 월드컵 현장을 누비는 것을 구치소 안에서 TV를 통해 지켜볼 수밖에 없다.
▲ 이건희 회장(왼쪽)과 삼성전자 PAVV 지면광고. | ||
한편 현대차 계열사들과 하청업체들을 비롯해 각종 유관기관들이 정 회장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검찰에 보내고 있다. 독일 월드컵과 관련된 국제기구 등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탄원서도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각지에서 날아드는 정 회장에 대한 선처 호소가 오히려 수사당국을 자극할 것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수사당국이 현대차 변호인단에 탄원서와 관련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 회장을 생각하면 여기저기 구원의 손길을 요청해야겠지만 오히려 정 회장 신병처리에 악영향을 줄까 고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시각 때문인지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최근 들어 월드컵 마케팅 본연 임무에 매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고 한다. 월드컵 홍보가 잘 되고 한국 대표팀이 선전을 거듭하면 그만큼 정 회장 구속수사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관심이나 시민단체의 무서운 눈초리도 수그러들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차그룹 이상으로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바라는 곳은 삼성그룹일 것이다. 삼성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과 아드보카트 현 대표팀 감독을 모델로 기용해 월드컵 공식 후원사가 되지 못한 ‘한풀이’를 하려 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이 졸전을 거듭하게 되면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인기도 역시 하락해 월드컵 마케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 최태원 회장(오른쪽)과 시청앞 응원 안내. | ||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등 삼성그룹에 대한 수사는 월드컵 기간 동안 조속히 이뤄져 8월 안에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인사들은 한국 대표팀이 선전을 거듭해 6~7월 두 달 동안 축구 열풍이 전국을 뒤덮어 검찰수사과정에서 새어 나올 삼성 관련 이야기들이 ‘뉴스거리’가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반대로 한국 대표팀이 초반에 탈락할 경우엔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이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그룹의 ‘바통’을 이어받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다.
올 초 LG 대신 3위 재벌 반열에 오른 SK그룹 또한 월드컵을 두고 속이 편치 않아 보인다. SK텔레콤은 서울시청 응원전 민간주최자로 선정돼 하이 서울 페스티벌과 길거리 응원 경비, TV 중계권료, 그리고 각종 이벤트 비용 등 총 140억 원을 지출하게 됐다.
그런데 SK텔레콤이 주도하는 서울시청앞 광장 응원전에 대한 비난여론이 쏟아져 그룹 관계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월드컵 개막 직전 벌어진 대표팀 평가전 응원전 당시 SK텔레콤은 홍보 중인 노래만을 부르게 하고 홍보 중인 문양의 셔츠를 연단 근처에 집중배치하는 등 기업 색채가 강한 응원전을 전개했다. 또 앉을 자리와 서 있을 자리를 지정하거나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의 통제를 벌여 빈축을 샀다.
시청앞 광장에서 붉은악마 응원전을 볼 수 없게 된 시민들이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응원 공간을 SK가 돈으로 사유화했다는 냉담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도 월드컵 성적만 좋게 나온다면 곧 사그라질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