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노란색’ 교체 필요성 모호, 누구는 지급 누구는 사비 구매도 논란…행안부 “색깔보다 기능에 초점”
공무원들은 민방위대 창설 30주년인 2005년부터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민방위 제도개선 대책을 발표하며 디자인‧기능 등과 함께 민방위복 색깔을 기존 노란색에서 청록색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행안부는 “기존 민방위복의 현장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과 개선 요구가 지속해서 제기됐다”며 민방위복 교체 이유를 밝혔다.
행안부는 지난 8월 8일 민방위기본법 시행규칙을 개정‧공포하면서 청록색 민방위복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21~24일 실시된 을지연습부터 청록색 신형 민방위복을 착용하도록 했다. 다만 행안부 관계자는 “개정된 민방위기본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형 민방위복 착용이 의무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장 신형 민방위복으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다 바뀌게 될 것”이라며 “바꿔야 하는 시점을 정확하게 정해놓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기존 민방위복에 큰 문제가 없는데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추후에 신형 민방위복으로 다 바꾸도록 추진하는 거였으면 지자체 공무원들에게도 샘플을 입어보라고 하고, 색깔이나 디자인이 어떤지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대통령과 장관들부터 입고 나왔다”며 “일부 공무원들은 사비로 구매해야 해서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기존 노란색이 눈에도 잘 띄고, 불편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 싶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안전전문가는 “민방위대는 위험 상황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어야 한다”며 “바뀐 신형 민방위복은 초록색이라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마치 군복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고 만든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송창영 광주대학교 방재안전학과 교수(재단법인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이사장)는 “‘민방위복이 노란색이어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노란색이 구조‧구급 등의 측면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색깔을 그대로 유지했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은데 재난안전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보통 국가기관‧지자체 등 필수 요원들에게는 행정기관이 민방위복을 구매해준다. 기관마다 필수요원의 기준은 각기 다르며, 그 외 나머지 직원들은 사비로 구매하거나 지자체나 기관의 예산으로 민방위복을 구매한다. 신형 민방위복 한 벌의 가격은 5만~6만 원. A시 교육청 관계자는 “신형 민방위복을 전 직원에게 보급하지는 않고, 간부들용만 예산으로 일괄적으로 구매했다”며 “원래 한 해마다 조금씩 복장에 대한 예산이 편성돼 있는데 그 예산으로 구매를 했고, 매년 조금씩 예산 확보를 해서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B도청 관계자는 “도청 예산으로 신형 민방위복 구입을 하고 있다”며 “실국마다 예산상황이 달라서 구매한 실국도 있고, 구매하지 않은 실국도 있다”고 말했다.
이철수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신형 민방위복을 많이 착용하고 있다고 들었고, 소속 기관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구형 민방위복을 많이 입는다고 들었다”며 “소속기관 관계자 말로는 예산이 없어서 신형 민방위복을 못 사고 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충청도에서 근무 중인 한 공무원은 “신형 민방위복 의무 착용이라고 하면 지자체 차원에서도 안 써도 될 돈을 쓰는 거니까 예산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라며 “사비로 구매한다고 해도 문제다. 동복, 하복을 구비해야 해서 금액도 만만치 않을 텐데 굳이 왜 바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필수요원의 기준은 기관마다 달라서 몇 명에게 민방위복을 구매해주는지 민방위복 구매에 예산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숫자로 산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당장 시급하지도 않을뿐더러 교체 필요성도 모호한 민방위복 구입에 수백억 원의 세금이 낭비될 판”이라며 “산술적으로 지난해 국가‧지방 공무원 수(117만 3033명)에 5만 원을 곱하면 600억 원에 육박하는 예산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보여주기식 행정을 위해 이렇게 많은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고 전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국세 수입은 178조 5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39조 7000억 원이 적다. 올해 남은 기간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세금을 걷는다면 연간 세수는 356조 원 정도로 올해 세입 예산인 400조 5000억 원에서 44조 원 이상 부족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올해 세수는 아직 정확히 추계하고 있지 않지만 세수 결손이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철수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민방위복 구매와 예산 과목이 같은 건 아니지만 현재 출장비 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세수 부족 상황에서 신형 민방위복으로 바꾼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방위복 색깔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 행안부 관계자는 “색깔보다 기능 개선에 초점을 두고 교체한 것이고, 새롭게 민방위복을 바꾸면서 색깔도 교체한 것”이라며 “방수‧난연 등 현장 활동에 필요한 기능성이 취약하다는 지적과 함께 용도와 계절에 따라 복장을 구분하는 외국 사례와 비교해 노란색 근무복을 획일적으로 착용하는 방식에 대한 개선 요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서 색깔과 디자인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행안부는 지난해 6월 24일부터 7월 6일까지 민방위복 개편안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진행한 바 있다. 청록색이 위장이나 보호색을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녹색은 평화를 상징하는 색이며, 눈에 덜 띈다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며 “색깔을 바꾼 것은 전 정부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