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되고 나서 업무 분담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비판…여가부 “급박한 상황 때문에 지원 불가피”
잼버리는 보이스카우트에서 개최하는 국제적 단위의 야영대회로 올해는 한국에서 개최됐다. 2017년 8월 전북도 새만금 잼버리 유치가 결정됐으며, 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잼버리 조직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잼버리 대회는 6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지만 위생, 식사, 의료 등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잼버리 기간이 8월인데도 폭염 대비도 없었다. 결국 일부 국가들은 조기 퇴영을 결정했다. 이후 태풍 소식이 예보되자 새만금에 있던 잼버리 대원들은 전국 각 시‧도로 흩어졌다. 잼버리 참가자들은 경기 64곳, 충남 18곳, 서울 17곳, 인천 8곳, 충북 7곳, 대전 6곳, 세종 3곳, 전북 5곳 등 모두 128곳으로 분산됐다.
잼버리 대원들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이동하면서 각 지자체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잼버리 지원 업무에 차출됐다.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정부 각 부처에 공무원 총 400명,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40여 곳에 총 1000명 차출을 요청했다.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제대로 된 공문도 없이 갑작스럽게 지원 요청을 받고, 구체적인 업무 분담과 가이드라인 없이 잼버리 지원에 동원됐다.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계획적인 동원에 대해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직원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 9일 성명서를 통해 “수도권 지자체들은 하루 만에 500명에서 1000명에 달하는 잼버리 참가자들의 숙박과 식사 해결은 물론 체험 프로그램까지 짜라는 통보를 받고 난리 아닌 난리를 치르고 있다”며 “지자체에 하루 만에 잼버리 참가자들에 대한 숙박 등 준비를 지시하는 것은 정부의 무대책‧무책임을 보여주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국공노)도 정부의 주먹구구식 인력 동원을 비판했다. 국공노에 따르면 지난 7일 행정안전부의 요청으로 인사혁신처는 오후 3시가 넘어 각 부처 담당자들에게 영어회화 능통자를 부처별 10명씩 동원하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오후 5시까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부처별로 차출된 공무원들은 다음 날 오전 6시 30분까지 정부세종청사 제3주차장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고, 일부 공무원들은 저녁 늦은 시간 급하게 세종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집결 직전 새벽에 행정안전부로부터 ‘각국의 요청사항이 달라 조율하는 데 시간이 지체됐다. 문자를 받는 사람들은 금일 출장 대상에서 제외되고, 평상시와 같이 출근하면 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국공노는 “무슨 일을 시킬 것인지, 그 일을 하는 데 얼마의 인력이 필요할 것인지 등은 사전에 전혀 계획하지 않고, 일단 인원 동원만 해놓고 보자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재난상황에서는 당연히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공무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렇지만 공무원이 대통령 말 한마디, 총리 말 한마디에 어떠한 협의도 없고 어디로 갈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 채 동원돼야 하는,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인격을 무시당해야 하는 집단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국가공무원 A 씨는 “잼버리 지원 행사를 공무원들이 돕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국가직 같은 경우 소집 절차나 방식이 갑작스럽게 이뤄지고, 메일 한 통으로 집합하라고 했다가 중간에 갑자기 오지 말라고 했다가 말이 바뀌니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 씨는 “어디에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사전교육이라도 하고 가야 인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우왕좌왕 하지 않을 텐데 그런 부분도 미흡했다”고 덧붙였다.
잼버리 지원 현장에 있었던 전북 부안군의 한 공무원은 “지역 행사나 국제대회가 잘 진행되도록 협조하고, 동원되는 것에는 이견이 없고, 행사를 잘 끝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다”며 “하지만 차출이 되고 나서도 정확하게 업무 분담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전북지역 공무원들에게 화장실 청소 업무를 시켰다”며 “직원들이 평소 하지 않는 업무고, 낯선 일인데 청소를 제대로 할 여건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변인은 “6년 전부터 준비된 행사고, 태풍이나 폭염도 예상했을 텐데 왜 대비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공무원들도 갑작스럽게 지원 요청을 받아서 본인들 일정이나 휴가도 다 취소하고 투입됐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공무원들 초과근무는 4시간만 인정되는데 실제로는 그 시간 이상으로 일한 공무원들이 많아서 이 부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방공무원법 하위 규정인 지방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공무원은 하루 최대 4시간까지만 초과근무로 인정받는다.
공공기관 직원들도 기획재정부의 잼버리 지원 요청을 받았다. 지원 요청을 받은 공공기관은 산업은행‧수출입은행‧신용보증기금‧예금보험공사‧한국전력공사‧국가철도공단 등 40여 곳에 달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지난 8일 기획재정부는 전체 공공기관에 각각 30명 정도의 진행 인력 파견을 요구하며 1시간 안에 회신을 지시했다”며 “금융공공기관이 기재부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은 ‘예산’과 ‘임금’을 틀어쥔 ‘갑’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정청 금융노조 한국산업은행지부 수석부위원장은 “기재부에서는 협조 요청 정도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강제 동원이다”라며 “기재부에서 공공기관의 예산, 정원, 복지 등을 다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인력 지원 요청을 하면 그건 협조가 아니라 강제”라고 말했다. 정 수석부위원장은 “사측에 공문이나 공식적인 절차를 취한 것이 아니라 그냥 전화를 돌려서 2시간 내에 영어회화가 가능한 사람은 명단을 추려서 보내라고 했다”며 “현장에 간 직원들의 후기를 들어보니까 현장도 너무 준비가 미흡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숙소에서 각국의 잼버리 대원들을 데리고 K-POP 콘서트가 열리는 상암 경기장으로 갔는데 좌석 배정도 안 되어 있다고 했다”며 “저희 직원이 A 국가 대원들을 인솔해서 미리 안내 받았던 좌석으로 갔더니 거기에 다른 국가 대원들이 앉아 있어서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부분을 해결해줄 책임자도 없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정 수석부위원장은 “직원들을 차출한 것도 모자라서 현장에서 책임은 저희 직원들이 다 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식사도 제대로 지원이 안 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며 “중앙정부에서 준비를 잘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잼버리 대원들을 상암 경기장까지 인솔하는 역할을 했던 공공기관 관계자 B 씨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인파가 많이 몰리는데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직원들의 안전이 위협될 수 있어서 우려가 많이 됐다”며 “성과나 급여 등 많은 부분에서 기재부의 통제를 사실상 받고 있어서 이런 요청이 들어오면 거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21세기 민주화 시대에서는 ‘하라면 하라’는 식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차출이 되고 나서도 역할을 정확하게 주지 않으면 일의 효율성이 굉장히 떨어지고, 인력 낭비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제적인 행사 같은 경우에는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체계화해서 정부부처 각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맡은 것을 미루지 않고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며 “조직위원장 회의도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회의도 자주 가져야 하고, 앞으로 국내에서 유치될 가능성이 있는 국제행사들은 평창 동계올림픽처럼 성공한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어떤 목적으로 왜 지원을 가야 하는지 사전에 이야기가 다 된다”며 “시도별로 행안부 국장급 책임관들이 다 나갔고, 지자체와 협력해서 업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기관 직원 차출과 관련해서 “전문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차원에서 협조가 필요한 시기여서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생하신 직원들을 위해 인센티브나 특별휴가같이 격려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잼버리 지원을 나간 공무원들의 초과근무에 대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하루 8시간 범위 내에서 초과근무수당 지급이 가능하며 8시간 이상 시간외 근무한 경우 1일 대체휴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잼버리 대회 총괄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대변인은 “여성가족부가 주무부처이긴 하지만 정부에서 다 같이 동참해서 지원한 부분이고, 자세한 사항은 파악하기 어렵다”며 “잼버리 공무원‧공공기관직원 차출 관련한 불만사항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여성가족부 다른 관계자는 “K-POP 콘서트 때 불만사항이 많이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문체부에 연락을 해봐야 할 것 같다”며 “갑작스럽게 공무원들이 차출된 것에 대해서는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공 부문에서 지원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답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