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 가능성 불구 탄핵소추 강행한 민주당 불똥…오송 참사 비판 받는 여권 이태원 참사 재소환 곤혹
헌법재판소가 지난 7월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 의견이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상민 장관)은 행정안전부 장이므로 사회재난과 인명 피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도 “헌법과 법률의 관점에서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이태원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확대된 것이 아니다”라며 “각 정부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규범적 측면에서 그 책임을 피청구인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참사 원인 등과 관련해 국회와 언론 질의에 부적절하게 답했다는 사유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어 부적절하다”면서도 “발언으로 인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재난안전관리 행정 기능이 훼손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국무위원에 대한 헌정사상 첫 탄핵 심판은 기각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이상민 장관은 헌재 결정에 따라 이날 즉각 장관 직무에 복귀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69일 만, 올해 2월 8일 국회가 이 장관 탄핵소추를 의결한 날로부터 167일 만이다.
앞서 야권은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어 윤석열 대통령에 이상민 장관 파면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일축하자 민주당은 소속 의원 169명 전원 명의로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발의, 가결시켰다. 윤 대통령은 이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민주당은 이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야3당은 탄핵소추안을 공동 발의해 2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헌재 결정이 나오자 정부·여당은 즉각 민주당을 향해 책임을 돌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탄핵소추제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제도”라며 “그러나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거야의 탄핵소추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반헌법적 행태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SNS에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 논의단계부터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으니, 헌재의 결정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며 “반헌법적 탄핵소추로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를 해체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장관 탄핵 기각 결정이 민주당 지지도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헌재 결정 발표 당일인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자체 실시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은 전주 대비 1%포인트(p) 하락한 29%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은 2%p 오른 35%를 나타냈다. 두 정당 간 격차가 아직 6%p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이번에 30%대 아래로 내려간 민주당 지지율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최저 수준에 가깝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당초 민주당 내부에서도 탄핵 기각 결정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에서도 지난 2월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때 기각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중대한 법률 위반 소지를 찾아야 하는데, 무능하다고 탄핵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일각에서는 당론 채택 과정에서 기각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야당이 무리함을 감수하면서도 왜 탄핵소추를 발의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앞서 관계자는 “159명의 청년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는데 윤석열 정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부처의 수장인 이상민 장관의 책임을 물어 국회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무시했다. 그러니 국회로서는 탄핵소추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책무를 다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이나 특검을 민주당이 관철시켰으면, 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이 장관의 법률 위반 혐의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이를 헌재 판단에 증거로 낼 수도 있었다. 민주당이 일정 부분 손 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정부·여당도 탄핵 기각 후폭풍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재해·재난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중순 발생한 집중호우로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충북 청주시에서는 7월 15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유럽을 순방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이러한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도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 등 일정을 소화했다. 이러한 결정에 비판이 나오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금 당장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 간다고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고 말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이나 합동분향소를 방문하지 않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이번 집중호우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윤석열 정부의 재난 대응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책임까지 지려하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상민 장관이 헌재의 탄핵 기각으로 법적 책임을 벗어던지고 돌아왔다. 국민들로서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더해 이태원 참사가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은 7월 27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조문한 뒤 “관련 기관장들의 책임 의식이 전혀 없고, 희생자들이나 유가족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위로가 없다는 점에서 오송 참사는 이태원 참사와 판박이”라며 “책임 있는 사람들은 꼭 처벌받고 그것이 경종이 돼 어떤 기관의 수장들도 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도 이러한 점을 앞세워 정부·여당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나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7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상민 장관을 향해 “탄핵이 기각됐다고 아무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탄핵 기각 결정문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다음날 SNS에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이상민 장관 해임·사임해야”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정부 책임 논란을 의식한 듯 이상민 장관은 직무에 복귀한 뒤 연이어 수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장관은 7월 26일 열린 7월 집중호우 대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기존 자연재난 대응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사후 복구 중심의 재난관리체계를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면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송 지하차도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분향한 뒤 “지하차도 사고 현장을 다녀왔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대한민국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