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위로 곧게 펼 수도 없는 팔을 가지고도 유도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고, 또 금메달까지 따게 하는가. 무엇이기에 인간의 동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동작을 구사하게 만드는가. 무엇 때문에 0-3,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동료들을 향해 포기하지 마, 라고 외치게 만드는가.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하고 있는 그 ‘운동’이란 것은 우리가 다이어트를 위해 하는 그 운동도 아니고, 그저 즐기고 있다고 믿는 그 운동도 아니다. 그들의 운동은 차라리 신의 말씀 같다고나 할까? 그들은 그들의 운동을 통해 신의 말씀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 같다. 지극한 것 속에 깃드는 지극한 정신의 조각을 만져본 것 같다.
우리 축구가 8강전에서 영국을 이겼을 때 투지의 힘을 본 것만 같았다. 나는 행운의 여신을 손 내밀게 하는 투지란 것을 믿게 되었다. 축구의 종가를 이겼으니 축구의 명가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안에서부터 샘솟듯 솟아났다. 외국인 친구가 너희 때문에 영국과 브라질이 펼치는 화려한 축구를 보지 못하게 됐다고 투덜댔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더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보게 될 거라고 큰소리쳤다. 지식과는 상관없는 기대의 힘, 무식의 힘이었다.
그런데 역시 브라질은 만만치 않았다. 아니, 그들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공격수들은 먹이를 노리는 표범처럼 정확했다. 그들의 축구는 화려하고 열정적이었다. 나는 중계를 계속 보기 위해 대한민국 국민임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겼으면 하는 기대와 기원을 가지고는 심장이 떨려 화면 앞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기원을 바꾸고 있었다. 저기 저 선수들이 모두 브라질과의 축구 경험으로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기를…. 그리고 나니 힘이 빠져서 TV를 떠나 자려고 하는데 박주영 선수가 나온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 선수!
골을 넣고 기도하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시빗거리다. 광신자의 모습과 오버랩되어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 간절함이 좋다.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는 그의 모습 속에서 나는 운동선수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로 생을 해석하는 단독자를 본다. 나는 언제 그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손을 모았던가. 당신은 언제 그렇게 손을 모아보았는가. 어쩌면 손을 모으게 만드는 그 속에 우리의 존재 이유가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박주영 선수가 0-3으로 지고 있는 시합에 합류하면서 동료들을 향해 포기하지 말자고 외친 것이다. 누가 보아도 지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게 하는 투지, 그 속에는 잘하는 것 이상, 즐기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가 운동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 볼 수 있다면 그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을 배우고 싶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