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돈싸움이 ‘제2 론스타’ 키운다
그럼에도 인수희망업체들이 인수를 못해 몸살을 앓다시피 하는 이유는 대우건설의 결코 작지 않은 ‘덩치’ 때문이다.
자산규모가 5조 9000억 원에 이르는 대우건설의 새 주인은 곧바로 업계에서그 순위가 수직상승을 하게 된다. 현재 대우건설 인수전엔 금호아시아나와 두산 등 두 개의 대기업을 비롯해 프라임과 삼환 유진 등 총 5개 기업이 나서고 있다. 올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순위에 따르면 금호아시아나는 자산규모 13조 원으로 현재 재계 서열 13위(공기업 제외)에 올라있다. 대우건설을 인수하게 되면 자산규모 13조 7000억 원으로 12위인 두산은 물론 현대중공업(10위, 17조 3000억 원)과 한화(11위, 16조 5000억 원)를 앞질러 재계 순위 10위에 오르게 된다.
반면 자산 총액 13조 6000억 원의 두산이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하면 재계 10위는 두산의 차지가 된다. 대우건설 인수 여부에 따라 두 기업의 국내 10대 재벌 진입의 향배가 갈리는 것이다.
대우건설 우리사주조합과의 연대를 통해 대우건설 인수전의 유력후보군으로 급부상한 프라임이 인수전의 승자가 되면 프라임은 현대그룹과 신세계를 제치고 재계 15위에 올라선다. 삼환이 승자가 될 경우에도 재계 15위, 유진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CJ를 제치고 재계 17위에 오른다. 대우건설 인수에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렇다 보니 대우건설 인수전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가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입찰예상가격이 5조 원 정도로 거론되다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6조 원 이상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당초 업계에선 ‘대우건설 지분 50%+1주’를 인수가로 여기고 자금을 준비해왔지만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단이 인수가격을 ‘최소 50%+1에서 최대 72.1%까지’로 기준을 제시하자 판이 커진 것이다. 대우건설 인수에 따른 플러스 요인을 감안한 캠코와 채권단이 ‘돈 더 내놔라’는 식으로 나선 셈이다. 이에 금호아시아나 두산 프라임 등 3사는 지분 70% 이상 인수를 위해 6조 원 이상의 인수가격을 제시하고 나섰다. 72.1% 인수 비용은 6조 4000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금호컨소시엄의 경우 본입찰에서 6조 6000억 원대의 돈을 써낸 것으로 알려져 가장 세게 베팅한 업체로 주목받았다. 이런 인수가액이 누군가에 의해 유포되면서 ‘금호대세론’ 또는 ‘금호 밀어주기 의혹’ 논란에 불이 붙은 상태다. 금호의 경우 2002년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박삼구 회장과 이번 대우건설 인수전을 주도하고 있는 오남수 사장이 연루돼 사법처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너인 박 회장이 불입건 처리가 됐다는 점에서 두산과는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는 식의 ‘특혜설’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 탓에 대우건설 인수를 희망해온 기업들이 예비입찰 때의 인수 예상가였던 4조 원대보다 무려 2조 원 이상을 더 써낸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추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까. 이들이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구성한 컨소시엄 내역을 보면 외국계 자본의 대량 유입이 불가피해 보인다.
금호아시아나는 자문사인 JP모건을 중심으로 사학연금과 외국계은행들을 재무적 투자자로 유치했으며 국민은행 메릴린치 등을 투자자로 추가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은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그리고 네덜란드계 은행인 ABN암로를 투자자로 확보했다. 삼환은 최근 외환은행으로부터 3000억 원을 유치했으며 일본계 금융기관 자금 유치 소문이 나돌고 있다. 대부분 외국계 금융기관이나 외국 자본이 주를 이루는 은행들로부터 돈을 끌어와 대우건설 인수전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우건설 우리사주조합이 프라임과 손잡은 배경엔 프라임이 다른 컨소시엄에 비해 외국자본 유입이 적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인수가격이 6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사주조합의 출연기금인 3000억 원의 비중이 낮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경쟁업체들 중 자산총액이 가장 높은 두산과 금호아시아나도 자산총액 절반에 이르는 6조 원 이상의 돈을 자체 조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컨소시엄을 함께 구성하고 있는 외국계 금융자본의 실탄 지원이 불가피할 것이다. 두산의 경우 캠코가 분식회계 조세 포탈 전력이 있는 업체에 대한 감점제 실시를 밝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자산규모가 1조~1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유진 삼환 등은 금호아시아나와 두산보다 외부에 더 손을 벌려야 하는 입장이다.
이번 인수전을 바라보는 업계 관계자들은 “캠코의 새 인수 대상자 선정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가’가 제1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라 입을 모은다. 대우건설은 현재 캠코가 관리하는 기업들 중 가장 큰 매물 중 하나다. 대우건설 인수전이 완료되는 9월 이후 벌어질 정기 국정감사에서 현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율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질 경우 이 화살은 캠코로 올 수밖에 없다. 캠코 입장에선 가장 많은 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대우건설 인수전의 관건은 ‘얼마나 외국계 자본을 많이 끌어오느냐’로 봐야 할 것”이라 입을 모을 정도다.
이런 시각 때문인지 이번 대우건설 인수전이 제2의 론스타-외환은행 사태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들이 쉬쉬하고 있지만 각 기업들이 자체 조달 가능한 금액은 1조~2조 원 정도로 관측되고 있다. 최소한 4조 원 이상을 다른 곳에서 융통해 와야 하는데 자금동원력이 좋은 외국계 금융기관들로부터 많은 실탄을 얻어야 할 것”이라 전망했다. 수조 원의 외국 자본을 통한 차입금이 있어야 대우건설 인수가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이번 인수전에 컨소시엄 일원으로 참여한 외국 자본이 대우건설 인수 직후 일정 지분을 보장받고 나서 대우건설 주가가 적당히 오른 시점에 단기 이익만을 취하고 투자자금을 거둬들이는 이른바 ‘먹튀’ 행위를 할 수도 있는 셈이다. 캠코는 계약종결일 이후 2년간 50%+1주에 대해 팔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기 차익을 노린 외국 자본의 ‘먹튀’를 근절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대우건설 인수에 투입된 외국 자본에 대해 지분으로 보상해주지 않을 경우엔 투자금액에 대한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 또한 장기적으로 대우건설의 경영 악화를 불러올 수 있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업계 인사들 사이에선 대우건설 인수전이 과열된 만큼 후유증이 클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