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노트 쓰겠다” 프로포폴 파문 후 첫 영화 부진 ‘내상’…마라톤 영웅 손기정 역 맡아 추석 극장가 ‘출발선’
배우 하정우가 ‘오답노트’라는 단어를 꺼냈다. 주연을 맡은 영화의 흥행 부진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고 그걸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만큼 올해 여름 극장가에서 받아든 성적표에 단단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오랜 기간 출연한 영화들에 흥행성과를 안긴 덕분에 ‘티켓파워’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됐던 배우이지만 이젠 화려한 수사도 옛말이 됐다. 하정우가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하정우가 오답노트라는 말을 꺼낸 이유는 올해 여름 야심차게 내놓은 영화 ‘비공식작전’의 흥행 실패 여파가 남긴 상흔이 크기 때문이다. 약 20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비공식작전’은 연중 극장가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8월 2일 야심차게 개봉했지만 상영한 지 한 달이 지난 9월 초까지 가까스로 100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적어도 500만 명은 모아야 손익분기점을 달성하지만, 이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기록이다. ‘비공식작전’은 결국 9월 5일 IPTV 등 안방으로 직행했다.
하정우는 한국영화의 폭발적인 흥행에 힘입어 연간 극장을 찾는 관객이 2억 명을 돌파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인공이다. ‘추격자’로 시작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더 테러 라이브’, ‘베를린’, ‘터널’, ‘암살’ ‘1987’에 이어 쌍천만을 이룬 ‘신과함께’ 시리즈까지 메가 히트작의 주연으로 활약했다. 2010년 이후 한국영화 흥행사가 하정우를 통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때문에 이번 ‘비공식작전’의 흥행 실패는 그에게 뼈아픈 상흔을 남겼다.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생겼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더욱 까다로워진 관객의 취향을 어떻게 겨냥할 것인지, 새로운 걸 원하는 관객의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 것인지, 영화의 대표 얼굴로 나서는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이 어느 때보다 무겁다.
#“고배 마신 게 처음은 아니지만…”
하정우는 ‘비공식작전’의 성적표에 큰 아쉬움을 느끼지만 거기에만 생각이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처지다. 당장 이번 추석 연휴를 겨냥해 9월 27일 개봉하는 새 영화 ‘1947 보스톤’의 주연배우로 다시 관객을 찾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8월과 9월 연이어 대작을 내놓게 되면서 스코어에 대한 부담도 느끼고 있다. 동시에 9월 촬영에 돌입하는 새로운 연출작인 영화 ‘로비’ 준비에도 한창이다.
하정우는 최근 열린 ‘1947 보스톤’ 제작보고회에서 “(‘비공식작전’의 성적이) 너무 속상하고 가슴이 아팠다”며 “내부(제작진)에서는 엄청나게 기대를 했었는데 현실은 달랐다. 그렇기에 겸허히 받아들였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앞서 부진한 결과를 받아든 작품도 있었다. 주연과 연출을 맡은 ‘허삼관’, 주연은 물론 제작까지 이끌었던 ‘백두산’은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에 그쳤다. 이 같은 경험을 꺼낸 하정우는 “고배를 마신 게 영화 인생에서 처음도 아니다”며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 오답노트를 만들겠다. (성공할) 확률을 높이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하정우가 오답노트까지 언급하면서 ‘비공식작전’의 결과를 언급한 이유는 그에게 이번 작품이 지니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터널’ 흥행을 함께 이룬 김성훈 감독과 다시 뭉쳤고, ‘신과함께’ 시리즈로 무려 쌍천만 흥행에 성공한 파트너 주지훈과 손잡은 작품이기에 기대를 키웠다.
영화는 1987년 레바논에서 일어난 외교관 납치 실화를 그린 이야기로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대규모 로케이션을 진행하는 등 감독과 배우진, 스케일까지 ‘흥행 조건’을 두루 갖췄지만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하정우로서도 ‘내상’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2020년 프로포폴 투약 등 혐의로 포토라인에 서는 등 스캔들을 겪은 뒤 처음으로 관객에게 내놓는 영화의 성적표란 점에서도 하정우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경쟁작들 면면 만만치 않아
‘비공식작전’이 남긴 숙제를 풀기도 전에 하정우는 또 다른 영화를 내놓는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촬영을 마친 ‘1947 보스톤’은 1947년 태극마크를 달고 첫 국제 대회에 출전한 마라토너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하정우는 마라톤 영웅 손기정 역을 맡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면서 금메달을 딴 국민 영웅을 연기한다. 영화는 손기정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인 마라토너 서윤복(임시완 분), 마라톤 국가대표 코치 남승룡(배성우 분)의 꿈과 도전을 그렸다.
역사에 기록된 영웅을 연기한 하정우는 부담과 책임감을 함께 느끼면서 작품에 임했다. “대사 한 마디를 내뱉기에도 조심스러웠다”는 그는 “늘 손기정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촬영에 임했다”고 밝혔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알지 못하는 손기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주목해 달라고도 당부했다.
하정우는 “시나리오를 접하기 전까지 손기정 선생님을 민족의 영웅으로는 알았지만 그 안의 사정은 몰랐다”며 “어떻게 태극마크를 달게 됐고 보스턴 마라톤에 참여하게 됐는지를 알게 됐을 때 울림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느낀 울림의 감동이 관객에게도 전달되길 원한다고도 강조했다.
올해 추석 연휴는 개천절이 겹쳐 예년보다 길게 이어진다. 과연 하정우가 ‘1947 보스톤’을 통해 ‘비공식작전’의 흥행 부진을 털어낼 수 있을까. 가족 단위 관객이 선택하기에 적합한 감동 드라마라는 점이 경쟁력이지만, 그렇다고 흥행 결과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경쟁작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947 보스톤’이 개봉하는 9월 27일에는 송강호가 주연한 ‘거미집’과 강동원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까지 3편이 동시에 개봉한다. 하정우 앞에 또 다른 산이 놓였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