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시세 30% 다운 빅세일도 각오하라!
▲ 삼성동 아이파크 전경.195.04㎡의 경우 30억 원 초반의 급매물도 흔하다. |
하지만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보러온 사람은 최근에 단 1명뿐이었다. 그것도 올 초부터 호가(부르는 값)를 낮춰 7억 1000만 원까지 내린 후다. 허 씨는 “국민은행 시세 기준의 최저가(7억 1750만 원)보다 낮게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도대체 얼마나 더 낮춰야 팔리는 건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요즘 허 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집값을 낮춰 내놔도 도무지 살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을 내놓은 지 수개월이 지나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심지어 집 팔기가 ‘로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집값 하락시기인 만큼 어떻게든 집을 빨리 파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렇다고 당장 돈 100만 원이 아쉬운 판에 무작정 수백, 수천만 원씩 집값을 바로바로 낮추는 것도 쉽지 않다. 어쨌든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싶은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집값을 내놓아야 할까.
일단 공식적인 집값 변동률부터 따져보자. 정부는 물론 개인이 시세 판단을 할 때 가장 먼저 살펴보는 기준은 KB시세다. 그런데 이를 보면 사실 최근 몇 년간의 집값 하락폭은 미미하다. 국민은행 집계로는 올 들어 7월까지 서울 집값은 1.3% 하락했다. 지난해는 오히려 0.3% 상승했고, 그 전년(2010년)에는 1.2% 내리는 데 그쳤다. 그래서 2010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주택값은 평균 2.3% 떨어졌다.
서울과 경기도를 합한 수도권 전체 시세 변동률도 마찬가지다. 2010년 마이너스(-)1.7%, 2011년 0.5%, 올해 1~7월 -0.5%를 기록해 2010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2년 7개월간 2.7% 하락하는 데 그쳤다. 공식적인 집값 변동률을 따지면 서울 수도권 집값은 거의 떨어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시장에는 2~3년 전보다 20~30%씩 떨어진 매물이 넘쳐나고 그 조차도 거래가 안 되는데 KB시세가 2~3%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은 왜일까.
이는 국민은행이 KB시세를 만드는 방식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전국 3000여 중개업소를 통해 시세 동향을 작성한다. 중개업자가 매주 불러주는 호가 정보를 취합해 정리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해당사자인 중개업자의 특성에 따라 집값이 오를 때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만 집값이 내릴 때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거래가 없으면 중개업자는 굳이 호가를 낮추지 않는다.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괜히 먼저 알렸다가 해당 지역 주민에게 항의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거래건수가 빈번히 일어나면서 하락세가 뚜렷하지 않는 한 굳이 호가가 낮아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KB시세와 중개업소의 급매물 동향과는 격차가 크다. KB시세에 따르면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195.04㎡형의 시세는 지난 2008년 9월 이후 지난달까지 3년 10개월 동안 변함없이 43억~55억 원이었다. 이달 들어 38억~51억 원으로 시세를 4억~5억 원 낮췄지만 여전히 현실과 격차는 크다. 현지 중개업소엔 30억 원 초반에도 이 아파트 급매물이 흔하다.
성남시 아이파크 분당 153.39㎡형도 마찬가지. KB시세는 10억 5500만~12억 2000만 원이지만 해당지역 중개업소엔 8억 원대 매물도 흔하고 심지어 5억 3000만 원짜리 초급매물도 나와 있다. 층과 향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중에는 로열층도 꽤 있다. 인근 J 공인 관계자는 “가격 조정이 가능하니 일단 방문하라”며 “원하는 가격을 말하면 맞춰줄 수도 있다”고까지 했다. 이런 현상은 중대형일수록, 거래가 많지 않을수록 뚜렷하다.
호가가 문제라면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실거래가’를 확인하면 될 듯하다. 실제로 거래가 된 금액이니 논란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도 한계가 많다. 거래 건수가 많지 않아 팔고자 하는 아파트의 거래 사례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게 문제다. 예컨대 은평구 불광동 북한산현대홈타운 115㎡형 아파트는 마지막 실거래가 이뤄진 시기가 1년 전인 지난해 8월이다. 당시 10층 아파트가 7억 원에 팔렸다. 현재 중개업소엔 이미 이보다 싼 급매물이 많다. 로열층도 6억 5000만 원짜리 매물이 나와 있다. 실거래가가 아니라 ‘과거 거래가’인 셈이다.
그렇다면 뭐가 진짜 시세일까.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업자는 “지금 매매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려면 KB시세 등 부동산정보업체들이 제시한 것보다 20~30%는 싸게 내놔야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중개업자의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지역에 따라 매물에 따라 다를 테니.
이런 맥락에서 구로구 구로동의 한 중개업자의 사례는 들어볼 만하다. 최근 그에게 입주가 닥쳤다며 최대한 빨리 집을 팔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래서 급하게 팔려면 집값을 내려야 한다고 했는데 집주인은 거부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방식을 제시했다. 일단 원하는 시세로 내놓고 문의가 없으면 1~2주 간격으로 1000만 원씩 내리는 방식이다. ‘입질’이 오는 게 진짜 시세라는 주장이다.
집주인은 중개업자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처음엔 그 아파트의 KB시세 하한가 3억 원에 내놨다. 물론 예상대로 문의가 전혀 없었다. 약속대로 2주 뒤 2억 9000만 원으로 내렸다. 역시 문의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내리고 내려 결국 두 달 정도가 지나 2억 7000만 원까지 빠지니 매수 희망자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결국 2억 6500만 원에 팔 수 있었다. 이번엔 다른 중개업자의 제안을 들어보자.
“지역 중개업소 몇 군데만 돌아보면 급매물 시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재건축 아파트라면 현재 나온 가장 싼 급매물보다 2000만~3000만 원 싸게, 일반 아파트라면 가장 싼 급매물 대비 5000만 원 정도 싸게 내놓으면 경험상 100% 팔린다. 지금 같은 때 가격을 과감히 낮추지 않고 팔릴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 그렇게 팔리는 가격이 시세다.”
결국 해당 지역 중개업소의 급매물 가격을 기준으로 따지되 팔릴 만한 가격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은 “집을 내놓고 1년씩 기다려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한 상황에서 KB시세나 정보업체 시세는 별 의미 없다”며 “수요자를 움직일 만큼 싼 가격, 급매물보다 낮은 게 시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