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로 유턴하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다”
▲ 김연경은 “지금까지 예쁘다는 소리 대신 멋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미인이라는 칭찬이 어색하다고 겸손해 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연합뉴스 |
“무릎이 아파서요. 어깨도 좋은 상태는 아니에요.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앉아있기가 쉽지 않네요. 이 정도의 부상은 가벼운 거예요. 선수들은 다 한두 군데씩은 부상으로 신음 중이니까요.”
김연경은 인터뷰 전날, KBS 방송에서 마련한 축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진행자 전현무 아나운서가 ‘미인’ 운운하는 소리에 ‘제가 예쁜가요?’라며 정색하고 되묻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전 지금까지 예쁘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멋있다는 얘긴 좀 들어봤네요(웃음). 그래서 그 아나운서 분의 칭찬이 이상하게 들렸던 것 같아요.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 중 한국 여자 선수들 중에서 4대 얼짱을 뽑은 기사가 있었어요. 거기에 들어간 선수가 손연재(리듬체조) 기보배(양궁) 황연주(배구) 김온아(핸드볼)였거든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온아 대신 제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온아는 저보다 인물이 떨어지는데…(실제로 두 사람은 친하다)^^.”
슬슬 올림픽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야 할 시간이 왔다. 김연경은 가장 힘들었던 경기로 4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팀인 미국과의 혈전을 꼽았다.
“빈틈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블로킹을 피하려다 수비에 걸리고 수비를 피하면 블로킹에 걸리고, 강팀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8강 때 만난 브라질전도 기억에 남아요. 브라질이 세계 랭킹 2위팀이었잖아요. 우린 15위고. 3-2도 아닌 ‘삼대빵’으로 이기니까 정말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가슴에 아쉬움으로 남는 경기는 아무래도 일본과의 동메달결정전이겠죠. 지금도 이렇게 가슴에 콕 박혀있을 정도로 미련이 생기니까요.”
축구가 3, 4위전에서 일본을 만나 시원한 골을 터트리며 승리를 거머쥔 이후에 배구의 한일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선수들 입장에선 약간의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연경은 대회를 앞두고 축구의 동메달에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없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김연경은 ‘죽음의 조’로 불렸던 조 추첨 뒷얘기도 전했다.
“선수들끼리 미국, 브라질, 중국, 세르비아, 터키와 함께 B조에 속했다는 얘기를 듣고 ‘런던에 놀러가야 할 것 같다’ ‘가자마자 예선 탈락하고 바로 귀국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주고받을 만큼 최악의 조 편성 결과였어요. 세계 랭킹 1, 2위팀이 다 포진돼 있고, 어느 한 팀도 만만한 팀이 없었어요. 기가 막히면 말이 안 나온다는 게 당시 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런던행 비행기에 오를 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창피나 당하고 돌아올까봐.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까 선수들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승부욕이 발동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오기를 자극하기도 했었죠. 막상 경기가 벌어지니까 선수들이 자신감을 찾더라고요. 참 흥미로운 현상이었습니다.”
김연경은 2009년 일본 제이티 마블러스에 진출, 두 시즌을 일본에서 활약하다 2011년에 터키 페네르바체로 임대됐다. 2005년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해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승승장구했던 그는 한국 무대가 좁다는 생각에 해외 진출을 염두에 뒀고 결국 임대 신분으로 일본과 터키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일본의 배구 실력이 한국보다는 한수위라는 생각에 절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선수들도 조금씩 절 무시하는 것 같았고요. 결국엔 실력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어요. 코트에서 득점이 쏟아지니까 선수들을 비롯해 감독님까지도 급호감을 나타내시더라고요. 그래도 혼자 생활하다 보니 너무 외로웠어요. 운동을 마치고 불 꺼진 집에 들어가 샤워라도 할라치면 눈물이 물보다 더 많이 쏟아진 것 같아요(웃음). 한국 가고 싶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었죠. 그러다 배구가 살아나고 선수들한테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외로움을 잊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터키는 말이 안 통하는 것 빼고는 더 좋았어요. 무엇보다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진짜 행복했습니다. 터키에서 실력이 더 늘어난 것 같아요. 배구의 클래스가 다른 선수들이랑 함께 생활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들과 같은 클래스를 이루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죠.”
그러나 김연경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원소속팀인 흥국생명과 계약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김연경은 유럽리그 진출 첫 해에 소속팀 페네르바체를 정규시즌 무패 우승으로 이끈 데 이어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들어올리며 MVP에 올라 명실상부한 ‘월드스타’로 거듭났다. 페네르바체에선 당연히 김연경에게 임대가 아닌 정식 계약을 요청했고 김연경은 에이전트를 통해 페네르바체와 2년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흥국생명이 원 소속팀의 승인 없는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고 김연경을 임의 탈퇴 선수로 공시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제가 빠진 자리가 커 보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성적을 내야 하는 흥국생명 입장에선 절 다시 붙잡으려고 하는 거고요. 물론 이해합니다. 어쩌면 선수들도 제가 다시 합류해주길 속으로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전 그렇게 하기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와버렸어요. 더욱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신념이 더욱 확고해진 부분도 있습니다. 제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요. 전 정말 더 잘하고 싶어요. 지금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지만 특출나게 잘해서 미국, 브라질팀들이 쩔쩔 매는 그런 공격수로 성장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외국에서 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잘 해결 되리라 믿어요. 아마 잘될 겁니다(웃음). 잘되도록 좀 도와주세요.”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담담히 설명을 이어가던 김연경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배구 인생을 5세트로 정한다면 자신의 배구 인생은 지금 몇 세트에 와 있다고 생각하느냐?’
“2세트 중반 정도요? 아직 갈 길이 멀었어요. 작년에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하긴 했지만 외국 무대에서 김연경의 이름보단 한국 배구를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태극마크를 달고 뛴 국제무대에서 3위 이상의 성적을 내고 싶고요. 그 정도의 목표를 이루게 된 후라면 한국에서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 ‘연자매’로 불리는 황연주(왼쪽)와 김연경. |
“주위에서 올림픽은 다른 국제대회와는 수준도 분위기도 완전 다르다고 얘길해주시더라고요. 실제 경험하고 보니 그분들 얘기가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기심을 가득 안고 치렀던 런던올림픽은 저한테 또 다른 목표를 세우게 해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상투적인 ‘이상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김연경은 눈을 반짝 거리며 이렇게 얘기한다. “제가 원래 185cm의 남자라면 사귈 의향이 있다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그 후로 욕 많이 먹었어요. 185cm의 남자가 흔치 않다고요. 그래서 지금은 5cm 낮췄습니다. 180cm 정도의 키를 소유한 남성이라면 얼마든지 소개팅 환영합니다(웃음).”
참고로 김연경의 키는 192cm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