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피해 나갔다 우박 맞고 회항?
▲ 이재현 CJ 회장. | ||
CJ그룹 측은 이 회장의 해외 출장을 “사업 구상을 위한 그룹 총수의 일상적인 관례”라고 밝혔다. 6월 초에 출국한 이 회장은 당초 한 달 정도 미국에 체류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번 급식 파동으로 회장의 해외 체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20일 만에 서둘러 귀국했다. 이를 두고 재계와 검찰 주변에서는 “뚜렷한 업무 일정이 없이 그룹 총수가 그것도 혼자서 한 달을 해외에 머문다는 것은 이상하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지난달 28일 입국했다. CJ그룹 측은 이 회장의 출국 시점을 단지 6월 초라고 밝혔다. 5일에서 10일 사이에 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검찰의 삼성그룹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의혹 관련 수사 시점과 묘한 일치를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수사부가 CJ그룹 손경식 대표이사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임)을 소환, 참고인 조사를 벌인 시점과 일치하는 것.
검찰은 지난 96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장남인 이재용 상무 등 자녀에게 에버랜드 CB를 저가에 넘기도록 한 데 비서실이 깊숙이 관여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 과정에 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검찰 수사의 실마리를 풀어줄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96년 에버랜드 CB 발행 당시 유독 CJ(당시 제일제당)만 실권하지 않은 이유가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를 밝히는 데 결정적 힌트가 될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이 회장은 여전히 삼성그룹과 다소 껄끄러운 앙금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 회장은 기본적으로 삼성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지 못한 데 대한 섭섭함이 있는데다 CJ가 삼성그룹에서 분리하는 과정에도 잡음이 많았던 것. 이런 연유로 이 회장이 삼성 측의 이해에 반하는 결정적 증언을 할 수 있다는 추측이 재계 주변에 난무했다. 실제 삼성 주변에서도 그런 추측을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물론 양 그룹의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해 볼 때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어쨌든 이 회장이 참고인으로 검찰에 출두하는 것 자체가 삼성에서도 상당한 관심사였던 것만큼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결정적인 시점에 이 회장은 검찰이 아닌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가 미국으로 떠난 시점에 대신 손 회장이 검찰에 소환돼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는 “손 회장이 예상과 비슷한 진술을 해 이 회장을 소환할 필요성이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회장은 귀국했다.
▲ 삼성생명 본사 CJ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실제 재계 주변에서는 이 회장의 장남 선호 군(17)이 지난 1월 중순 비상장 계열사인 CJ미디어 지분 9.65%를 취득, 개인 1대 주주로 등극한 것에 주목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CJ미디어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2대 주주였던 CJ엔터테인먼트가 실권하자 선호 군이 114만여 주의 실권주를 74억 3600만 원에 취득한 것. 그런데 회장 아들이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이런 모습은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통한 2세 승계로 불법 시비에 휘말려 있는 상황과 상당히 닮은꼴이다.
이에 대해 CJ그룹 측은 “이 회장이 아직 40대임을 감안할 때 편법까지 동원해 경영권 승계에 나설 상황이 아니다”며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지만 여전히 선호 군의 CJ미디어 지분 취득이 향후 CJ그룹의 후계 승계작업을 위한 사전포석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검찰 내사설은 지난 4월 증권가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당시는 검찰이 현대차의 불법 경영 승계 의혹 수사를 확대하며 정몽구 회장을 구속시키는 등 재벌의 2세 승계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주식 급락으로 연결된 것은 5월, 그리고 이 회장의 출국과 손 회장 검찰 조사는 6월에 이뤄졌다.
또한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CB 편법증여 의혹 관련 수사가 CJ 내부 문제에 대한 검찰 내사와 관련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의 재계 관련 수사를 살펴보면 딱히 문제되는 부분만 집중 수사하는 대신 광범위한 부분을 조사해 문제되는 부분을 추려내는 경우가 많았던 것. 이런 관례에 비춰볼 때 에버랜드 CB 관련 사안에 대한 참고인 조사일지라도 CJ 입장에선 검찰 출두가 일정 부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검찰이 별도로 CJ 내부 문제에 대한 내사를 벌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에버랜드 CB 관련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이에 대한 조사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런 정황들로 인해 재계와 검찰 주변에서는 이 회장이 검찰 소환을 피해 미국 출장을 떠나고 그 기간 동안 손 회장이 대신 검찰 소환에 응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손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했다는 ‘예상과 비슷한 진술’의 내용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진술로 인해 검찰은 이 회장을 소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간의 무성한 의혹에 대해 CJ그룹의 신동휘 상무는 “CJ그룹은 올해를 글로벌 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이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의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검찰 수사 관련 소문에 대해 “에버랜드 CB 관련 수사와 이 회장은 전혀 무관하며 분식회계 및 경영권 승계 등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사실무근이라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까닭에 이 회장뿐만 아닌 다른 그룹 회장들도 사업구상을 위한 이런 차원의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의 해외 체류는 지난 연초 있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기 해외 체류와 오버랩되어 계속 소문을 양산시키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