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중독 치료비 ‘삼성 보험’ 쓰나
▲ 지난 26일 이창근 CJ푸드시스템 대표이사가 급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이렇다 보니 해외일정을 중단하고 급히 귀국한 이재현 회장이 난국 타개를 위해 어떤 방안을 강구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각에선 CJ 이재현 회장이 그룹의 모태이자 작은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이끌고 있는 삼성그룹과의 관계정리를 통해 위기탈출의 묘수를 찾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학교급식 사고를 낸 CJ그룹 계열사 CJ푸드시스템은 일단 지난 6월 26일 이창근 대표이사가 “학교급식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CJ에게 면죄부를 주진 못했다. CJ푸드시스템이 지난해 학교급식으로 올린 매출액은 전체 매출액의 10.9%를 차지하지만 영업이익 면에선 전체이익의 1.34%에 불과하다. 이런 탓에 업계에선 CJ가 그동안 손만 많이 가고 이윤은 적었던 ‘계륵’같은 사업을 이참에 접으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CJ푸드시스템은 몇몇 기업체에도 급식을 제공했으며 역시 사고가 났기도 했지만 CJ는 기업체·공공기관 급식에서의 철수는 선언하지 않았다. 이런 기업체 단체급식은 학교급식에 비해 이익률이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CJ의 학교급식 철수 선언은 결국 ‘욕먹을 거리’ 하나 더 늘려준 셈에 지나지 않게 됐다.
CJ푸드시스템은 사태 수습을 위해 급식을 받아온 8만 명 학생에게 소정의 음식을 제공하고 9300명 결식아동에게 하루 식대 5000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하루에 드는 비용은 1억 7000만~2억 원 정도라고 한다. 방학 시작 직전까지 약 한 달 동안 이를 이어간다면 지난해 CJ푸드시스템이 올린 순이익 58억 원에 가까운 돈을 모두 쏟아야 한다. 게다가 학교 급식시설 무상기부로 220억 원의 투자비용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CJ를 향한 비난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최근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재벌의 1조 원대 거금 사회환원에 비해 CJ의 몇 십억 원에 불과한 ‘성의표시’가 비교되는 까닭이다. 도덕성 시비에 휘말린 삼성(8000억 원)이나 현대차(1조 원), 신세계(1조 원 상속세 납부)는 사회환원 약속을 한 바 있다.
이번 CJ 사건은 편법승계 논란과 종류가 다르지만 ‘아이들 먹을 것’에 사고를 냈다는 측면에서 여론에 미친 파장은 재벌의 편법승계 건과 관련해서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다수의 업계 인사들이 거론하는 해결책 중 하나는 삼성과 현대차가 이미 보여준 거금 사회환원이다. 삼성은 미리 마련해둔 이건희장학재단 기금과 이 회장 막내딸인 고 이윤형 씨 유산, 그리고 총수일가의 에버랜드 지분 일부를 팔아 8000 억 원을 어렵지 않게 마련했다. 현대차는 후계승계에 활용하려 했던 총수일가의 글로비스 지분을 통한 1조 원 출연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CJ도 이런 거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CJ의 지주회사격인 CJ(주)의 최대주주 이재현 회장은 526만 3184주(21.88%)를 보유하고 있다(3월 31일 금감원 공시 기준). 지난 6월 29일 주가 9만 9900원으로 환산하면 5250 억 원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 지분은 이 회장의 그룹 지배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함부로 처분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 삼성생명 본사 건물과 이재현 CJ 회장. | ||
CJ는 그동안 M&A를 그룹의 주 성장동력으로 삼아왔다. 지난 2000년 식품·유통·엔터테인먼트 등을 핵심 사업영역으로 정해 같은 해 2월 해찬들 등 식품회사를, 지난해 11월엔 미국 현지 식품회사 애니천을, 올 4월엔 케이블방송 드림시티방송을 3581억 원에 사들이고 삼성HTH를 사들여 CJGLS를 국내 1위의 택배회사로 만드는 등 몸집을 키웠다. 게다가 CJ는 대한통운 인수 등 그룹 확장전략과 관련, 하고 싶은 일도 먹고 싶은 기업도 많다. 정관계와 우호적인 관계 유지 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업계에선 CJ가 삼성생명 지분을 조금씩 팔아 M&A 자금을 충당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초 CJ의 삼성생명 지분은 9.51%였지만 1년 사이에 7.88%로 줄어들어 업계 인사들의 관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동안 M&A 실탄으로 활용해온 삼성생명 지분이 위기의 CJ호를 구해낼 사회환원금으로 쓰일 가능성에 다수 업계 인사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들의 이런 준조세성격의 ‘반강제적’인 환원이 합당한 것인가라는 논란은 별개의 문제다.
정관계에선 생보사 상장이 조만간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생명이 상장을 하게 되면 주가가 폭등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 때문에 CJ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은 ‘당장 팔아치우기에 아까운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재벌의 거금 사회환원에 익숙해진 정치권과 여론이 뭇매를 가할 경우 CJ 또한 금고 문을 열어야 할 운명에 처할 수 있다.
CJ가 삼성생명 주식을 처분한다면 이는 실탄 마련 외에 또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 지분을 정리함으로써 그동안 범 삼성가로 분류돼 온 CJ가 다소 소원한 관계였던 삼성그룹과의 연결고리를 아예 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선 검찰 수사과정에서의 변수도 거론된다. 지난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과정에서 CJ(당시 제일제당)는 유일하게 신주 인수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희-이재용 편법증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이재현 회장을 지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건 때문에 6월 초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자 CJ 공동회장직을 겸하고 있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바 있다.
급식사고가 터졌을 당시 검찰청사 주변에선 검찰 수뇌부가 이 건에 대해 격분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보건당국이 식중독 감염경로를 규명하는 데 사실상 실패한 것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CJ푸드시스템이 수사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되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급식사고에 대한 본격수사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CJ는 어차피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때문에 검찰의 조사선상에서 지워질 수 없다. 수사당국 입장에선 이재현 회장 입에서 삼성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구체적 정황을 얻어내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지 못한 이재현 회장이 CJ를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삼성과의 절연’이라는 강수를 택할 지에 당분간 업계 인사들의 안테나가 고정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