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약 이슈로 주가 요동, 오너리스크도 여전…‘트레저’ ‘베이비몬스터’ 등 후발주자 성공이 돌파구
현재 YG엔터가 대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걸그룹 블랙핑크(BLACKPINK)의 재계약 불발이다. 2016년 8월 8일 데뷔했으니 7년의 첫 전속 계약이 만료된 뒤 재계약 여부는 적어도 올 7월 말, 늦더라도 9월 초까지는 판가름이 났어야 했다. 그러나 10월 초순이 된 현재까지도 YG엔터는 블랙핑크의 재계약 여부에 대해 “협의중”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미 제니와 지수는 1인 기획사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리사 역시 그전부터 YG엔터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던 차였다. 멤버들의 각자 활동이 가시화되면서 YG엔터의 주가는 10월 4일 오후 1시를 기준으로 5만 9700원 선에 거래되는 등 6만 원 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특히 블랙핑크의 재계약 불발 이슈가 불거진 9월 한 달 기준으로만 YG엔터의 주가는 22.94%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말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장중 9만 7000원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이처럼 넉 달 동안 내리막길만 걷고 있는 상황에 향후에도 뚜렷한 반등 요소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블랙핑크 재계약 불발설에 앞서 기존 YG엔터의 ‘얼굴’이던 빅뱅(BIGBANG) 리더 지드래곤(GD)마저 지난 6월 계약 만료 소식을 전해 주가 하락에 또 다른 영향을 끼쳤다. 빅뱅의 경우 범죄를 저질러 불명예 탈퇴한 전 멤버 승리를 제외하고도 2022년 태양, 대성이 계약 만료 후 새 소속사로 둥지를 옮겼고, 이듬해 5월에는 탑(T.O.P)도 그룹 탈퇴 의사를 밝혔다. 지드래곤만이 잔류해 있던 상황에서 그 역시 6월 전속 계약 만료 후 광고 등 기타 활동에 대해서만 별도의 계약을 통해 YG엔터와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YG엔터의 오랜 ‘캐시카우’였던 두 그룹의 완전체 활동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후발주자가 없다는 사실이 YG엔터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빅뱅과 블랙핑크를 제외하면 현재 YG엔터가 보유하고 있는 그룹은 지누션, 악뮤(AKMU), 위너(WINNER), 트레저(TREASURE), 젝스키스 등이다. 아티스트 활동이 없는 지누션과 젝스키스, 그리고 국내 활동에 치중하고 있는 악뮤를 제외한다면 위너와 트레저가 희망으로 남은 셈이다.
그러나 위너는 멤버들의 군 복무로 인한 군백기가 남아있어 당분간은 완전체 활동이 불가능하다. 데뷔 3주년을 맞이한 트레저 역시 YG엔터 아티스트라는 브랜드 네임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어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각종 오너리스크로 얼룩진 양현석 YG엔터 총괄 프로듀서가 직접 전면에 나서 공개했던 새 걸그룹 베이비몬스터(BABYMONSTER)의 9월 데뷔도 연기됐다. 2NE1-블랙핑크로 이어지는 YG 걸그룹의 계보에 따라 7년 만에 선보이는 뉴페이스라는 점에 국내는 물론 해외 음악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지만 이번 블랙핑크의 재계약 불발 이슈와 수장 양현석 총괄의 보복협박 재판 등과 맞물리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 엔터사가 소속 아티스트들의 재계약과 존속 여부로 기업 가치를 판단 받곤 하지만 YG엔터처럼 소수의 그룹만으로 급락과 급등을 오가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여기에는 타 대형 기획사가 꾸준히 신인 그룹을 내놓으며 세대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한 것과 비교해 YG엔터는 기존 그룹에만 안주하는 경향을 보여 공백을 제대로 메울 후발주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쟁사인 SM엔터의 경우 4세대 걸그룹 에스파(asepa)의 성공에 이어 9월 4일 공개한 신인 보이그룹 라이즈(RIIZE)로 5세대 아이돌의 물결에 합류했다. JYP엔터는 특히 해외에 막강한 팬덤을 보유한 3세대 걸그룹 트와이스(TWICE)와 4세대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를 필두로 있지(ITZY), 엑스디너리 히어로즈(Xdinary Heroes), 엔믹스(NMIXX) 등 꾸준히 신인을 공개하며 공백 없는 아티스트 활동을 지원해 왔다. 특히 국내 엔터사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 미국, 일본, 중국에서 현지 아이돌을 개발하고 있는 JYP엔터는 일본 현지 K팝 걸그룹 니쥬(NiziU)에 이어 9월에는 미국 현지 K팝 걸그룹 비춰(VCHA)까지 공개하며 ‘5세대 글로벌 아이돌’의 본격적인 활동까지 예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막강한 글로벌 인기를 보유한 방탄소년단(BTS)이 군 복무 등으로 완전체 활동을 잠시 멈춘 동안에도 하이브 역시 그 공백이 느껴질 새 없을 만큼 다양한 아티스트를 출격시켰다.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와 엔하이픈(ENHYPEN), 보이넥스트도어(BOYNEXTDOOR),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 뉴진스(NewJeans) 등 하이브 산하 레이블과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들의 라인업은 적수가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하반기에는 새 걸그룹 아일릿(I'LL-IT)의 데뷔도 앞두고 있다. 이처럼 타 엔터사들이 K팝 3세대의 성공 이후 자연스럽게 4세대-4.5세대-5세대로 이어지는 라인을 완성해낸 반면, 유독 YG엔터만 기존의 2~3세대 간판 그룹에만 안주하며 변화의 흐름에 즉각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익명을 원한 가요계 관계자는 “YG엔터 역시 데뷔 연도순으로 본다면 꾸준히 신인을 공개해 왔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들을 2세대인 빅뱅과 3세대인 블랙핑크의 레벨만큼 성장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YG엔터의 컬러로 자리매김한 두 대표 그룹들의 빈자리를 바로 채우지 못하면 빠르게 변하는 K팝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그 “YG엔터는 ‘YG’라는 브랜드가 여전히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베이비몬스터의 공식 데뷔와 트레저의 성장이 K팝 5세대 YG엔터의 운영 방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베이비몬스터는 2월 개설된 공식 SNS 채널이 4개월 만에 트위터 24만 8000명, 인스타그램 222만 명, 페이스북 20만 명, 틱톡 280만 명 등 폭발적인 팔로어를 끌어모으며 블랙핑크에 버금가는 수치를 기록했다. 소속사의 브랜드 가치와 이 같은 국내외 인기를 바탕으로 데뷔 직후부터 인기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