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엔 ‘7번 유니폼’ 완전 대세
| ||
| ▲ QPR의 박지성이 8월 18일 열린 EPL 개막전에서 스완지시티 선수들을 드리블로 제치고 있다. 연합뉴스 | ||
# 그라운드 속으로
강렬했다. 지난 7월 QPR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돌며 구단 창단 이후 사상 처음으로 진행했던 프리시즌 아시아 투어에서도 이미 느꼈지만 런던에서도 박지성의 가치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선수는 실력으로 말하는 법. 왜 박지성이 맨유에서 7시즌이나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왜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끝까지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내 이적을 거북해 했었는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한국시간으로 8월 19일 밤 열렸던 QPR과 스완지시티와의 격전. QPR의 홈구장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날의 승부는 2012~2013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전이었기에 훨씬 분위기가 뜨거웠다.
박지성은 더 이상 숨어있는 영웅이 아니었다. 궂은 일만 도맡아 처리했던 맨유에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역량을 발휘할 만한 공간과 여지가 훨씬 넓어졌다. 여기서도 박지성은 멀티 플레이어였다. QPR 사령탑 마크 휴즈 감독은 자신을 가르쳤던 퍼거슨 감독처럼 박지성을 다용도 카드로 활용했다. 중앙 미드필드를 중심으로 좌우 측면과 섀도 스트라이커까지 소화할 수 있어 입지를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물론 맨유에서도 여러 가지 포지션을 두루 거쳤지만 그 때는 팀의 빈자리를 이곳저곳 채우는 ‘땜질용’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QPR에서는 단순한 ‘메움’ 이상의 ‘채움’이라는 측면에서 자리를 굳혀가는 모습이었다.
박지성은 QPR로 이적한 가장 큰 이유로 ‘도전’을 꼽았다. 현역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어쩌면 챔피언십(2부 리그) 강등까지도 염두에 둬야 하는 약체 팀으로의 이적은 실로 엄청난 고민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도전의 가치와 매력을 느꼈다.
“나와 QPR은 도전자의 입장이다. 맨유에서의 경험이 보탬이 될 수 있다면 QPR도 상당히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잔류가 목표라고 하지만 그 이상도 노리고 있다. 할 수 있다고 본다.”
| ||
| ▲ QPR 슈퍼스토어에 많은 팬들이 붐비고 있다. QPR이 새 시즌 유니폼을 제작, 판매하면서 가장 먼저 내놓은 상품이 박지성 유니폼이라고 한다. | ||
QPR은 거의 모든 공식 행사 때마다 박지성을 내세운다. 맨유가 데이비드 베컴-라이언 긱스를 거쳐 지금은 웨인 루니를 얼굴로 내세운 것처럼 QPR은 박지성을 맨 앞에 세운다. 구단을 대표하는 최고 스타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투어 당시에도 박지성은 각종 행사에 빠지지 않았다. 팬 사인회 등에서 프리미어리그에 빠져있는 현지인들을 끌어 모으는데 박지성은 최고의 카드였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위치와 위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최근에도 박지성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있었다. 스폰서 계약이다. QPR의 CEO(최고 경영자)인 필립 비어드와 마크 휴즈 감독과 함께 박지성은 스폰서십 계약 조인식에 참여했다. 홍콩을 대표하는 항공 물류기업 ARS 로지스틱은 QPR의 트레이닝복 스폰서가 됐다. 프리미어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유니폼이 아닌, 트레이닝복과 훈련복에 특정 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한 건 맨유와 QPR이 유이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맨유의 트레이닝복 스폰서로 세계적인 물류기업인 DHL이 참여했다는 점. ARS 로지스틱이 아시아권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란 측면에서 아시아 축구를 대표해온 박지성이 공식 조인식에 등장한 건 당연해 보이지만 분명 가슴 뿌듯해지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 ||
| ▲ ARS 로지스틱의 QPR 트레이닝복 스폰서 계약식. 이 자리에 참석한 박지성 모습이 보인다. 사진출처=QPR 홈페이지 | ||
| ||
| ▲ QPR 팬사인회. 사진출처=QPR 홈페이지 | ||
박지성이 가져온 임팩트는 실로 대단했다. 스완지시티 개막전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스탠드가 가득 찼다. QPR의 상징색인 파란색 물결로 스탠드가 도배됐을 정도다. 등번호 7번이 선명한 박지성 유니폼을 착용한 이들이 특히 많았다. 뒷얘기지만 QPR이 새 시즌 유니폼을 제작 판매하면서 가장 먼저 내놓은 상품은 박지성 유니폼이었다. 등번호도 확실치 않았고, 이런저런 소문이 도는 시점이었으나 QPR은 일찌감치 박지성이 희망했던 7번을 주기로 확정한 상태였다. 7월 말에 이미 그랬다.
런던에 연고를 둔 팀들 가운데 풀럼FC와 QPR은 관중석이 꽉 차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달랐다. 시즌권은 가장 비싼 좌석이 1000파운드(약 180만 원)에 달했으나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고, 일부 비워놓은 좌석들도 개막전의 경우 열흘 전에 매진됐다.
로프터스 로드의 티켓 부스 담당자 마이크 호이슨 씨는 “이런 적은 처음이다. 시즌권이야 늘 원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매진까지는 리그 개막 이후 한두 달가량은 기다려야 했다. 챔피언십 시절에는 더 그랬다. 그런데 맨유를 대표했던 박지성이 오고, QPR이 지난 시즌 극적으로 1부 무대에 잔류해서 그런지 우리 팀의 인기가 꽤 올라간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박지성도 런던 생활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이층버스와 언더그라운드 튜브(런던 지하철)를 타고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인터넷 서핑에 여념이 없다. 대중교통을 타본 건 12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도 “아들이 너무 런던을 좋아한다. 걱정한 것보다 훨씬 잘 적응해주는 것 같아 고맙다”고 밝게 웃었다.
런던=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