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건축물 이행강제금 강화 이뤄지지 않아…유족 “하나도 바뀐 게 없고 책임지려는 자세도 안 보여”
당시 사고 원인과 대응 등을 두고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불법 증축한 가벽이 좁은 길을 더 비좁게 만들어 사고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부터, 주최자 없는 축제는 안전관리‧매뉴얼의 명확한 근거 규정이 없다는 점, 살릴 수 있는 부상자가 아닌 사망자를 가까운 응급실에 이송하는 등 재난응급의료 체계의 허점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고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향후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며 “행정안전부(행안부) 등 관계부처로 하여금 핼러윈 행사뿐만 아니라 지역 축제까지 긴급점검을 실시하고 질서 있고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유가족들은 “지난 1년 간 하나도 바뀐 게 없고 정부는 진솔한 사과와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자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참사 자체가 없었던 일인 것 마냥 지우려 할 뿐”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인근 해밀톤 호텔 옆 이태원로 173 인근 골목은 길이 45m, 폭 3.2~4m의 좁은 내리막길이었다. 길의 폭과 크기에 비해 과도한 인원이 오가며 병목현상이 발생했고 압사사고까지 이어졌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골목에는 불법 증축 건축물로 인해 골목길이 좁아져 사고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불법 증축이 적발되면 건축법 80조에 따라 시정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이행강제금이 부과되는데, 당시 사고가 발생한 골목의 불법 증축 건축물은 수차례 이행강제금을 내가면서까지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 논란이 됐다.
서울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김태수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 주택정책실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밀톤호텔은 2013년부터 본관과 별관에서 모두 무단 증축이 적발돼 위반건축물로 등록됐지만 사고 전 해까지 약 9년간 이행강제금 5억 553만 3805원을 내고 버텨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이후 불법 증축 건축물에 대한 이행강제금을 강화하는 등 추가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고 당시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불법 건축물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도 손해가 훨씬 더 크도록 처벌을 강력하게 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특히 공공의 안전에 대해서 심각한 위해를 주거나 하는 경우에는 강제로 철거할 수 있는 권한을 지자체에 부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큰 변화는 없다. 서울시 주택정책실에 따르면 이태원 사고 직후인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실시된 상가밀집지역 현장 전수조사에서 적발된 위반건축물은 모두 2600건이었다. 이 가운데 시정 완료는 1600건, 시정 명령은 680건, 이행강제금 부과는 230건, 고발은 8건으로 집계됐다. 서울시의 경우 이행강제금을 최대 4배까지 올리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건축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지난 1월 입법 예고했으나 서울시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제동이 걸린 상태이다.
사고 당일 이태원에서 열린 핼러윈 축제에는 별도의 안전 매뉴얼이나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도 논란이 됐다.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는 지역 축제로 신고 대상이 아니었고, 이런 경우는 별도의 관련 지침이나 매뉴얼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게 당시 행안부와 경찰의 설명이었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참사 이후 2022년 10월 3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주최자가 없는 행사 개최는 유례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침이나 매뉴얼이 없었다.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사 후 1년이 다 된 지난 9월 20일 주최자 없는 지역축제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이 뒤늦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살릴 수 있는 부상자가 아닌 사망자를 가까운 응급실로 이송하는 등 당시 현장에서는 응급환자 이송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재난의료 ‘컨트롤 타워’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정부는 이후 재난의료과를 신설하고 국가 재난의료 대응체계를 점검했다. 이 밖에도 재난응급 의료 관계 법령과 매뉴얼을 정비하고,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조정, 병원 전 단계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 도입 등을 추진했다. 해당 내용은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에 들어있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인파 사고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매뉴얼이 마련돼 교육 및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코로나 이후 인파사고 대응매뉴얼을 정부에서 만든다고 했는데, 매뉴얼을 수립해 일반 시민들에게 홍보‧교육해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경주 지진 이후 지진 대피 행동 요령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가 늘어났던 것처럼 인파사고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서 교육이 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이태원 사고 이후 인파 사고 행동매뉴얼 수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국민에 공개된 것은 아직 없다. 행안부 관계자는 “다중밀집 인파 사고는 기존에 사회재난 유형에 포함된 법정 재난이 아니어서 이태원 사고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이를 추가하는 과정에 있다”며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 계류 중으로 법이 통과 되고 나면 각 부처 별로 대응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