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떨어지면 어쩌려고 아직도 싸워?
▲ 우리금융지주 로고가 박힌 금배지 2400개와 6000만 원어치의 백화점 상품권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은행에 보관 중이다. | ||
이 배지들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전당포에서 보관되다 올해 6월 29일부터는 은행 금고에서 보관 중이다. 우리금융지주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다량의 이 배지들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보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금배지들은 옛 LG투자증권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전임 집행부와 현 집행부가 제작비 지급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다량의 금배지들이 떠돌게 된 것이다.
노조가 금배지를 만들게 된 경위는 이렇다. 지난해 4월 1일 LG증권과 우리증권이 합병해 새로운 우리증권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LG증권과 우리증권 두 노조는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불편한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옛 우리증권 노조가 LG증권 노조를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산하 사무금융노조연맹에서 제명하는 작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두 회사가 합병하는 과정에서 LG증권 노조가 회사보다 먼저 나서서 명예퇴직에 나서는 등 반 노동자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대해 옛 LG증권 노조 집행부는 “합병 과정에서 어차피 구조조정이 단행될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에게 유리한 방안을 노조가 먼저 제시한 것이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통합 후유증을 빨리 가라앉히기 위한 대승적인 결정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명 추진에 맞서기로 한 LG증권 노조는 주요 일간지 광고비 등 투쟁비 명목으로 특별회계 예산 1억 원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그 사이 제명작업이 취소되었고 이 바람에 특별예산 1억 원의 용도도 사라졌다. LG증권 노조는 이 돈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기로 했다. 당시는 우리증권과의 합병으로 경쟁업체에 비해 주식가치가 낮게 평가된 것으로 노조에서 판단, 사측에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던 중이었는데, 특별예산을 여기에 투입하기로 한 것. 이런 결정은 사측의 자사주 매입에 압력을 넣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2005년 8월 12일 매입한 주식은 지난해 하반기 상승랠리에 힘입어 2배 가까이 올랐고 매매차익이 1억 원 가까이 생겼다. 매입시 평균 단가는 1만 2300원이었고 매도시 평균 단가는 2만 900원이었다. 노조는 이 매매차익을 조합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금배지를 만들기로 했다. 백화점 상품권 등의 형태로 돌려주는 것이 그간의 관례였지만 합병과 구조조정을 거친 뒤라 직원들의 단결을 위해 의미있는 기념품을 준비하자는 의도였다.
12월 3일 배지 주문에 들어갔고 1억 9000만 원 제작비 중 선수금으로 1억 3000만 원이 지급되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이를 찾을 때인 12월 17일이었다. 10월 선거에서 당선된 새로운 후임 집행부가 노조 계좌를 동결시키면서 전임 집행부가 추진하던 금배지 배분에 브레이크가 걸려버린 것. 현 집행부가 계좌를 동결시키게 된 사연은 이랬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노조위원장 선거는 파행을 겪다 10월 말 새로운 위원장이 선출되면서 끝났다. 그러나 전임 집행부가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 두 달 동안 이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전임 집행부는 △투표용지에 찍힌 위원장 직인이 진본이 아니라는 점 △투표용지에 위원장 직인만 찍혀 있고 투표를 관리하는 분회장 도장이 없는 점 △무효 처리해야 할 표들을 유효로 처리한 점 등을 거론하며 부정선거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현 집행부는 전임 집행부가 직인과 투표함 등을 내놓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직인을 새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오랜만의 선거라 분회선관위원들이 중앙선관위원장 도장만으로도 되는 줄로 착각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유효표로 처리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사표시가 명확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두 집행부 사이에 공방이 오가는 동안 새 집행부는 12월 15일 서울지방노동사무소에서 위원장 변경 신고를 받아냈다. 이를 근거로 사측에 노조계좌 동결을 요구하고, 전임 집행부에 사무실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2박3일간 사무실 내에서 두 집행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치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노조 계좌가 막히자 전임 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사재를 털어 잔금을 지급하고 금배지를 찾아왔다. 찾아온 금배지를 다시 전당포에 맡겨 대출받은 돈으로 상품권을 샀다. 조합원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주식 10주의 가격에 맞추기 위해 추가로 상품권을 사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한편 현 집행부는 금배지 논란에 대해 “2007년부터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이 중지되기 때문에 조합비를 확보해놓을 필요가 있다 보니 금배지 문제가 쉽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이니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다. 다만 전 집행부가 전당포 이자까지 현 집행부에게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금배지를 보관하고 있는 전임 위원장, 부위원장은 지난 6월 말 전당포에서 이를 다시 찾아 은행 금고에서 보관하고 있다. 대출 만기가 지나면 처분권을 가진 전당포가 이를 임의로 녹여 팔아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일부 퇴직금을 털어 되찾은 것이다.
전임 위원장, 부위원장은 현 집행부로부터 퇴직금 가압류 및 10건 이상의 고소·고발을 당한 상태. 현 집행부는 이들이 퇴직한 상태라 소재가 모호해질 수 있어 처음 몇 개의 고소·고발은 이들의 소재를 묶어 놓기 위한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한때 금값이 폭등해 이를 녹일 경우 세공비를 제하고도 돈이 남는 때도 있었다고 한다.
김숙경 전 부위원장은 “임기가 다음해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신임 집행부가 12월부터 사무실과 계좌를 무단 점거했다. 금배지와 상품권은 전임 노조에서 집행하기로 절차적 승인을 마친 것인데 이를 막으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전 위원장과 내가 지고 있다. 현 집행부는 계속 엉뚱한 핑계를 대면서 해결을 미루고 있다. 돈이 문제였으면 금을 다시 녹여 문제를 해결하면 끝이지만, 처음 조합원에게 주식 10주를 환원한다는 대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아직 들고 있는 것이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