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진상·김인섭 특수관계 상세 설명…용도변경 과정과 김인섭 ‘로비스트’ 역할 적시
#‘이재명·정진상·김인섭’ 오랜 특수관계
검찰은 ‘성남시 2층’이라 불린 이재명 대표와 정진상 전 정책비서관의 지위와 역할, 이들과 김인섭 전 대표의 특수관계 형성 과정 등을 A4 용지 약 12쪽 분량에 걸쳐 설명했다. 2층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때 시장실로 쓰던 곳이다. 이 대표는 시장 시절 정 전 정책비서관이 모든 부서를 총괄하며 자신을 보좌하도록 했다. 시 소관 부서, 공사 등으로부터 인허가와 주요 현안 등을 시장에게 보고하기 전에 정 전 비서관에게 사전 검토를 받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즉, 이재명 대표가 2010~2018년 성남시장 재직 당시 정진상 정책비서관과 각종 현안을 공유하며 정치·행정 관련 사항을 최종적으로 함께 결정한 사이였다는 것이다. 성남시청 공무원 및 공사 등 산하기관 직원들은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최측근 실세인 정 전 비서관을 거쳐야 시장에게 보고·결재 가능한 의사결정 구조였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이재명 대표는 1995년쯤부터 김인섭 전 대표, 정진상 전 비서관 등과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가깝게 지냈다. 김 전 대표는 2006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후보 캠프 선대본부장을 지냈다. 2008~2010년에는 민주당 분당갑 부위원장으로서 위원장인 이 대표와 함께 활동했다. 2010년과 2014년 성남시장 선거 때도 이 대표를 도왔다. 김 전 대표는 이 대표의 각종 선거에서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가며 성남시장 재선 성공에 기여했고, 성남시 공무원 인사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른바 ‘비선실세’로 통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김인섭 전 대표는 이재명 대표 위증교사 혐의에도 등장한다. 이 대표는 2018년 12월 ‘검사 사칭’ 등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자 이 대표는 김 전 대표를 통해 김 아무개 씨에게 법정에서 위증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김인섭 전 대표와 김 씨는 26년 지기로 알려졌다. 10월 16일 검찰은 김 씨에게 위증을 교사한 혐의로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돌연 입장 바꾼 성남시
공소장에 따르면 이재명 대표는 2010년 6월 성남시장으로 처음 당선된 이후 줄곧 한국식품연구원 백현동 부지에 고용 및 경제유발 효과가 큰 대기업과 R&D(연구개발)센터를 유치하겠는 입장이었다. 이 대표는 2011년 8월 19일 기자회견에서 공공기관 이전 부지에 대해 “대규모 고급 주택부지나 아파트 단지 등으로 개발된다면 난개발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2013년 7월 1일 취임 3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식품연구원 등 공공기관 이전 부지에 대해 대기업 본사 및 R&D센터를 유치하겠다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2014년 2월 5일 성남시는 한국식품연구원 백현동 부지를 매입해 민간업자의 주거용도 개발을 방지하고, 판교테크노벨리 확대 발전 전략과 연계해 창작중소기업집적 또는 지식기반산업 연구개발단지로 활용하는 공공개발 방안을 마련했다. 이 대표도 이 같은 방안을 승인했다. 다음날 6일 이 같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은 ‘2020 성남도시기본계획’도 발표했다.
이재명 대표는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공공기관 이전 부지에 공사 중심의 공영개발을 통해 주상복합을 금지하고 대기업 등 본사를 유치함으로써 1조 원의 자주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재선에 성공했다. 2015년 1월 23일 언론 인터뷰와 2015년 10월 6일 시민단체 및 시의원 등을 상대로 개최한 주민설명회에서도 공공기관 이전 부지에 주거시설 대신 기업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취지로 발언했다.
실제 2014년 4월과 9월 아시아디벨로퍼는 두 차례에 걸쳐 성남시에 자연녹지였던 백현동 부지를 제2종 일반주거지로 2단계 상향해달라고 신청했지만, 성남시는 ‘2020 성남동시기본계획’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두 차례 모두 거부했다. 앞서 2014년 1월 아시아디벨로퍼는 향후 용도지역 변경이 이뤄지면 한국식품연구원 백현동 부지를 매수하기로 하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2015년 1월 성남시는 돌연 아시아디벨로퍼의 3차 용도 변경 신청을 수용했다. 그해 9월 성남시는 백현동 부지의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해줬다. 대신 용도 변경 조건으로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업 참여, R&D센터(1만 6948㎡) 완공 뒤 기부채납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사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추진됐다. 공사는 특별한 이유 없이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고, 기부채납 대상도 변경됐다. 임대주택 공급 계획은 100%에서 10%로 축소됐고, 나머지 90%는 수익성이 높은 일반 분양 아파트로 대체됐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백현동 개발은 민간 회사 성남알앤디PFV가 맡았고,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46% 지분을 보유한 아시아디벨로퍼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대표는 1356억 원 상당의 이익을 얻은 반면, 성남도시개발공사는 개발 사업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200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
검찰은 “2015년 2월 정바울 대표가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직접 찾아가 공사의 사업 참여에 따른 이익 수취 방안 4가지를 제안했다. 공사는 사업에 참여하기만 하면 그 개발이익 중 최소 200억 원을 환수할 수 있었다”며 “공사의 지분을 100% 보유한 성남시장은 기업(공사)의 공공복리가 증대되도록 운영해야 하고 주주권과 업무감독권을 적정하게 행사해야 한다. 피고인(이재명 대표)은 위와 같은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공사에 손해를 가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김인섭 어떤 역할 했나
김인섭 전 대표가 77억 원을 받고 백현동 부지의 용도 변경 과정에서 ‘로비스트’ 역할을 했다는 것이 검찰 측 판단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정바울 대표는 2012년 6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김 전 대표를 수차례 만나 용도 변경 등 인허가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김 전 대표는 정 대표에게 “200억 원을 주면 백현동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인허가 및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 200억 원 중 50%는 이재명 대표, 정진상 전 비서관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는 정 대표가 7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옥곤) 심리로 진행된 김 전 대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기도 했다.
공소장에는 이재명 대표와 정진상 전 비서관이 김인섭 전 대표 청탁을 받아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정황이 다수 포함돼 있다. 김 전 대표는 정 전 비서관을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만나 “내가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아파트 짓는 사업을 하려고 한다”고 말하면서 용도 변경 등 백현동 개발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부탁했다고 한다. 김 전 대표와 정 전 비서관은 2014년 4월부터 2015년 4월 동안 약 300회에 걸쳐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 등 거의 매일 연락하며 백현동 개발사업 등에 대해 긴밀히 논의했다.
정 전 비서관은 2014년 11월 용도 변경 신청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김 아무개 성남시 도시계획과 도시계획팀장에게 “인섭이 형이 백현동 개발사업을 하려고 하므로 잘 챙겨줘야 한다”며 ‘관련 인허가 등 신청서류가 접수되면 사업자 측에서 요구하는 대로 잘 처리해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그해 12월에도 정 전 비서관은 이 같은 지시를 김 팀장에게 전화로 했다. 용도 변경 신청에 대해 반대 의사를 수차례 전달했음에도 지시가 계속 이어지자 김 팀장은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 등이 따를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김인섭 전 대표도 김 아무개 팀장에게 “2층(이재명·정진상)과도 얘기가 잘 됐고, 잘 해보라고 했다”고 말하면서 백현동 개발 사업 인허가 등과 관련한 원활한 협조 및 편의 제공을 부탁했다. 김 팀장은 팔영회(전남 고흥 출신 성남시 공무원 모임) 회원으로 김 전 대표 고향 후배였다.
2015년 2~3월경 정바울 대표는 용도 변경에 성공하자 이번엔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사업에서 빼달라고 김인섭 전 대표에게 부탁했다. 이에 김 전 대표는 정진상 전 비서관을 만나 “R&D센터 건물과 용지까지 기부채납을 하는데 공사까지 참여시키면 사업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취지로 말하며 공사가 사업에 참여하지 않도록 조치해달라고 했다. 이후 정 대표는 김 아무개 도시계획팀장을 찾아가 “김인섭이 2층과 공사를 사업에서 빼는 것에 대해 얘기 중이니 일단 공사를 빼고 절차를 진행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도 2015년 3월 당시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백현동 개발사업은 인섭이 형님이 끼어 있으니 진상이하고 잘 이야기해서 신경 좀 써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당시 유 본부장은 이 대표에게 공사가 백현동 개발 사업에 참여하면 200억 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했다고 한다.
2015년 4월경 정진상 전 비서관은 이 아무개 성남시 도시계획과장을 불러 “공사는 백현동 개발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이재명 대표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향후 진행될 관련 절차에서 확실히 공사가 배제될 수 있도록 업무를 처리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2016년 1월 25일 김인섭 전 대표는 특별면회를 온 정진상 전 비서관에게 “R&D 부지 전체를 다 기부채납하는데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들어오게 되면 사업이 어려워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공사가 사업에 참여하지 않도록 조치해줄 것을 재차 청탁했다. 당시 김 전 대표는 성남시와 군포시를 상대로 로비를 하고 억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확정받아 수감생활 중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2016년 7월경 유동규 본부장이 공사의 사업 배제 이유를 묻자 “정진상이 김인섭과 이야기가 됐다고 해서 공사의 사업 참여 배제를 결정했다”는 취지로 말하며, 자신의 그러한 결정을 재차 하달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정바울 대표가 백현동 부지에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50m 옹벽을 세운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 대표는 산지관리법에 따른 계단식이 아니라 50m 높이로 산을 수직 절개한 뒤, 아파트 1열(5개동)을 추가로 넣었다. 산지관리법에는 경사면을 수직으로 절개하는 경우 15m를 넘을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이와 관련, 정진상 전 비서관은 2016년 10월 중순 성남시 아무개 국장에게 전화해 “옹벽 건축계획안을 문제 삼지 말고 빨리 사업을 진행시켜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는 옹벽 건축계획안이 포함된 지구단위계획을 결정, 고시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