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과 비례·공천 조건 M&A 염두 창당 추진…참신한 ‘메시지’ 부재 “구태 정치 가까워”
내년 4월 총선이 가까워지자 ‘OOO 신당’이라는 말이 정치권을 수놓고 있다. 집권여당 국민의힘과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틈새를 파고드는 제3지대 정당이 다시 꿈틀대고 있는 것.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제3지대 정당은 ‘한국의희망’이다. 현역인 양향자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다.
양 의원은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광주 서구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이듬해 국회의원 지역 사무소에서 양 의원의 친척이자 회계책임자인 A 씨를 둘러싸고 성폭력 사건이 불거져,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후 민주당이 추진한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입법 과정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사실상 민주당과 결별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국민의힘이 제안한 반도체특위 위원장직을 수락하는 등 범여권 무소속 의원으로 활동하던 양 의원은 총선을 8개월여 앞둔 지난 8월 28일 제3지대 정당 ‘한국의희망’ 깃발을 올렸다.
‘금태섭 신당’도 창당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회는 9월 19일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민주당 내 소신파로 꼽히던 금태섭 전 의원은 ‘공수처’ 표결에 기권 표를 던진 뒤 당내에서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에 금 전 의원은 지난 2020년 10월 21일 “민주당은 예전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 문화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이후 2021년 4·7 재보궐 선거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 캠프와 박형준 당시 부산시장 후보 캠프에서 활약했다. 제20대 대선 국면을 전후로 국민의힘으로부터 입당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무소속 신분을 유지하다,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 ‘새로운선택’ 창당을 바쁘게 준비 중이다.
양향자·금태섭 등 전·현직 의원들이 제3지대 정당 깃발을 들어 올리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의 가장 큰 관심은 ‘유승민·이준석 신당’ 창당 여부다. 보수진영에서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힘을 모은다면, 총선 구도 전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는 까닭이다.
실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준석 대사면’이 거론되고, 이 전 대표는 창당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아 ‘밀당(밀고 당기기)’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바른정당에서 활동했던 복수 관계자는 신당 창당을 목적으로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가 손을 맞잡을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출신 인사들의 창당 러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준석계’로 분류됐던 신인규 전 국민의힘 부대변인이 10월 25일 “한때 중도층과 젊은 세대 지지를 받던 국민의힘이 완전히 윤석열 대통령 사당으로 변했다”며 탈당 선언을 했다. 신 전 부대변인은 ‘민심동행’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신인규 신당’엔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이 참여하진 않았다.
이 밖에도 친박계 TK 신당, 이언주 신당, 권은희 신당 등이 보수진영에서 분열해 제3지대 깃발을 올릴 세력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언주 전 의원의 경우 제21대 총선을 앞두고도 미래를향한전진4.0을 창당한 뒤 미래통합당에 합류한 이력이 있다.
진보진영에선 손혜원 전 의원이 지난 5월 제시한 ‘호남 신당’ 아이디어가 주목받은 바 있다. 손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도 열린민주당을 창당, 비례대표 3명을 배출한 바 있다. ‘경력자’의 창당 시사 발언이었던 까닭에 정치권에서 적지 않은 조명을 받았다. 손 전 의원이 호남 신당 아이디어를 언급할 당시 제시한 목표는 ‘비례대표 의원 20명’이었다.
그간 꾸준히 제3지대에서 생존해왔던 정의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분열해 ‘제3지대 쟁탈전’에 돌입할 전망이다. 정의당은 이정미 대표와 녹색당이 공동 추진하는 ‘정의당 재창당파’와 류호정·장혜영 의원을 비롯해 조성주 정의당 정책위원회 상근부의장이 주도하는 ‘세번째권력’, 참여계열인 사회민주당 등으로 갈라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친윤 핵심’으로 꼽히고 있는 제3지대 전문가가 다시 한 번 창당설 중심에 서기도 했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이야기다. ‘김한길 신당설’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친윤발 ‘윤석열 신당론’ 연장선에 있었다. 민주당 비명계와 국민의힘 친윤계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제3지대 정당이 창당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김 위원장은 10월 23일 “나는 정치를 떠나 있는 사람”이라며 “신당 창당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제3지대 정당이 우후죽순 고개를 들고 있는데, 과거의 정당들과는 양상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제3지대에서 활동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그동안 제3지대 정당이 나올 때엔 어떤 메시지나 키워드가 강조되며 중도층 결집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메시지보다 계보가 강조되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자민련이나 국민의당 같은 제3지대 정당은 전국적으로 ‘300’이라는 전체 의석수를 토대로 계산을 했지만, 지금 제3지대 정당은 ‘3’이라는 숫자를 목표로 이권 다툼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제21대 총선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3지대 정치 색깔을 바꿨다는 것이다. 실제 2020년 4월 총선에선 ‘비례 위성정당’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기존 양당이 자회사 격으로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 등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어 의석수 확보에 전념했다.
여권 관계자는 “사실상 지금 가능성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유승민·이준석 신당을 제외하면 당선자를 배출할 가능성이 있는 정당이 몇이나 있을까”라며 “총선을 코앞에 두고 합당 혹은 딜을 통해 비례대표 또는 지역구에 공천을 받으려는 M&A식 신당이 난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야권 관계자 역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도 및 신뢰도가 국민의힘 내부적으로도 도전을 받다보니 중도 성향 인사들이 이끄는 각종 신당이 제3지대에 ‘스몰 텐트’라도 쳐보려는 것 아닌가”라며 “과거 제3지대 정치가 일부 참신함을 느끼게 했다면, 이제는 제3지대 정치가 더욱 구태 정치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제3지대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제3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생존’”이라며 “생존을 해야 어떠한 메시지라도 낼 수 있는 것이 제3지대 정치인의 숙명”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건 참신한 메시지인데, 지금 제3지대 정치권에선 특별한 메시지가 도출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실제 제3지대 정당이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으로 지역 기반과 참신한 메시지가 거론된다. 과거 ‘삼김시대’ 한 축을 담당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경우 충청 지역 기반을 필두로 의원내각제 추진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띄웠다. 안철수 의원이 이끌었던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흥행몰이를 하면서 ‘안철수표 새정치’라는 메시지를 유권자에게 각인시킨 바 있다. 최근 등장한 제3지대 정당이 이런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최근 제3지대 정당에선 지역 기반보다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며 “진영대결에서 탈출해서 제3지대 통합 내지 탈진영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바라봤다. 이어 “위성정당을 만들게 됐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금 아직 유지되고 있다 보니 그런 부분을 활용하는 제3지대 정당 출몰이 일종의 유행처럼 부각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