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없다면 우리편으로 검찰 안팎서 ‘싹쓸이’
▲ 이종왕 삼성 법무실장 | ||
지난해 삼성은 공격적인 법조 출신 인사 영입을 통해 초호화 법무라인을 구축하면서 ‘삼성공화국’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킨 바 있다. 이는 곧 ‘반 삼성 정서’의 기폭제로 작용해 이건희 회장과 삼성 수뇌부에 큰 부담을 안겨 줬고 결국 구조본 조직에서 법무실을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던 삼성이 다시 법무라인을 강화하려는 배경엔 이건희-이재용 총수 부자에 대한 검찰의 소환설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 깔려 있다.
천정배 법무장관의 사의표명과 정치권 복귀가 삼성에 대한 사법당국의 수사에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장관이 바뀌고 8월에 검찰 내 주요 보직 인선이 겹치면서 삼성 총수일가에 대한 칼날이 무뎌질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법당국이 삼성 에버랜드 사건을 ‘그룹 차원의 공모’라고 규정한 이상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이건희-이재용 부자 소환 조사를 단행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일각에선 ‘삼성공화국’론이 어느 정도 희석됐다는 자체 판단을 통해 삼성이 ‘법무라인 강화’라는 카드를 꺼내들게 됐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만약 삼성의 법무라인 강화 프로젝트가 소문대로 사실이라면 최근까지 법조계 핵심부서에 있던 인사를 우선 영입대상으로 꼽을 가능성이 높다. 8월 중 검찰 대규모 인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인사 시즌에 선후배 동료들의 승진 여부나 부서 발령에 따라 자연스럽게 옷을 벗는 검사·판사들이 더러 있다. 괜한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 아예 인사철 직전에 검찰·법조 조직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인사들 중에는 삼성이 군침을 흘릴 만한 타깃도 있다.
검찰 대규모 인사를 앞두고 삼성은 내부적으로 부장검사 출신과 부장판사 출신 몇 명을 영입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검사 중에선 대검 중수부나 특수부 등 기업수사 전력이 있는 인사들이 목표물이 됐다는 전언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란 점에서 기업 수사 패턴을 훤히 꿰뚫고 있는 인사의 영입이 절실한 것.
부장판사급 인사 영입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수사는 검사가 하지만 선고는 판사가 한다. 유·무죄 판단과 형량 확정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지닌 판사 인맥을 휘어잡을 수만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다.
일각에선 ‘수사를 담당하던’ 사람이 갖고 있던 노하우를 ‘수사를 받게 된’ 대상에서 취득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어전술도 없을 것이란 차원에서 삼성이 일선수사관 출신 인사 영입에도 심혈을 기울일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삼성은 이미 모 일간지의 법조팀장 출신 기자를 최근 영입했다. 해당 기자가 삼성에 영입될 당시 ‘수억 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법조계에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일부 검찰 출입기자들 중 검찰 수뇌부 인사가 불러 주요 현안을 논의할 정도로 법조계에 정통한 인사들도 있다”고 밝힌다. 얼마 전 검찰의 한 고위 인사가 모 일간지 기자와의 자리에서 현대차 비자금 용처 수사에 대해 회의적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 기자는 검찰 수뇌부 인사들이 자주 불러 의견을 나눌 정도로 검찰 안팎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기자가 벌써부터 삼성의 영입대상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삼성은 검찰조직에서 실력파로 인정받는 몇 명의 기자를 추가로 영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전해진다. 법조인 출신은 아니지만 검찰청사 내부 사정에 밝고 인맥이 두터운 언론인 영입 또한 삼성의 ‘범 법무라인’ 강화 차원으로 풀이된다.
가장 주목받는 사안은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에 대한 소문. 현대차 수사과정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채 기획관 영입에 대해 ‘이종왕 삼성 법무실장이 직접 나섰다’ ‘삼성에서 수십억 원을 실탄으로 준비해뒀다’는 구체적이면서도 믿기 어려운 소문들이 파다하다.
이에 대해 검찰이나 법조계 인사들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설사 삼성이 채 기획관 영입 계획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재벌수사의 ‘얼굴마담’ 역할을 해온 채 기획관이 삼성행을 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
일각에선 삼성이 주목하는 몇몇 유명 검사들이 직접 삼성에 합류하는 대신 ‘외곽지원’ 형태로 삼성의 법무라인 강화에 보탬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변호인으로 활동한 유재만 전 대검 중수과장과 같은 역할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유재만 변호사는 현대차 조직에 합류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현대차 수사과정에서 현대차 법무라인에 대한 외곽지원을 해왔다. 지난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현대차가 한나라당에 제공한 불법자금을 파헤쳤던 유 변호사는 지난 6월 1일 정몽구 회장에 대한 첫 공판에 변호인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