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취소로 탈당 명분 약해져…노원병보단 당선 유리한 대구 노려, 신당 ‘명분 쌓기’ 계속할 듯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제1호 혁신 안건으로 ‘당내 화합을 위한 대사면’을 확정했다. 사면 대상은 당원권 1년 6개월 정지 중징계를 받은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10개월), 김재원 전 최고위원(1년) 등이 거론됐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 윤석열 대통령과 당에 대한 거듭된 공개 비난 등 사유로 1년 6개월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어 국민의힘 지도부는 혁신위 안건을 받아들여 11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준석 전 대표 등에 대한 징계 취소 안건을 의결했다. 김기현 대표는 “당 윤리위의 징계 결정은 합리적 사유와 기준을 갖고 이뤄진 것으로 존중돼야 마땅하다”면서도 “보다 큰 정당을 위한 혁신위의 화합 제안 역시 존중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이준석 전 대표는 국민의힘 당원 자격을 회복했다. 내년 4월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깃발 아래 본인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 출마가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이 전 대표의 표정을 보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전 대표는 ‘대사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왔다. 이 전 대표는 혁신위 발표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우격다짐으로 아량이라도 베풀 듯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킨다”며 “혁신위의 생각에 반대한다. 재론치 않았으면 좋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다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가 노원병에 출마를 원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전 대표는 노원병에 2016년(20대 총선), 2018년(재보궐 선거), 2020년(21대 총선) 3번 출마해 모두 낙선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노원병을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보수정당에 불리한 험지에서 도전해 당선되는 걸 정치적 목표로 삼았다는 것. 실제 이준석 전 대표 페이스북을 보면 지하철 내 상계역 안내전광판이 얼굴 뒤로 보이는 사진을 배경화면에 올려놨다. 소개글에도 “상계동 주민은 언제나 메시지 주시면 친구추가 최우선 순위”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여권 한 관계자는 “이준석 전 대표가 이번에는 무조건 의원 배지를 달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강서구청장 선거를 보면 알 수 있듯 수도권에서 국민의힘 상황 좋지 않다. 이 전 대표도 내년 4월 총선 노원병에 출마하면 또 진다고 판단해, ‘보수의 성지’ 대구 출마를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전 대표의 최근 행보를 보면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8월 대구 치맥페스티벌 참가해 “서울 노원구에 집중하고 싶다”면서도 “그분(윤핵관)들이 해달라는 대로 제 진로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변수를 다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0월 18일에는 대구 중견 언론인 모임 ‘아시아포럼21 정책토론회’에 참석해서는 대구 지역구 여당 의원들을 고양이에 비유하며 “호랑이를 키우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이 전 대표를 노원병에 공천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노원병에 출마시켜서 낙선하게 해 정치생명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진 정진석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국민의힘 소속으로는 대구 공천이 어려워 보이자 이 전 대표의 국민의힘 탈당 후 신당 창당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11월 1일 cpbc평화방송 ‘김혜영의 뉴스공감’에 출연해 “12월은 당에서 뭔가 전열을 정비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서 총선을 대비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며 “12월엔 결단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핍박하고 쫓아내는 그림을 만들어나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혁신위의 제안으로 징계가 취소되면서 고초를 겪고 탈당하는 명분이 퇴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여권 관계자는 “당이 노원병에 출마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왜 탈당하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표 입장에서는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러다보니 국민의힘과 이 전 대표 사이에 명분 쌓기 경쟁이 펼쳐졌다. 이 전 대표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방문해 대화를 나눴다. 이어 여러 인터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해병대 수사외압,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진실규명 등 윤 대통령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요구를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아 내가 당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어느 공당이 당대표까지 한 청년 정치인을 사지에 공천해 낙선시키는 것을 전략이라고 내놓느냐. 현재 국민의힘의 복잡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