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과 손끝으로 빚어내는 부드럽고 오묘한 가락
신라 삼죽 중에서 가장 긴 관악기는 대금(우리말로 젓대)인데, 바로 이 대금으로 우리 국악 중 ‘정악’을 연주하는 음악을 가리켜 ‘대금정악’(大笒正樂)이라 한다. 정악’이란 우아하고 바른 음악이라는 뜻으로, 궁정이나 관아 및 풍류방(각 지방의 풍류객들이 모여서 음악을 즐기던 장소)에서 연주하던 음악을 말한다.
대금의 변화무쌍한 음색만큼이나, 대금정악의 가락도 변화난측하다. 대금정악은 영롱하나 가볍지 않고 부드러우나 유약하지 않으며, 섬세하나 천박하지 않은 오묘한 맛의 가락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는 이 독특한 전통음악을 196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대금은 대대로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전통악기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에서는 대금으로 연주하는 곡이 324곡에 이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고려시대에는 귀족들은 물론 왕까지 대금을 직접 불며 즐겼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우왕이 손수 취적(피리를 붊)했다는 기록이 여러 번 등장한다. 충렬왕 때에 대금을 잘 불어서 요행히 관직에 나아간 벼슬아치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조선시대 전기의 기록물에서는 ‘악기’ 대금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성종 때의 음악 서적인 ‘악학궤범’에는 대금을 만드는 방법과 운지법까지 설명돼 있다. 조선 초에 대금의 재료로 쓰이는 대나무 ‘적죽’은 지방에서 왕실로 올려 보내는 중요한 진상품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세조실록’에 따르면 세조는 적죽의 무늬, 무게, 마디 모양을 직접 언급할 정도로 대금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 초의 문신 맹사성과 아악을 정리한 학자 박연 등은 관료 중에서 대표적인 대금의 명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유교적 이념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대금의 위상도 달라진다. 향악과 향악기에 관한 지배층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대금은 거의 전문 연주자의 전유물로 남게 되었다. 향악이란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을 당악(당·송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국의 속악)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대금은 관악기 중에서도 가로로(옆으로 쥐고) 부는 횡취악기에 속한다. 따라서 단소, 퉁소 등 세로로 부는 악기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다.
대금을 구성하는 대나무 관대를 보면, 한쪽 끝은 막혀 있으며, 첫마디에 나 있는 취구(입김을 불어넣는 구멍)를 시작으로 지공(손가락 끝으로 짚는 구멍), 청공(취구와 지공 사이의 구멍), 칠성공(악기의 아래 끝에 있는 몇 개의 구멍)이 차례로 뚫려 있다. 이 중에 청공에는 갈대로 만든 청(얇은 막)을 발라 맑은 떨림 소리가 나도록 되어 있고, 칠성공은 높은 음을 조절할 때 쓰인다.
‘악학궤범’에는 대금을 만드는 재료로 누런 색깔의 대나무인 황죽이 언급된다. 그러나 대금의 고수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재료는 쌍골죽이다. 쌍골죽은 대나무 수천 그루 가운데 한둘 정도 나오는 일종의 돌연변이체인데, 두께가 두껍고 단단하며 속이 차 있어 대금을 만들기에 제격이다. 쌍골죽으로 만든 대금은 음정이 정확하고 음색이 맑기로 정평 나 있다. 일반적으로 대금은 ‘대나무 진을 빼고 곧게 펴기 - 내경(대나무 속) 뚫기 - 취구 뚫기 - 지공 뚫기 - 청공 뚫기 - 줄 감기 - 청 붙이기 - (청을 보호하기 위한) 청가리개 씌우기’의 과정을 거쳐 제작된다.
대금은 저취와 역취를 적절히 오가며 손가락을 움직여 연주를 한다. ‘저취’는 낮은 음이나 은은한 소리가 나도록 여리게 부는 연주법이고, ‘역취’는 높은 음이나 청아한 소리가 나게 힘주어 부는 연주법이다. 안정적으로 호흡이 이어져야 연주가 가능하므로 허리와 어깨를 펴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대금이 바닥과 수평을 이루도록 옆으로 들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대금이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쪽 끝에 쌀이 든 자루를 묶어서 연습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금은 다른 국악기에 비해 음량이 풍부하고 음높이를 조절할 수 있어서 독주악기로도 자주 쓰인다. 대금으로 연주하는 정악 곡에는 궁중음악과 함께 영산회상, 가곡 등 일부 민간 음악까지 포함된다. 영산회상은 궁중의 나례의식에서 처용무 행사에 쓰이던 음악이 궁궐을 벗어나 민간에서 연주되며 기악곡으로 변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 대금정악 예능보유자인 조창훈 선생은 국악사양성소 1기생 출신으로 초대 대금정악 보유자였던 고 김성진 명인의 제자이다. 조 보유자는 반세기 넘게 대금정악과의 인연을 이어가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1960년대 중반에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수년간 단소를 가르친 이력도 있다.
자료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