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중진 희생 요구에 반발 기류 불구 하이킥…윤 대통령 여의도 물갈이 차원이라는 해석도
인요한 위원장은 홍준표 시장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여당 외곽의 고성능 스피커까지 활용하는 정치력도 발휘하고 있다. 희생 요구에 대한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노림수로 풀이된다. 정가에선 인 위원장의 이런 행보엔 윤 대통령 의중이 담겨 있을 것이란 분석이 주를 이룬다.
#여권 휘감은 ‘닥치고 희생’
대사면 통합을 1호 혁신안으로 내세웠다가 당 안팎의 여러 비판에 시달리면서 신고식을 호되게 치른 ‘인요한 혁신위’는 11월 3일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 친윤계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결단하라는 요구를 내놓은 것이다.
인 위원장은 이날 2호 브리핑에서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아니면 수도권 지역에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걸로 결단을 내려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인 위워장은 발표 직후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정말 대통령을 사랑하면 험지에 나와서 (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해라. 못 하겠으면 내려놓으라는 것”이라고 했다.
인 위원장은 김기현 2기 체제 지도부의 수용 여부에 대해 “그럼 얼마나 빨리 할지 몰라도 6주 안에 ‘나 수도권 어디 나가겠다(라는 지도부가 있을 것)’”라며 “지켜봅시다. ‘용기를 가져라’ 말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또 “오늘 제가 듣기로 지도부하고 대통령이 만난다고 하는데 아마 핫 이슈가 될 것”이라며 “‘뭔가 던져놔야’ 그런 말 있죠. 울고 싶을 때 뺨 한 번 때려라. 아마 뺨을 확실히 때렸다. 이제 가서 울고 대화를 나누고 (그럴 것)”라고 말했다. 혁신위가 작심한 뒤 여권 핵심부를 정통으로 때렸다는 의미로 들렸다.
인 위원장은 희생이라는 2호 혁신안을 거침없이 밀고 나갈 태세다. 그는 11월 6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선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가 다 알지 않느냐.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친윤 핵심 의원들의 내년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거듭 촉구했다. 그는 “어제 저녁에도 (그분들에게) 결단을 내리라고 전화했다”고까지 소개했다.
인 위원장은 진행자가 ‘결단의 대상으로는 권성동 장제원 의원이나 김기현 대표가 떠오른다’고 하자 “그중에 한두 명만 결단을 내리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의 희생 카드가 윤핵관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재확인한 셈이다.
혁신위는 국회의원 정수 축소, 세비 감축 등을 담은 ‘2호 혁신안’을 11월 9일 지도부에 공식 건의했지만, ‘주류 불출마·험지 출마’는 그 대상에서 일단 제외했다. 그러나 이 사안이 이미 언론에 알려진 이상 추후에 당 지도부에 공식 제안될 것이 유력하다. 정가에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인 위원장이 쏘아 올린 ‘희생’의 기준에 부합된다고 여겨지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윤핵관을 비롯해 어림잡아 30∼40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체로 당 텃밭으로 여겨지는 영남권에 포진해 있다. 부산의 장제원 의원, 강원의 권성동 이철규 의원 등 윤핵관이 모두 사정권에 들어간다. 대구 최다선인 5선 주호영 의원과 윤재옥 원내대표도 영향권 내로 진입될 수밖에 없다.
다선은 물론, 초·재선도 희생 칼날 앞에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 위원장의 인적 쇄신 요구가 대체로 수용된다고 가정했을 때 당의 공천 혁신안까지 겹치면 절반 가까운 현역 물갈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희생을 내세운 혁신위가 2호 안건으로 동시에 발표한 ‘현역 평가 후 하위 20% 공천 원천 배제’ ‘의원 정수 10% 감축’ 등은 일정 수준의 현역 물갈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위 20% 공천 배제의 경우 조만간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당무감사 결과에서 이뤄질 수 있다. 사실상의 ‘1차 컷오프’다. 인적 쇄신의 또 다른 한 축인 인재 영입 작업도 이와 동반될 수밖에 없어 현역들에 대한 대폭의 물갈이가 개시될 전망이다.
#일단은 버티자
당내에서는 여전히 “무슨 소리 하느냐”는 기류가 높다. 강한 반발의 목소리까지 분출하기 시작했다. 험지 출마 압력을 받고 있는 주호영 의원은 11월 8일 대구 수성구청 대강당에서 의정보고회를 열고 “걱정하지 마라. 서울로 가지 않는다”며 “대구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면 대구에서 마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주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40년째 미국 상원의원을 했는데 지역구를 옮겼나.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지역구를 옮겼나”라고 되물으며 “우리나라만 이상한 발상을 한다”고 발끈했다.
개별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가운데 지도부도 혁신위에 대해 동조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혁신위가 ‘1호 혁신안’으로 제시한 이준석 전 대표 등에 대한 징계 취소 건의를 즉각 최고위에서 의결한 것과 대조적으로 지도부는 희생 안건에 대해서는 반응이 거의 없다. 11월 6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 중 김병민 최고위원만 “혁신위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응원한다”는 발언을 했을 뿐이다.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의 총선 불출마 및 수도권 출마 권고에 대해 11월 9일 기자들과 만나 “모든 일에는 시기와 순서가 있다”고 말하면서 언짢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요즘 언론 보도를 보니 너무 급발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뒤 “급하게 밥을 먹으면 체하기 십상이니 잘 한번 보죠”라면서 말을 끊었다.
앞서 김 대표는 11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에도 기자들이 인 위원장의 권고와 관련한 입장을 묻자 “또 다른 질문 있나”라며 즉답을 피했다. 김 대표는 11월 3일 인 위원장의 권고 직후 “혁신위가 종합적으로 제안해오면 정식 논의 기구와 절차를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은 바 있다.
김 대표가 향후 정치 행보를 두고 측근들에게 “국회의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큰 영광은 다 이뤘다”고 말한 것으로 한때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혁신위의 ‘희생’ 요구에 대한 중진 의원들의 기류가 워낙 좋지 않아 김 대표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당내의 전언이다.
친윤 의원들도 공개적으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에 임명된 친윤계 핵심 이철규 의원은 인 위원장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 “할 말이 없다”고만 답했다.
이에 대해 당의 한 초선 의원은 “영남권 중진 의원들의 반응은 한결 같다. ‘자신들이 수도권에 출마한들 승리하겠느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심, 담겨 있을까
내년 총선은 윤 대통령에 대한 중간 심판 성격을 가진다. 이는 여당의 공천에 ‘윤심’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통령제라는 특성이 감안되어야 하는 데다 집권 여당 공천 구도에서 현직 대통령 영향력이 배제된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진보 정권에서도 대통령 측근과 참모들이 대거 공천되는 등 1호 당원 대통령의 권한이 보이지는 않지만 일정 규모 행사돼왔다.
정가에서는 인 위원장의 혁신 목소리에 윤심이 실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친윤 주류를 겨냥한 인 위원장의 내년 총선 ‘정치적 결단’ 압박이 대해 11월 8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나가 “인요한 위원장이 대통령을 사랑하면, 나라를 사랑하면 자기 몸을 던져라(고 했다)”며 “윤심이 실려 있다고 봐야 된다”고 분석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윤심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그는 인요한 위원장이 11월 8일 대구시청을 방문, 자신을 찾아오자 “언론이나 많은 사람이 ‘대통령은 권모술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대통령을 호가호위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문제”라며 “대통령이 최근에 그걸 깨닫고 자기를 이용해 먹는 세력들을 멀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래서 대통령이 저런 비판을 받는 것이 참 안타깝다”며 “혁신위가 그런 세력들을 정리해 달라”고 인 위원장에게 당부했다. 홍 시장은 인 위원장과의 비공개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은 앞뒤 다르게 행동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걸 이용해 먹는 놈들이 1년 6개월간 나라를 농단한 것”이라며 “그 본질도 모르고 엉뚱한 처방을 하니 지지율이 계속 떨어진다”고 했다.
홍 시장은 혁신위로부터 불출마 또는 수도권 출마를 요구받은 당 지도부 거취 문제와 관련해서도 “전권을 줬으면 혁신위 말을 들어야 한다”며 “안 그러면 혁신위를 해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핵관으로 평가받는 한 국민의힘 의원은 사석에서 “윤심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윤 대통령은 지금의 여의도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신당을 원하겠지만 물리적으로 쉽지 않으니 대대적인 공천을 통해 당의 체질을 바꾸고,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할 것”이라면서 “인 위원장이 윤핵관과 중진들의 험지 출마 및 불출마 요구를 하는 것엔 윤심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도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현직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TK(대구·경북) 좌장으로서 재출마 욕구가 매우 강했지만 혁신 분위기에 밀려 결국 2011년 12월 불출마 선언을 했다”며 “인요한 혁신위는 윤심 기관차의 진입을 위한 선로 깔아주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