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계 “이재명 리더십 재평가” 비명계 “잘해서 이긴 거 아냐”…비명계 탈당 여부 총선 변수로
정치권에선 선거 전부터 민주당의 진교훈 강서구청장이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를 여유 있게 앞선다는 전망이 주를 이루긴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추세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당력을 총동원했지만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패색이 짙었던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연일 한숨을 내쉬었던 반면, 민주당에선 자신감이 흘러 나왔다.
이변은 없었다. 진교훈 청장은 최종 득표율 56.52%로 39.37%의 김 후보를 17.15%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진 청장은 먼저 개표된 사전투표 때부터 크게 앞서 나갔다. 이는 역대 지방선거·재보궐 선거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던 사전투표 때 민주당 지지층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나왔음을 의미한다. 당초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높은 사전투표율을 두고 각자 유리한 식으로 해석한 바 있다.
선거 결과 발표 후 민주당에선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홍익표 원내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은 오히려 몸을 낮췄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가 일찌감치 정해지자 민주당 관계자들,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축배를 들며 승리를 만끽하는 모습이 여의도 인근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강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으로 분류되긴 했다. 20대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진성준 민주당 의원이 이겼다. 2022년 대선 때도 이재명 후보가 49.17%로 윤석열 후보(46.97%)를 근소한 차로 앞섰다. 하지만 2022년 6월 강서구청장 지방선거 때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가 51.30%를 거두며 민주당 김승현 후보(48.69%)를 눌렀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6.09%로 42.10%의 송영길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승리했다. 민주당으로선 강서구를 탈환한 셈이다.
민주당은 큰 표 차이뿐 아니라 투표율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다. 사전투표를 포함한 강서구청장 최종 투표율은 48.7%다. 이는 2022년 6월 지방선거 때 강서구 최종 투표율(51.7%)보다 낮은 수치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가 평일에 치러졌고, 또 구청장 선거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어느 때보다 투표 열기가 높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월 12일 만난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양당의 지지층이 집결해서 투표장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투표율을 최대 40% 초반으로 봤다. 그런데 5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중도층이 움직였기 때문이고, 그 배경은 집권당의 무능과 오만한 공천 탓이라고 판단된다. 총선 역시 판세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으로 본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를 잘 알기에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김행 후보자는 10월 12일 자진사퇴)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승은 이재명 대표에게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후 구성된 ‘친명 지도부’가 전면에서 이끌었던 첫 번째 선거였기 때문이다. 공천부터 유세까지, 전반적인 선거 전략에 대해 호평이 주를 이룬다. 이재명 대표의 당 장악력이 한층 견고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동시에 그동안 이 대표와 대척점에 서왔던 비명계의 세는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 친명 의원은 “구속영장이 기각되긴 했지만 아직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이 많이 남았다. 총선 때까지 사법리스크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 대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부에서 자신을 흔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로 이 대표 리더십은 재평가 받게 됐다. 비명계도 더 이상 이 대표를 흔들 명분이 없다. 내홍이 외부로 표출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전 포인트는 비명계에 대한 이 대표의 향후 스탠스다. 물론, 이 대표는 단식을 마치고 당무에 복귀한 후 통합을 강조하고 있긴 하다. 강서구청장 선거가 끝난 후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 단합하자”고 적었다. 하지만 정가에선 이 대표가 ‘포용’보단 강공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점치는 이들이 많다.
비명계에서도 이런 우려가 팽배하다. 조응천 의원은 10월 10일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 “지도부, 원외세력, 강성지지층 이게 사실상의 이 대표를 지탱하는 친위부대이다. 이 대표 당신은 통합 얘기하고 자기 친위부대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하는데 그걸 그냥 가만히 놔둔다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후 친명 강경 지지층은 이른바 ‘수박 의원 명단’을 만들어 유포했다. 여기에 포함된 비명 의원들은 문자와 전화 테러에 시달려야 했다. 수박 당도 1에서 5중 가장 높은 5로 분류된 이원욱 의원은 10월 6일 페이스북에 “팬덤에 의지해, 팬덤을 결집해 정치하려는 이재명 대표에게 민주주의를 묻는다. 순도 100%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드는 것만이 목표인가. 누구의 민주당이라는 용어가 민주주의 정당에 맞느냐”고 썼다.
그동안 비명 의원들은 여러 차례 이 대표 측에 강경 지지층에 대한 자제 메시지를 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별다른 답을 듣진 못했고, ‘이 대표가 사실상 이들을 용인하고 있거나 부추기고 있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비명계가 이 대표의 통합 행보에 회의적 반응을 내비치는 이유다.
한 비명 의원은 “친명계는 이번 승리 요인을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먹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곧 이 대표에 대한 정부의 탄압 논리와도 맞물린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가 절대 버릴 수 없는 프레임이다. 이를 총선은 물론 대선 때까지 끌고 가려면 강력한 대여 투쟁이 필요하다. 친명계가 강경 지지층을 손절할 수 없는 이유”이라면서 “수박 명단에 포함된 의원들에게 그들(강경 지지층) 눈치 때문에라도 공천을 주려야 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과 민주당 내부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가 민주당에 ‘독’이 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앞서의 비명 의원은 “아무리 중요한 선거라고 한들, 구청장이다. 의미를 부여한 건 정치권과 언론이지, 사실 국민들 누가 그리 관심이 있겠느냐”면서 “국민의힘이 공천을 제대로 했다면 알 수 없는 선거였다. 김행 사태도 여파가 컸다. 상대방의 악재로 이긴 선거다. 국민의힘은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잘해서 이긴 선거라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조응천 의원도 10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재명 체제로 이렇게 이겼어, 이 상태로 내년 총선 가도 압승이야’라고 하면 이제 대걸레가 우리 쪽으로 오고 그땐 대걸레 없이 바로 쇠몽둥이가 날아올 수 있는 것이죠”라면서 견제성 발언을 했다. 이원욱 의원은 10월 11일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보궐선거 승리가 내년 총선에는 악재가 될 것”이라며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격이 돼 오히려 당이 현재 체제에 안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비명계의 이런 기류엔 공천 탈락이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 체제가 단단해질수록 비명계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가에선 비명계의 탈당 여부가 내년 총선을 뒤흔들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비명계에선 ‘소설 같은 얘기’라며 일축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다. 더군다나 민주당 이탈 소문이 돌고 있는 몇몇 비명 의원들이 3지대 세력과 물밑에서 교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