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가 할아버지를 넘어뜨렸다
▲ 김수영 |
▲ 지난 9월 6일 열린 ‘하나은행2012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 전반전에서 박강수 선수(왼쪽)와 김수영 선수가 대국하고 있다. |
9월6일 서울 합정동 K-바둑 스튜디오에서는 ‘하나은행 2012 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 전반전이 열렸다. 정규리그 우승 팀인 ‘대구 덕영치과’와 리그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서 4위 ‘인천 에몬스’, 플레이오프에서 2위 ‘충북’을 꺾고 올라온 ‘충남 서해바둑단’이 두 판을 격돌해 충남 서해바둑단이 2판을 모두 이겼다.
제1국은 김정선(대구 덕영치과) 대 유병룡(충남 서해바둑단). 유병룡이 백. 김정선은 정규리그에서 9승2패를 기록한 막강전력. 초반은 엇비슷했으나 중반 초입에 김정선은 유병룡의 진영에서 큰 수를 만들어 승기를 잡았고 이후 매끄럽게 대세를 리드했다. 낙승지세였다. 그러나 유병룡의 백 대마를 그렇게 심하게 핍박하지 않고 적당히 살려 주면서 마무리해도 좋았을 대목에서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그게 결국은 화근이 되고 말았다. 유병룡은 거의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다가 순간의 역습 일격으로 상대를 흔들었다. 거기서부터 김정선의 난조. 바둑은 유병룡의 불계승으로 끝났다.
제2국은 박강수(대구) 대 김수영(충남). 박강수 선수는 50대 중반이지만 손자손녀를 둔 할아버지. 그래도 무지무지한 힘바둑은 여전하다는 평이다. 김수영은 스물을 넘긴 아가씨지만 여전히 단아한 소녀의 모습. 그런데 김수영 또한 도발은 무조건 응징한다는 신조의 무서운 전투파. 바둑도 처음부터 난타전이었다. 박강수가 오버하자 김수영은 타협없이 맞받아쳤다. 형세는 중반 무렵 이미 김수영에게 기운 상태. 그런데도 수가 보이면 즉각 결행해 차이를 벌려가는 김수영을 보고 검토실에선 “야~ 할아버지한테 너무 하네”하면서 계속 웃었다. 역시 김수영의 불계승이었다.
<4도> 흑1~9, <5도> 백10까지도 외길. 여기서 흑11로 다시 나온 수가 박강수다운 점. 어쨌거나 <6도> 흑7까지로 제1라운드는 일단락되고 백8로 협공하면서부터 제2라운드. 두 사람의 전투는 이렇게 끝없이 이어졌는데….
<3도> 흑6으로는 <7도> 흑1로 여기를 치받아 일단 좌상 백 석 점을 잡아두는 것이 좋았다는 검토실의 중론이었다. 백8까지 전혀 다른 한 판. <5도> 흑11도 좀 심했다는 것. 좌상귀 흑은 <8도>에서 보듯 빅으로 사는 길이 남아 있으므로 여기서는 흑A로 돌려치고 흑B로 상변 백을 제압하는 정도로도 충분했다는 것.
챔피언 결정전 후반전은 9월 7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제3국은 강지흠(대구)-송홍석(충남), 제4국은 이유진(대구)-박성균(충남)의 대결. 송홍석이 이기면 3 대 0으로 끝나고, 대구가 두 판을 다 이기면 주장전 재대결로 우승을 결정한다.
송홍석은 2~3년 전만 해도 세계대회 2회 우승에다가 아마 랭킹 1위로 장기집권했던 실력자이긴 하나 요즘은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이느라 바둑 성적은 주춤한 상태. 내셔널리그에 참가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다시 칼을 갈기 시작했다는 동료들의 귀띔인데, 송홍석은 팀의 2승을 지켜 본 후 “지금까지 동료들에게 업혀 온 것이 사실이어서 부끄럽다. 마지막에서나마 팀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화끈하게 파이팅을 외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결의는 대단하게 느껴졌다.
강지흠은 최근 연구생에서 나온 청년 중에서는 가장 세다, 제일 잘나간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래서인지 팀이 2패를 했는데도 전혀 어두운 표정이 아니다.
박성균은 역전의 맹장. 연구생 출신의 남녀 주니어들의 기승 속에서도 잘 버티고 있는 몇 사람 안 되는 시니어 중 한 사람. 앞서 플레이오프, 충북과의 일전에서 여자 주니어 김현아를 상대로 귀중한 1승을 올려 팀의 결정전 진출에 기여했던 박성균은 이번에도 여자 주니어 이유진을 만났는데, 과연 어떨지.
신문이 나올 때면 이미 결과는 나와 있을 것이다. 덕영치과가 풍부한 전력으로 정규리그에 이어 챔피언 벨트까지 거머쥘지, 디른 팀들에 비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지원을 잘 못 받고 있는 충남이 예의 헝그리 정신의 결실을 보여줄지.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