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뜨기도 전에 소문 먼저 이륙
▲ 지난 6월 운항을 개시한 제주항공이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곳에서 도입한 항공기는 캐나다의 Q400 기종. | ||
지난 6월 5일 운항을 개시한 제주항공이 두 달 사이 네다섯 건의 결항이 셩겨 말썽이 되고 있는 것. 제주항공은 항공기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것보다도 사소한 문제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이를 부풀려 해석하는 배경에는 악의적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냐며 불쾌감도 표시하고 있다. 저가항공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질수록 이익을 보는 곳은 기존의 대형 항공사들이라는 얘기다.
제주항공이 도입한 항공기는 캐나다 봄바디어사(社)가 1998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Q400 기종. 제트기가 아닌 프로펠러 추진 방식의 터보프롭기다. 최대 78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기종으로 대형 제트 여객기보다 연료 효율이 좋아 외국에서는 대형 항공사에서도 단거리 노선 용도로 쓰고 있는 기종이다.
특히 1998년 이후 지금까지 89만 번의 이착륙 동안 사망사고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안전한 항공기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에서 운항되는 항공기 중 사망사고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Q400과 보잉777 두 기종뿐이다.
Q400에 대한 논란의 발단은 6월 11일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이 ‘Q400 봄바디어기의 잦은 고장은 제조, 설계 단계에서부터 문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이후부터다.
보도에 따르면 항공기 정비 문제가 계속 터지고 있는 Q400에 대해 일본의 국토교통성이 캐나다 정부에 개선을 요청했다는 것. 일본 국토교통성은 일본 아나(ANA: All Nippon Airways)항공 계열 2개사와 일본항공(JAL: Japan Air Lines) 자회사인 JAC(Japan Air Commuter)가 2003년 2월 도입후 ‘지연(irregular)운항’으로 판단한 52건의 주원인을 분석한 결과 승무원의 조작실수는 3건이고, 49건이 컴퓨터 고장, 배선불량 등 제조사의 설계 단계에서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국토교통성이 캐나다 정부에 빠른 개선을 요청했다는 것.
Q400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국내에 퍼져나가자 제주항공은 7월 13일 주상길 사장이 직접 기자간담회를 통해 해명에 나섰다. “일본 정부에서 제기한 문제는 기체나 엔진 등 기계적인 결함이 아니라 배선, 센서, 소프트웨어의 문제”라는 것. 또 “19대의 Q400을 운항하고 있는 JAL과 ANA가 각각 3대와 2대를 추가로 주문했다. 안전에 문제가 있다면 추가로 주문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은 “19대의 비행기에서 3년간 52건의 결함이라면 비행기 한 대당 1년에 한 건도 안되는 꼴이다. 오히려 장점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제주항공 측은 일본 국토교통성의 문제제기에 대해 “값을 깎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겠는가”라며 나름대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Q400의 운항이 안정화 단계에 있어 작은 기사 하나에 민감하지 않겠지만 국내의 경우에는 아직 저가항공에 대한 신뢰가 확고하지 않은 상태라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또 일본 국토교통성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사고’에 대한 것이 아니라 ‘irregular(지연)운항’에 관한 것으로 기체결함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지연 운항의 분석 결과를 보면 랜딩기어 수납 19건, 자동조정장치와 승강타 고장 등 조종 계통 11건, 한쪽 엔진 정지 등 엔진 계열과 도어 5건, 유압계통 4건, 관제응답장치 등 전기 계통 2건, 기타 등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기체 결함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제주항공은 이미 몇 차례 사소한 결함으로 운항이 지연된 바 있다. 취항을 앞둔 5월 24일에는 양 프로펠러 회전 속도가 5rpm 차이가 나면서 시승식이 취소되었다. 결국 엔진을 교환해 문제를 해결했다. 큰 결함은 아니지만 미세한 문제도 짚고 넘어가자는 것이 제주항공의 방침이라고 한다.
취항 후인 6월 25일에는 엔진오일 관련 부품에 문제가 있어 운항을 일시 중단했고, 7월 18일에는 김해→김포 노선에서 제너레이터 베어링이 마모되어 4일간 운항이 중단되기도 했다. 7월 19일에는 김포→제주 노선에서 프로펠러 계통에 미세한 결함이 발견되어 프로펠러 일부를 바꿨다. 당시 기장이 “항공기가 낙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련의 운항 지연에 대해 제주항공은 “안전을 중요시하는 회사 방침 때문에 기존 항공사들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사소한 문제도 짚고 넘어간다. 게다가 취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보니 운항 지연이 더 부각되었던 것 같다”고 해명하고 있다.
저가항공 업계의 경쟁업체인 한성항공의 한 관계자는 “대형 항공사도 사소한 결함은 비일비재하다. 다만 보유 항공기가 많아 대체가 가능해 결항이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덩치가 큰 항공사일수록 경영진이 결항에 따른 이미지 타격, 매출 손실을 우려해 심각하지 않은 결함은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며 제주항공을 옹호하고 있다.
제주항공이 이처럼 안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지난해 취항한 저가항공사인 한성항공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방침이 크게 작용했다. 자금 출처가 다양했던 한성항공은 경영권을 둘러싸고 내분 이 이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타이어 펑크 사고로 일시적 운항 중단 사태가 벌어지자 급격하게 승객이 감소했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한성항공과 달리 처음부터 자금력이 튼튼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한성항공은 당시 15년 된 중고 터보프롭기 ATR-72를 리스해 사업을 시작했다. 이에 비해 제주항공은 1000억 원을 들여 신형 항공기 5대를 직접 샀다. 초기 사업비로 600억 원이 확보된 데다 1대 주주인 애경그룹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신형 항공기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를 최신형으로 업그레이드하다 보니 프로그램간 충돌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다만 신형 항공기의 경우 소프트웨어의 충돌은 ‘길들이기’ 과정에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Q400의 안전성 논란을 부추긴 데는 기존 대형 항공사들의 입김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저가항공의 출현 당시 국내 실정에 맞지 않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저가항공사들은 운항 횟수가 아직 미미하기 때문에 특별히 경계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반응이다.
그렇지만 제주노선과 달리 서울-부산 노선은 가격을 30% 내리는 등 저가항공을 견제하는 모습이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비수기 때 할인폭을 늘리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예전부터 해왔던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