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신의 손’…당신 진짜 개미 맞아?
▲ 안랩 투자로 막대한 차익을 거둬들인 원종호 씨는 업계에서 ‘신의 손’으로 불리지만 그 실체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진은 안랩 전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그런데 안랩 주식투자로 1000억 여 원의 차익을 거둔 원 씨가 최근 검찰수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주식 지분 보고의무 위반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증권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바짝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안랩 투자로 막대한 차익을 거둬들인 덕에 원 씨는 ‘신의 손’이라 지칭됐지만 그 실체는 이상할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및 금융권 일각에서는 원 씨의 정체 및 그에 대한 미확인 루머들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원씨가 본격적으로 노출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안랩에 투자한 개인투자가가 안철수 효과에 따른 주가급등으로 8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거뒀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다. 고수들도 줄줄이 무너지는 주식시장에서 마흔 한 살에 불과한 ‘개미’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엄청난 차익을 챙겼다는 것은 굉장한 뉴스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원 씨가 처음 안랩 주식을 매수한 것은 당시 안랩 평균 주가가 1만 6500원이던 2008년 2월 29일이다. 이날 51만주 매수를 시작으로 원 씨는 수십 차례에 걸쳐 추가로 매수했다. 이후 안랩 주가는 최대 주주이자 창업자인 안 후보의 행보 및 대선 출마 기대감과 맞물려 10만 원을 넘어섰고 원 씨의 평가차익은 1000억 원대에 올라섰다.
안랩 3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자사주를 제외하고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는 안 후보(37.1%)와 원 씨(10.8%) 두 사람뿐이었다. 문제는 원 씨가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가 주식 보유량에 대한 변화가 있을 시 변동일로부터 5일 이내에 공시를 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이다. 2009년 안랩 지분 9.2%(91만 주)를 보유했다가 16만여 주를 추가 매수해 지분율을 10.8%로 늘린 원 씨가 금감원에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올 초 언론들은 “금감원이 안랩 2대 주주인 원종호 씨가 차명계좌를 이용해 지분투자를 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조사에 들어갔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안랩에 투자한 개미들까지 동요하되는 소란이 벌어졌다. 이에 금감원이 “(원 씨에 대한) 기사 내용은 확인된 사항이 아니므로 향후 보도에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는 해명을 하는 등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금감원 조사설이 나돈 올 1월과 2월에 원 씨가 2차례 매도에 나서 매입원가를 제외하고도 각각 209억과 373억 원씩 쏠쏠한 차익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지난해 11월 안랩 주식이 폭등했을 때 안랩 고위 임원들이 자사주를 처분해 거액을 챙겼다는 것이 구설에 오른 바 있던 터라 원 씨에 대한 의혹과 궁금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텐데 2차례 대량 매도를 해서 총 580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둬들인 것을 두고 보통 대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후 원 씨가 대주주 공시 의무가 없는 4.9%로 딱 맞춰 놨다는 점이었다. 이를 두고 너무 작위적이라는 뒷말도 돌았다”고 귀띔했다.
원 씨가 지분율을 5% 미만으로 낮춘 이상 원 씨는 주식 매도에 대한 공시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처지다. 업계 일각에서 ‘이미 짭짤한 재미를 본 원 씨가 상당한 지분을 팔았을 것이다’ ‘전량 매도했을 수 있다’ ‘주가에 연연치 않고 여전히 일정 수준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10만 원대에서 팔려고 했으면 벌써 팔았을 거라고 하더라’는 등 온갖 흥미로운 추측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원 씨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한 투자 관련 사이트에는 ‘안철수의 동향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진짜 슈퍼개미일 수도 있다’ ‘정말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안철수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것이다’ 등 다양한 추측이 나돌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도 “평균 투자금액 180억 원가량을 투자해 1000억 원이 넘는 차익을 거둬들인 원 씨가 워런버핏을 능가하는 희대의 투자자이자 주식계의 불가사의로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며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한 투자전문가는 “원 씨가 안철수라는 인물에 대한 믿음이 있어 재산의 대부분인 170여 억 원을 투자하는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기는 힘들다. 내로라하는 주식고수라 해도 한 회사의 비전만 보고 개인이 전 재산을 투자한다는 것, 또 7배 상당의 수익을 낸다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즉 일반적 투자 행태와는 거리가 있다. 일각에서 원 씨와 안 원장과의 관계에 대한 추측이 나도는 것, 그가 안 후보와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었거나 내부자거래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원 씨에 대해 말이 많았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원 씨는 72년생 평창동 거주자라는 정보 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 공시에 나와 있는 원 씨의 직업은 투자자지만 주식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나 개미들 사이에서도 원 씨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는 없다. 투자업계 및 여의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원 씨가 72년생이 아니고 실제로는 60세 전후의 인물이며 모 권력기관장의 친인척 혹은 정권 실세의 측근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그런데 소식이 잠잠했던 원 씨가 수 개월 만에 검찰조사 소식으로 다시 세간에 등장한 것이다
그간 여러 방송 등에 출연해 안랩 2대주주 국감조사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 바 있는 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 소장은 원 씨가 순수한 개미일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실상 그가 치외법권의 영역에 있었음을 문제 삼고 있다. 황 소장은 “지난해 11월 문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원 씨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공시의무 위반이 아니다. 원 씨의 투자자금 출처와 주식매각 수익금의 출구를 밝히는 것이다. 즉 원 씨가 ‘바지’가 아닌지에 대한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 구설에 오른 지 한참 지난 후에서야 불러다가 고작 보고의무 위반에 대해 조사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국감 전 사전 먼지털기 작업인가?”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강남일 부장검사는 9월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원 씨와 관련된 모든 의혹들에 대해 선을 그었다. 금감원에서 주식지분 변동 보고의무 위반 건으로 통보를 해왔기에 그 부분에 대해 절차대로 수사를 하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금감원에서 올 1월에 검찰에 통보했음에도 이제야 수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강 검사는 “언론에 잘못 보도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일부러 수사를 미룬 것이 아니다. 금감원에서 우리 측에 올 1월에 통보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원 씨에 대한 수사가 며칠 전부터 갑작스레 이뤄진 것도 아니다. 여전히 수사가 진행 중이라 현재 뭐라 말할 단계가 아니다. 차명계좌 의혹부분도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