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렇게 신비한 인연으로 만나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청첩장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날씨 좋은 가을 아닌가.
결혼식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함께 살기로 했으니 이제 하나의 공동체로 봐달라는 신성한 의식일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 결혼식을 부부로 살고자 결단하는 남자와 여자가 주도하지 않고 그 부모가 주도하는 것일까. 형식의 힘이 있고, 형식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 힘과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형식을 주도하는 사람에게서 온다. 그런데, 자기 결혼식도 주도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맡기는 인생이 어떻게 부모를 떠나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나는 또 궁금하다. 왜 조금 산다고 하는 집에서는 결혼식의 장소로 호텔을 선택하는 것일까.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 중의 하나는 주차문제 때문에 하객들을 배려해서라고 한다. 신랑신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하객들을 모으고 또 모으는 것이 배려인가. 그렇게 신랑신부와 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모으느라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억대가 넘어가는 호텔 결혼식을 해야 한다면 이상해도 참 이상한 일이다.
오죽하면 한 신문이 우리나라 결혼문화를 비판하면서 검소한 결혼식 캠페인을 시작했을까? 일단은 반응이 좋다. 정말 축하해줄 사람만 초대해서 결혼식을 결혼식답게 치러보자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나선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뿌렸던 축의금은 잊어야 한다. 아까운 일일 수 있지만 생각을 바꾸면 또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꾼 사람들이라면 부담스럽기만 한 예단을 생략하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을까.
검소한 결혼식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탈 호텔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호텔을 제외해도 결혼식을 올릴 공간은 많다. 내 남동생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예쁜 교회를 찾아다녔고, 그리고 거기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나님은 어떠한 의도도 소화할 수 있는 분이니 나쁠 리 없다고 변명까지 해가며. 그렇듯 교회도 좋고, 절도 좋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원까지 개방하겠다고 했다. “서울 시내에 얼마나 공원이 많습니까? 시민들이 원하면 공원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하늘과 땅과 나무와 숲에 성혼을 알리며 결혼을 올리는 부부를 보면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해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지 않겠는가. 우연히 증인이 된 것을 기뻐하며 그들을 기꺼이 축복할 것 같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