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근로시간 줄인 ‘완전 주4일제’는 아직 걸음마…임금 삭감·생산성 유지 등 난제 산적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기업들은 재택근무, 단축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근무방식을 도입했다. 최근에는 산업계와 노동계에서 주 4일제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텔레콤, CJENM, 카카오게임즈 등 많은 기업들이 부분적으로 주 4일제를 시행 중이다. 가장 최근에는 포스코가 철강업계 최초로 부분적 주 4일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부터 월 1회 주 4일제를 도입했다. 필수 근무시간을 채우면 월급 날이 포함된 금요일에 쉴 수 있다. SK그룹의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스퀘어 등 계열사들도 월 1~2회 쉴 수 있는 주 4일제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2일부터 부분적 주 4일제를 도입한 포스코는 직원들이 1개월 이내 단위기간을 정하고 주 평균 40시간 이내에서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해 근무할 수 있게 했다. CJENM과 카카오게임즈는 근무시간을 단축해 격주로 금요일에 쉬는 방식의 주 4일제를 시행 중이다.
국내 기업들이 주 4일제 도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한 주 4일제를 시행하는 곳은 많지 않다. 근로시간 단축 없이 일하는 날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주 4일제를 채택하거나, 월 1회 혹은 격주로 시행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주 4일제를 도입하더라도 생산성 유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듀윌은 2019년 6월 업계 최초로 주 4일제를 도입했지만 경기 침체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지난해 3월부터 일부 부서를 주 5일제로 전환시켰다.
경영계에서는 주 4일제 도입으로 생산성이 감소할 것에 대한 우려가 분명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근로시간 체제에서 주 4일제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성과를 내고 생산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현재 법적으로 정해진 근로시간이 있는 상황에서 주 4일제 도입은 경제 산업계에 혼란을 가져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는 “주 4일제가 근로시간 단축 측면에서 논의되는 것이라면 시기상조”라며 “여전히 근로시간의 경제성 문제가 현장에서 많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보다 근로시간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맞다”고 말했다.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주 4일제에 대한 판단이 복잡하게 엇갈린다. 한 주에 4일만 근무하는 체계는 매력적이지만 전체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결과로 이어져 한 달 수령 임금이 줄어든다면 이는 또 고민되는 지점이다. 세브란스병원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1년간 주 4일제에 참여하는 간호사에 대해 임금 10%를 삭감했다. 물론 실제 주 4일제에 참여한 간호사들의 만족도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아직 특정 직군의 사례일 뿐 다른 직업 분야나 산업계에서는 어떨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한주 전국금속노조 언론국장은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조합의 기본 입장이지만 노조원들 사이에서 주 4일제에 대해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고 있지는 않다”며 “노동시간을 줄였으면 좋겠다는 입장이 있고, 한편으로는 노동시간을 줄이면 임금삭감을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 갈린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자동차업체나 부품사 근로자들의 기본급만 보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분들도 많다”며 “제조업계에서는 잔업 특근 수당 등으로 임금을 늘려온 경우가 많아서 주 4일제나 주40시간이 제조업계에 도입되면 임금 삭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제조업은 교대근무가 많고 생산 공정이 멈춤 없이 돌아가야 하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주 4일제 도입이 어렵기도 하고, 잔업 특근 등 수당이 임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임금 삭감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김 국장의 설명이다.
제조업 등 특정 직무에서는 주 4일제가 도입될시 대체 인력을 충원해야 해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일부 제조업체 노조에서는 주 4일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어 사측에서 이를 받아들인다면 인력 충원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최근 당선된 문용문 현대차 노조 지부장은 내년 전주·아산 공장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완전한 주 4일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전미자동차노조(UAW)도 지난해 9월 파업에 돌입하며 임금 삭감 없는 주 32시간 4일 근무제를 주장한 바 있다.
주 4일제를 실시 중인 한 IT기업 관계자는 “4차산업 쪽은 정해진 일을 하기보다 시기마다 유연하게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 4일제 도입이 수월했다”면서도 “제조업 등 특정업계는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주 4일제로 바꾸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더 나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 주 4일제가 규모가 큰 대기업이나 대형병원 등에서 논의되고 있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주 4일제와 같은 근무시간 변화에서 배제될 수 있다”며 “안 그래도 임금, 복지 등으로 격차가 큰데 근로시간에서도 격차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주 4일제 도입 시도는 환영하지만 모든 사업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당장 일률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기업들이 각자 도입하고 있는 방식으로라도 점차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다양한 모델을 시행하면서 결과적으로 임금 삭감이나 연차 소진 없는 근로시간 단축 모델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병훈 명예교수는 “길게 보면 지금 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는 방식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라고 기대한다”며 “당장 주 4일제로 일괄 전환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점진적으로 바꿔 나가는 형태로 발전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에 대한 인건비 지원 등의 방안도 시행하면 많은 사업장에 주 4일제 도입이 수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장(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은 “현재 일부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유연근무제 등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근로방식을 먼저 이용하면서 점차 근무시간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며 “주 40시간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고, 해외사례처럼 임금인상률을 조정하거나 중소기업에 추가적인 지원을 통해 생산성을 유지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유니온센터 소장은 “인력충원‧노동시간단축‧임금삭감 이 세 가지가 주 4일제 논의에서 중요한 핵심인데, 현재는 기업의 형태, 규모, 산업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고 있다”며 “법제화되기 전까지는 향후 몇 년 동안 시범 사업이나 실험을 하면서 업종별로 주 4일제 도입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