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아닌 ‘김건희 여사’가 트리거…한 위원장, 김경률 거취 두고 고민 빠질 듯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 국민의힘에선 공천 문제를 둘러싼 견해 차이를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진짜 원인으로 ‘김건희 리스크’를 거론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 위원장이 용산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했지만 갈등을 봉합하진 못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20년 지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충돌했다. 지난 1월 19일 몇몇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한 위원장이 ‘김경률 비대위원 서울 마포을 출마’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해 ‘사천(사적 공천)’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고 있다는 이유였다.
1월 21일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한동훈 위원장을 직접 만나 사퇴하라는 대통령의 입장을 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공개적으로 갈등설이 분출했다. ‘친윤’ 핵심 이용 의원은 당 소속 의원 단체대화방에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의 줄 세우기 공천 형태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를 공유하기도 했다. 이는 친윤계가 한 위원장 흔들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으로까지 이어졌다.
한동훈 위원장은 1월 22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대통령실 사퇴 요구’에 대해 “그 과정에 대해 내가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며 이관섭 실장과의 만남 자체, 그리고 대통령실 사퇴 요구는 확인해줬다. 다만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선민후사하겠다”고 비대위원장직 수행 의지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 전개되자 여권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멸할 것이란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둘이 서둘러 봉합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1월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났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 어깨를 툭 치고 포옹한 뒤 악수를 나눴다. 둘은 대통령 전용열차에 탑승해 1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서울로 복귀했다. 이후 한 위원장은 ‘윤·한 갈등이 봉합된 것이냐’ 질문에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사태 초반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갈등을 두고 많은 의견이 나왔다. 실제 감정의 골이 생겼다는 ‘찐 싸움’이라는 얘기가 주를 이뤘지만 갈등과 봉합을 통해 반전을 이끌어내는 ‘약속대련’이라는 해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련의 장면들을 종합하면 약속대련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야권 한 인사는 “약속대련이 되려면 기승전결 구조를 통해 유권자들에 감동을 주고 지지율이 반등해 4월 총선에 도움이 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갈등국면에서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비대위원장, 김건희 여사 누가 이득을 보았나”라고 반문했다. 실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다시 ‘당무 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한 위원장은 90도 인사를 통해 결국 최고 권력자에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며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화재 현장을 두 사람의 갈등 봉합의 ‘무대’로 활용했다며 반발을 사고 있다.
여론도 좋지 않다. 한국갤럽이 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잘못하고 있다’ 응답이 전주 대비 5%포인트(p) 급등해 63%를 기록했다. ‘잘하고 있다’는 1%p 하락해 31%에 그쳤다.
여론조사공정이 데일리안 의뢰로 1월 22일부터 23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것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에 응답자 절반이 넘는 59.4%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적절하다’는 23.4%였다. 특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부적절’이 각각 69.9%와 72.9%로, 70% 안팎을 기록했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각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약속된 플레이가 아니라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왜 격돌했는지를 두고도 여러 추측이 무성하다. 당초 대통령실 등은 한동훈 위원장 사퇴 요구가 ‘김경률 비대위원 서울 마포을 출마’ 발언에 따른 ‘사천’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기류는 아니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여권 관계자 말이다.
“한 위원장이 예비후보 손을 들어준 게 김 비대위원이 처음이 아니다.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서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맞상대로 인천계양을에 출마한다고 직접 소개하고 손을 들어줬다.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도 수원병에 출마하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무대로 불러 악수를 나누는 등 공개적으로 힘을 실어줬다”며 “대통령실이 왜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김경률 비대위원에 와서 ‘사천’을 걱정하겠느냐. 김 비대위원이 ‘김건희 리스크’를 계속 지적하기 때문이다.”
김경률 비대위원은 비대위 합류 직후부터 ‘김건희 리스크’를 언급했다. 김경률 위원은 1월 8일 비대위 회의에서 “국민이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풀어줄 수 있는 방안을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서 만들어야 되지 않겠나”라며 “그래야 국민의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1월 17일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서는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을 것 같나.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며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에선 불쾌한 반응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한 위원장은 1월 18일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에 대해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호응했다. 한 위원장이 김 여사 문제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처음이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 등에게 들이받으며 체급을 키워온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도 언제든 아랫사람이 대항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한동훈 장관을 비대위원장에 올릴 때 마지막까지 고민한 게 이런 문제였다고 한다”며 “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김 여사 문제를 한 위원장이 건드리자 ‘배신’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도 “한 위원장은 사실상 윤 대통령 후광으로 비대위원장의 권력을 얻었다. 그런데 지난 1월 한 달간 전국을 돌면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듣고 셀카를 찍으면서 정치적으로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간 것 같다”면서 “윤 대통령 없이도 총선 승리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 여론조사 등 분석자료는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김건희 특검법 등 ‘김건희 리스크’를 해결해야 한다고 가리키고 있다. 한 위원장이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린 것”이라고 했다.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의 만남으로 여권에서는 둘의 충돌이 봉합됐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번에 불거진 갈등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 작업이 진행 중인 만큼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힘겨루기는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아직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것 같다. 한 위원장을 내치고 싶지만 대안도 없고 여권이 분열하면 총선에서 필패할 것 같아 일단은 손을 잡아줬다고 본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두 사람이 언제든 다시 충돌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동훈 위원장과 김경률 위원은 봉합 이후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김 위원은 1월 25일 비대위 회의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더 이상 밝혀질 것이 없다”며 “민주당이 왜 정쟁의 영역으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도 같은 날 김 여사 디올백 논란에 대해 “입장은 변한 게 없다. 내가 드렸던 말씀 그대로 이해해주면 된다”고 말을 아꼈다. ‘김 여사 사과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것이냐’는 질문에 “내가 사과를 이야기한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럼에도 한 위원장은 김 위원의 비대위원직 사퇴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갈등이 봉합되기 위해서는 단초를 제공한 김 위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이 김 위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는 질문에 “내가 그런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김 위원이 총선 출마하려면 비대위원직을 내려놔야 한다’는 친윤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앞서 민주당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각각 ‘쌍김(김건희·김경률)’을 감싸고 있다. 리스크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화해가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전공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사법’에서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관섭 비서실장을 만나 사퇴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줬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통령실 직원들은 공무원으로 당직을 가질 수 없다. 당연히 정치나 당무에 관여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문제로 2년 실형을 받았다. 한 위원장이 그걸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형사적 문제로 번져나가면 갈등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에서는 이 실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과 갈등이 최고조였던 1월 23일 박성재 전 서울고검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전격 지명했다. 법무부는 지난 2023년 12월 21일 한 위원장이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차관 대행 체제로 운영되다, 4월 총선 이후 후임 장관을 내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한 위원장 후임인 박 후보자는 사법연수원 17기다. 한 위원장(27기)보다 한참 선배인 셈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박 후보자가 한 위원장 체제 때 이뤄진 검찰 인사 등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번 갈등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김건희 여사라는 분석이다. 김 여사는 2023년 말 김건희 특검법 처리 전부터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데, 갈등 국면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디올백 명품수수 문제 등이 다시 정치권 전면에 등장했다. 앞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에 ‘김건희 여사 문제’가 9%로 3위에 기록됐다.
다만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특검 등 ‘수사’에서 ‘사과’로 프레임이 전환된 이점은 있다. 여권을 중심으로 김 여사가 명품백 수수 논란 등에 대해 직접 사과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두고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어느 순간 김 여사가 사과만 하면 모든 논란이 해소되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김 여사가 말실수 같은 작은 잘못을 한 게 아니지 않느냐. 수사를 통해 각종 의혹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