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펄펄 날 때 우리는 헛발질만
▲ 최효진 선수(왼쪽에서 세 번째)가 지난 2010년 대한민국 대 일본 친선 축구경기에서 역습하는 일본 선수를 마크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
이는 스포츠, 특히 축구에서도 잘 나타난다. 축구처럼 내셔널리즘이 분명한 스포츠 종목도 없다. 긍정의 동반자라고 보는 시각보다는 양국은 항상 치열하게 대립하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한 쪽이 승승장구하면 다른 쪽은 ‘배가 아파지는’ 바로 그런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것도 많이 퇴색된 분위기다. 늘 대등했던 남자 국가대표팀을 제외하면 축구 행정과 전체적인 환경 인프라, 여자 축구까지 거의 전반에 걸쳐 ‘배 아픈’ 구석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등한 남자 축구 & 참담한 여자 축구
어쩌면 대표팀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남자 축구대표팀에서만큼은 한국이 근소한 우위를 점해왔다. 올림픽대표팀과 아시안게임, 청소년대표팀 등 결코 뒤지지 않았다. 요즘 들어 일본 축구의 초강세가 이뤄지긴 해도 아직 국내 축구 팬들은 우리가 일본에 비해 부족하다는 시선을 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요 근래, 질적 향상은 일본이 좀 더 앞서는 모습이다.
일본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크게 활발해졌다. 행선지도 다양해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가와 신지)부터 독일 분데스리가, 심지어 벨기에 주필러리그까지 여러 곳으로 넓어졌다. 그에 반해 한국 선수들의 유럽 이동은 다소 주춤한 모양새다. 이미 유럽 무대를 밟은 선수들의 이동이 간혹 이뤄지는 정도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도 롤 모델로 삼았던 분데스리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지 거듭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K리그가 한창 추진하고도 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승격-강등 제도는 프로리그 출범과 함께 도입됐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문했던 클럽 라이선스 문제도 J리그 상당수 구단들은 자유로웠다. 더불어 J리그 선수들의 독일행이 잦은 것도 애초에 일본 축구에서 활동한 독일 축구인들의 도움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
진짜 문제는 여자 축구다. 일본 여자축구는 진정한 중흥기를 맞이했다. 세계 랭킹 3위라는 국제 순위에서도 큰 격차를 느낄 수 있지만 지속적인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한국 여자축구도 발전할 수 있는 계기는 충분히 마련돼 있었다. 2010년 U-20과 U-17 여자월드컵을 통해 희망을 분명히 봤다. 여자축구 에이스로 손꼽히는 지소연을 앞세운 U-20 여자월드컵에서는 3위를 차지했고, 곧바로 열렸던 U-17 여자월드컵에서는 여민지를 내세워 정상을 밟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르네상스를 맞을 기회는 있었는데, 스스로 놓쳐버린 셈이다. 항상 그랬던 한국 축구다.
현실부터 참담하다. 일본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선수들만 해도 무려 2만5000여 명이 넘는 데 반해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다. 일본은 실업팀도 20개가 넘는다. 여자 축구장에도 많은 팬들이 찾는다고 한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선수들은 고작 1000여 명에 불과하다. 서울 지역에 여자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는 동산정보산업고가 유일하다. 희망을 느낄 수가 없다. 다 거기서 거기다. 하다못해 여자 국가대표팀에도 감독이 없다. 국제 대회가 임박했을 무렵,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만 축구협회 전임 지도자들 가운데 선별해 활용한다. 코칭스태프도 자주 바뀌는 통에 선수들의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 여자 축구 지도자는 “감독의 철학, 지도법 등을 익힐 기회가 필요한데, 여자 대표팀의 경우는 아예 소집 기회조차 없으니 그럴 수도 없다. 상대 분석을 제대로 해도 정작 우리의 준비가 덜 된 셈”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 2012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한국은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하고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흰 옷이 한국팀. 로이터/뉴시스 |
좁은 지역에서 보다 많은 볼 터치를 하고, 이에 따라 공간 활용법과 개인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8인제 축구는 정식적인 11인제 축구보다 각광을 받는다.
일본은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일부 지역은 이미 시작한 곳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일부의 반대도 있지만 일본축구협회 차원에서 유소년 선수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선택한 만큼 발전의 여지는 많다.
그런데 한국은 한 걸음 뒤져 있다. 올해 4월 축구협회가 기자 간담회를 열고 8인제 축구 도입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지도자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8인제 축구가 유소년 선수들에게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대다수가 공감하는데, 현실이 뒷받침되지 못한다. 당장 성적을 내야 상급 학교로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 전체를 바꿔야 하는 형편이라 마음 놓고 선수들의 기량 발전에 유소년 지도자들이 매달리기는 어렵다.
최근까지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의 가장 경계할 부분으로 ‘유소년 성장’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발전하고 있는 건 거의 없다. 유소년 클럽 시스템은 여전히 학원 축구에 밀려 뒷전이다. 잊을 만하면 끊임없이 비리 추문이 쏟아진다. 심지어 프로팀 산하 학교에서도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특정 학교와의 검은 커넥션과 뇌물, 금품수수 등 불편한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예 특정 학교에 진학하려면 진학 대가로 얼마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옷을 벗는 지도자들도 해마다 등장하곤 한다.
행정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최근 1년간 욕먹을 일이 칭찬받을 일보다 많아 축구인들을 실망시켰다. 화합과 단합은 찾기 어려웠다. 항상 분열과 반목이 주를 이뤘다. 분명 문제는 있는데, 이를 해결하려는 또 개선하려는 의지는 거의 찾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축구협회 어른들은 마치 일반인들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달갑잖은 평가도 계속된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 역시 2002한일월드컵 이후 제자리걸음이다. 몇몇 축구센터들이 건립된 것을 제외하면 딱히 환경이 좋아진 게 없다. 그나마 더 이상 맨땅에서 축구하는 일이 거의 없어져 만족해야 한다고 할까. 여전히 안타까운 한국 축구의 현 주소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