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 “현장 지도 불가” 학부모 “다른 방도 없어”…양측 갈등으로 번지면 피해는 아이들 몫
#‘몰래녹음’ 예외적 인정 이유
수원지방법원 형사9단독(판사 곽용헌)은 2월 1일 아동학대처벌법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 씨에게 유죄(벌금 200만 원)를 선고하고 이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란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룬 뒤 유예기간이 지나면 범죄 사실을 없던 일로 하는 판결이다.
이번 선고의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는 주 씨의 아내가 교사 몰래 자녀의 외투에 녹음기를 넣어 녹음한 녹취록이 아동학대의 증거로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앞서 1월 11일 초등교사의 아동학대를 의심한 학부모가 자녀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수업을 녹음한 사건에서는 해당 파일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피해 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 녹음’에 해당한다”며 이는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발달장애가 아동의 경우 대법원 판례와 쟁점이 다른 것으로 보고 녹취록은 물론 이에 따라 취득한 2차 증거들 모두 적법한 것으로 인정했다. 근거는 형법 20조의 ‘정당행위’다. 형법 20조는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즉, 주 씨 부부가 교사 몰래 녹음을 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곽 판사는 이에 대해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 모친이 피해자에 대한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대화 녹음한 것이기 때문에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녹음 행위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존재해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당 수업은 “의무 교육에 의한 공교육이라, 녹음돼 침해되는 사생활보다 보호할 수 있는 이익이 더 커 보인다. 법의 균형성도 충분히 인정된다. 결국 통신비밀보호법에도 불구하고 (녹취록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 씨의 발언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발언의 맥락과 고의성에 따라 판단됐다. 검찰 공소장에는 전체 대화가 아닌 A 씨가 한 말만 나열됐는데 5개의 발언 가운데 1개가 유죄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를 이야기하는 거야.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라는 발언을 정서적 학대라고 봤다. 아동의 어떤 행동이 고약한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고약하다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더라도 부정적인 표현으로 인식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반면 ‘아 진짜 밉상이네’와 ‘머릿속에 뭐가 들었어’ 등 나머지 발언들에 대해서는 “학대의 고의가 없고 아동의 정신건강 발달에 해를 가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 씨의 변호인은 녹취록이 증거로 인정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김기윤 경기도교육청 고문변호사는 “몰래 녹음한 것이 유죄 증거로 인정될 경우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교육청에서는 수업 시간에 몰래 녹음한 부분에 대해 증거 능력이 없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다. 차분하게 항소심에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또 “정서적 학대로 인정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의아한 부분”이라며 “그 부분 역시 항소심에서 다퉈봐야 할 것 같다”고 항소 의사를 밝혔다.
한편 주 씨는 재판 직후 법원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자기 자식이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이 부모로서는 당연히 반갑거나 기쁘지 않다. 여전히 무거운 마음”이라며 “이번 사건이 열악한 교육 현장에서 헌신하는 특수교사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장애아동 부모와 특수교사 간 대립으로 비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지도하면 학대, 가만두면 방임”
주 씨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장애아동 부모와 특수교사 간 파장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애아동을 둔 학부모와 특수교사 집단 양측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까닭이다. 판결 직후 일요신문 인터뷰에 응한 일부 학부모들은 이번 사건 이후 바로 녹음기를 구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일부 특수 교사들은 현장에서의 지도가 어려워질 것 이라고 토로했다.
발달장애아동을 둔 한 학부모는 “장애아동의 부모라면 동의 없는 녹음이 불법인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 많이 느리고 의사전달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실제로 학폭에 휘말리게 되면 객관적 증거 없이는 방어가 불가능하다. 특히 무발화(말을 하지 않는 상태) 아동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보호해주는 것도 아니니 녹음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어쩌면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반면 교사들은 이번 판결에 현장의 특수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1일 즉각 입장문을 내고 “특수교사의 현실과 학생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교육적 목적, 전국 56만 교원의 간절한 요구를 외면한 판결로서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6년 차 현직 특수교사 B 씨는 일요신문에 “교사들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실린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현장에선 이마저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활지도를 하지 않는 교사는 있을 수 없다. 복도에서 뛰는 아이를 지도를 하지 않았다가 아이가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그땐 또 누구의 책임이 되느냐”며 “지도하면 학대, 가만히 두면 방임이 된다. 이번 판결에 특수교사들은 소극적일 수도 적극적일 수도 없게 됐다. 길을 잃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악화로 특수교사직을 그만둔 C 씨는 “개인적으로 A 씨의 행동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사로서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 있었다고 본다. 다만 교사가 훈육을 위해 직관적인 표현을 쓰는 것을 두고 학대 혹은 혼내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장애아동의 문제행동 중재 매뉴얼을 보면 공격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짝 바꿔주기, 칭찬스티커 주기 등 긍정적 행동지원에 초점을 맞춰 중재 계획을 세우라고 되어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지침에 따라 대응하지만 때로는 이런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아이들도 분명 있다. 이럴 땐 오히려 직관적인 언어로 명확하게 뜻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지금 이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니 해서는 안 된다’고 보다 정확히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특수교육환경서 모두가 피해자
교사와 학부모는 각각 상반된 어려움을 털어 놓았지만 귀결되는 결론은 같았다. 이 재판으로는 승자와 패자가 따로 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의 학부모는 “이번 사건이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갈등으로 변질되면 그 피해는 오롯이 우리 아이들에게 온다는 것을 잘 안다”며 “교사 한 명이 많은 아이들을 전담하는 구조는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특수교사 B 씨 역시 조심스레 “실제로 큰 사건이 터지면 아이들보다는 주변 환경과 미비한 제도 때문에 무너지곤 한다. 학교가 특수교사를 지켜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은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특수교사의 채용 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2023년 9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인지장애 혹은 신체장애 등으로 특수교육을 받는 특수교육대상자 수는 2021년 9만 8154명에서 2022년 10만 3695명, 2023년에는 10만 9703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반면 전국 시·도교육청이 선발한 유·초·중등 특수교사는 2022년 894명에서 2023년 349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2024년 전국 특수교사 선발예정인원은 481명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