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표현 기법 중에 점묘법이라는 것이 있다. 점을 찍어 사물이나 이미지를 그려내는 방법이다. 미술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누구나 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점묘법은 19세기 인상주의 회화에서 시작됐다. 그전까지 회화는 사물의 윤곽을 정확히 그린 후 물감을 곱게 칠해 사진처럼 만들었다. 이런 방법은 수백 년 혹은 천 년여 가까이 지속되면서 회화 기법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적으로 변해가는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 붓을 빠르게 사용해 터치를 넣는 기법을 개발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회화의 모습이 이때 나온 셈이다. 그래서 인상주의를 회화의 혁명이라 불렀다.
붓터치의 새로운 변형 중 하나로 점을 이용한 표현방법이 점묘다. 이 기법을 개발하고 완성한 이는 요절한 천재로 불리는 조르주 쇠라(1859-1891)다.
그는 32년을 살았지만 미술사에 기념비적 작품 세계를 열었고,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중요한 회화 기법을 창안했다.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세잔에 버금가는 대가가 됐을 것이다. 인상주의에 색채학적 과학 이론을 도입해 논리적인 회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색점을 찍어 형체를 만들어내는 이 방법을 쇠라는 광학적 회화라고 불렀다. 형태를 그리거나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순색의 작은 색점을 화면에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찍는 것이다.
색맹 검사표처럼 보이는 쇠라의 작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봐야 형체, 색상, 명암 등이 나타난다. 이를 미술평론가 펠릭스 페네옹이 ‘점묘법’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신인상주의로 서양미술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쇠라의 이러한 혁신적인 회화 기법은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신인상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인상주의미술 이론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점묘범은 20세기 들어오면서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래주의 회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빛의 운동 에너지를 표현하려는 미래주의 화가들은 점묘를 이용해 효과적인 화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은 물감을 뿌리는 방법으로 점묘를 발전시켰다. 우리나라 화가 고 이대원도 점묘법을 활용한 과수원 시리즈로 21세기 초 미술시장의 블루칩 작가가 되었다.
안난숙도 점묘법의 새로운 버전을 개발해 주목 받는 작가다. 그는 면봉을 이용한 점묘로 환상적 화면을 연출한다. 면봉에 의해 나타나는 점묘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의 점묘는 색채가 겹쳐지면서 파스텔 톤의 깊이감을 높여준다. 따스한 화면에서 보이는 사물들은 일상생활의 모습으로 행복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다.
안난숙은 면봉 점묘로 사물을 표현하면서 수도하는 자세로 임한다고 한다. 열 번 가까이 면봉을 찍어야 원하는 분위기가 나오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안난숙 작가에게 점묘법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 방법이면서, 심리 치유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유용한 기법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