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맞선장에 정신질환 여성이 떡”
현재 이 업체로부터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회원은 대략 20~30여 명선이다. 대부분 유명 대학병원 전문의, 예비 판사 등 이른바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로 이 중에는 1500여만 원 상당의 고액의 가입비를 낸 사람도 있다. 결혼업계에서 상류층으로 분류되는 특수 전문직 회원들이 피해를 입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어서 업계 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소송을 통해 D 업체로부터 300만~1500만 원 상당의 가입비 환불 및 정신적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소송전 향방에 따라 D 업체뿐만 아니라 상류층 전문 결혼정보회사로 이름난 P 업체 등에 대해서도 추가로 소송이 제기될 전망이어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상류층 0.01% 프리미엄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슬로건으로 3년 전부터 유명세를 탄 유명결혼정보회사 D 업체를 향한 논란이 뜨겁다. 이 업체는 상류층 전문이라는 명색과는 걸맞지 않는 사기 행각을 벌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회원들에 따르면 800만 원 상당의 고액 가입비를 받고서는 매니저가 잠수를 타는 것은 물론, 정신질환 환자인 여성이 선 자리에 나오는 기상천외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과연 사실일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도 돈만 내면 무조건 가입시켰다.”
D 업체 회원 이 아무개 씨(40대)는 지난 달 D 업체가 주선한 선 자리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을 털어놓았다. 유명 대학병원 전문의로 재직 중인 이 씨는 “유명 케이블 프로에 이 업체 대표가 직접 나와서 청담동 상류층 결혼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하고, 의사 전문 상류층 선상 파티 등을 개최해왔다고 해서 믿음이 갔다”면서 “가입 당시 ‘800만 원 이상 프리미엄 노블 등급에 가입하면 좋은 집안의 처자를 만나게 해드리겠다’는 매니저의 말에 솔깃해 가입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결혼업계에서 전문직 남성회원들의 경우 일반 여성들의 가입비의 10분의 1 수준만 지급하면 되거나 때로는 무료로 가입되곤 했다. 그러나 이 씨의 경우 이런 종래의 방침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거액의 회비를 낸 것이다.
그는 “회비를 내고 나니 매니저의 태도가 변했다. 한두 달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었고 그 어떤 여성회원도 소개해주지 않았다”며 “끊임없이 항의를 했더니 드디어 맞선 자리가 잡혔다. 그런데 막상 선 자리에 나가보니 우울증이 심해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더라. 정신질환 이력이 있는 여성이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회원 김 아무개 씨(여·30대)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예비 판사인 김 씨는 “세상천지 돈 받고 연락 없는 결혼정보 회사가 어디 있느냐. 법을 아는 나한테도 이런 짓을 하다니 대범하기 짝이 없다. 고급 인테리어와 멀끔하게 생긴 CEO의 모습에 속았다. 프리미엄 1등급 남성들만 주선해준다는 말을 듣고 600여 만 원 이상 회비를 냈는데 여태껏 가입당시 약속한 조건을 가진 그 어떤 남성회원도 소개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김 씨는 이 업체에 여러 차례 환불을 요구한 끝에 매니저, 담당 팀장 등으로부터 “20%를 제외하고 환불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계좌번호도 묻지 않고 환불해줄 낌새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직접 다시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업무 중이라 바쁘다’는 말만 하더라. 회비를 받아내는 것만 업무인가보다”며 혀를 찼다.
이런 주장에 대해 D 업체 관계자는 “회원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서 생긴 일이다. 재벌급을 바라는데 소개시켜주기가 마땅찮다.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비단 D 업체만의 일은 아니다. 500 만 원의 회비를 내고 업계에서 유명한 P 업체에 가입한 한 전문의 김 아무개 씨(여·30대)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김 씨는 올해 초 뒤늦게 결혼을 결심하고 이 업체를 찾았다. 상담 당시 한 매니저가 김 씨에게 빼곡히 글씨가 써진 검은색 수첩을 던져주며 프리미엄 등급에 가입된 남성회원들을 소개했다고 한다.
이 수첩에는 “30세 남성, 보스톤턴 대 졸업, 변리사 2차 합격, 178cm, 아버님은 교수, 전문대 인수할 정도로 재산이 많음, 하남시 200억 상당 땅 소유, 은마아파트 4채, 시부모 관계 좋음”, “33세 남성, 성형외과 레지던트 3년차, 키 180cm, 아버지 의사협회 임원, 자산 30억, 형은 모 종합회사 대표, 잠실 아파트 소유” 등 결혼시장에서 내로라하는 프리미엄급 남성회원들의 정보들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 수첩을 한번 보고 나면 절로 800만 원이라는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의 회비를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게 김 씨의 전언이다. 그러나 800만 원 이상의 노블급 회비를 지불하고 나서부터는 업체 쪽 반응이 달라진다고 한다. 한번은 김 씨가 “그때 수첩에 적혀 있던 유학파 남성을 만나보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매니저로부터 “그 사람은 이미 누군가와 교제 중이다. 곧 결혼할 것 같다”며 발뺌을 하기 일쑤였단다.
김 씨의 주장처럼 또 다른 회원 정 아무개 씨(30대)의 증언도 이와 비슷하다. 5급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해 말 재미 삼아 이 업체에 가입했다. 상담 당시 청담동 출신의 부유층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매니저의 말에 관심이 쏠렸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300만 원 이상을 지급하고 가입한 후엔 사정이 달라졌다. 매니저로부터 수첩에 적혀있는 인물들이 대부분 결혼 예정이거나 탈퇴 회원이라는 싸늘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또한 선 자리에 나가면 “집안이 좋더라도 이혼 사례가 있다든지 치명적인 결점이 있는 여성들이 간혹 나와 우롱당하는 느낌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후 정 씨는 이 업체를 상대로 환불을 요구했지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 6개월째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500만 원 회비를 내고 유명 B 업체에 가입한 한 전공의 이 아무개 씨(여·20대)는 맞선남한테 성추행까지 당했다. 이 씨는 “여러 번의 요청 끝에 한 남성을 만날 수 있었지만 만난 날 이 남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너무 화가 나 다음 날 해당 매니저에게 따졌더니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대단한 집의 자제분이시다. 몸을 줘서라도 잡아야 된다’며 오히려 호통치더라. 정말 황당했다”고 말했다.
혹시나 운 좋게 결혼이 성사되더라도 1500만 원 상당의 성혼비를 업체에 지급해야 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최초 가입비와 부가세까지 추가하면 3000여만 원에 달하는 고액이다. 그러나 이 성혼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업체 매니저들로부터 “조폭을 풀어서 결혼식장을 헤집어 놓겠다”는 협박을 듣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보복 행위도 이뤄진다고 한다. 외도를 연상케 하는 거짓합성 사진 등을 이용해 이간질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결혼업계의 ‘꽃’으로 불리는 상류층 전문직 회원들을 상대로 이러한 사실상의 사기행각이 발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베테랑 커플매니저 김 아무개 씨는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결혼시장의 비밀을 누설하기가 난감하다”면서도 “최상류층만을 상대로 한 결혼정보업체가 실제로 존재할지 의문이다. 이 바닥이 원래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슬로건을 내건 영세업체들은 사실상 사기 업체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면 된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진짜 최상류층이 결혼정보 업체를 이용할 것 같은가? 의사나 판사 등 일정 전문직들이 가입을 하겠지만 그마저도 가입 수가 적어서 막상 가입을 해도 회원을 소개시켜주는 게 어려울 거다. 많아봤자 몇 십 명인 회원들에게 총 회원 수가 몇 천 명 이상이라는 거짓말을 해놓곤 돌려가며 매칭 시켜주기 때문에 잡음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이른바 노블을 상대로 하는 영세업체들의 경우 회원 수는 적은 반면 ‘상류층’ 전문이라는 마케팅으로 회원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전문직 피해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전문직들의 경우 본인이 성취한 직위만큼 부를 누리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결혼정보회사도 뭔가 있을 법한 곳을 찾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