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배 실으면 배 아프겠지?
그런데 최근 3남인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은 지병으로 투병 중이고,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지분을 매입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직 조수호 회장의 병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향후 한진해운의 경영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지만 당분간 경영 일선에 돌아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들 그룹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조수호 회장은 어렵고 힘든 투병을 하고 있다. 최근의 한진해운 지분 매입과 한불종금 매각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얘기해 여운을 남기고 있다.
한진해운은 6월 30일 기준으로 조수호 회장이 지분 6.87%, 대한항공이 6.25%, 대한항공 계열사인 한국공항이 4.01%, 제버란트레이딩이 6.4%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9월 15일 한국공항이 0.32%를 추가로 매입해 4.33%로 지분을 늘렸다. 제버란트레이딩도 7월까지 주식을 장내 매입해 지분율을 8.7%로 높였다. 일종의 지분 경쟁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공항은 대한항공이 지분 58.95%를 가진 최대주주다. 한국공항이 한진해운 지분을 매입하자 재계의 시선은 조양호 회장에게로 향했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다시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백기사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형제간 대립 구도를 봤을 때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고 경영권을 노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은 자신의 지분 외에 아내와 두 딸의 지분은 극히 미미한 상태다. 또 대한항공과 한국공항의 지분을 합하면 1대 주주의 역할을 할 수 있어 한진해운은 사실상 대한항공의 그늘 아래 있는 셈이다.
한편 조수호 회장 일가의 지분이 극히 미미한 상황에서 한진해운이 대한항공 쪽으로 간다면 2남과 4남인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이 이를 두고 보기만 하겠느냐는 식의 예상도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8월 2남과 4남이 제기한 민사소송은 대한항공이 4형제가 고루 지분을 나눠 가진 면세점 납품업체인 브릭트레이딩과의 납품을 포기하면서 대한항공의 계열사가 대신 납품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발한 것이었다. 이같은 전례에 비쳐보면 한진해운도 또다시 장남이 독식하려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제버란트레이딩이 가지고 있는 한진해운 8.7%의 지분이 핵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어 관심의 대상이다. 제버란트레이딩은 노르웨이 해운사인 골라LNG 계열의 투자회사로 올해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해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 간의 경영권 분쟁을 야기한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제버란트레이딩이 한진그룹 형제 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 매각 차익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2남, 4남 측은 아직까지는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진중공업 측은 “한진해운은 어차피 대한항공이 대주주이기 때문에 0.32%라는 미미한 지분을 매입한 것에 의미를 두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측도 “한국공항이 50억 원의 순이익이 발생해 투자 차원에서 매입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한진해운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대한항공과 메리츠증권 사이에 한불종합금융(한불종금) 지분 매매가 이뤄졌다. 대한항공, 한국공항, 정석기업, 한진관광이 가지고 있던 28.71%를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가 산 것. 메리츠증권은 한불종금의 최대 주주인 프랑스계 펀드인 소시에떼제네럴로부터도 41.45%를 매입했다. 메리츠증권이 한불종금을 산 것은 자산운용 면허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향후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증권사의 위상이 높아지는데 따른 외연을 넓히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대한항공 측은 금융업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지고 있을 필요성이 없어서 매각했다고 한다.
한불종금 매매에 대해서는 별다른 잡음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이미 2003년 계열 분리가 마무리되었지만 계열 분리가 칼로 베듯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2003년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달라는 것이 양측의 말이다. 하지만 한불종금은 한진그룹이 비행기를 매입할 때 지렛대로 이용하던 금융기관이다. 이를 메리츠그룹에 매각한 것은 형제 간에 ‘새로운 화해원칙’에 합의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조수호 회장의 와병을 계기로 ‘새판짜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한국공항은 지분 매각으로 55억 원의 현금이 생겼는데 이를 이용해 한진해운 주식을 더 살 수 있는 여력이 생긴 셈이다. 그렇지만, 대한항공처럼 큰 기업으로서는 50억 원의 돈에 별다른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대한항공 측은 “한진해운은 조수호 회장과 자사주 지분이 17.3% 이기 때문에, 대한항공을 비롯한 계열사들이 한진 해운 경영권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은 사실과 맞지 않다. 또한 이미 계열 분리 작업이 끝난 2남과 4남의 한진중공업계열과 메리츠증권 계열은 한진해운의 주식 취득 자체가 불법이어서, 경영권 논쟁 언급 자체가 의미가 없다. 따라서 형제간 경영권 대립이라는 말도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일부 언론에서 형제가 유산 상속 및 계열 분리상 갈등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으나, 조중훈 회장의 뜻에 따라 형제간 계열 분리는 성공적으로 마감을 한 상태이며, 따라서 유산 상속 문제나 경영권 갈등도 전혀 없다. 소송 문제도 이미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고 밝혔다.
결국 아직까지는 한진해운에 대해 2남, 4남 측이 개입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여러 가능성만이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태풍으로 번질지 저절로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